조선·방산 말고 또 있다…‘K전력망’ 호황 사이클에 ‘OO일렉트릭’ 진격

2025-03-24

인공지능(AI) 시대 데이터센터는 국가 보안시설에 견줄 만 하다. AI에 의존하면 할수록, 사고나 테러로 전력이 끊겼을 때 파문이 일파만파 커질 수 있다. 높은 전력을 안정적으로 소화할 수 있는 ‘초고압 변압기’가 주목받는 이유다. 초고압 변압기는 발전소에서 만든 전기를 먼 곳까지 효율적으로 보내기 위해 전압을 높은 수준으로 바꾸는 장치다. 전압을 높이면 같은 전력을 더 낮은 전류로 보내 전력 손실을 줄일 수 있다.

HD현대그룹의 전력기기 계열사인 HD현대일렉트릭이 24~27일(현지시간) 미국 댈러스에서 열리는 북미 최대 규모 송배전·에너지 전시회 ‘디스트리뷰테크 2025’에서 과전압 방지 기술을 적용한 국산 초고압 변압기를 처음 공개한다. HD현대 관계자는 “북미 시장 수요 증가에 대응해 국내 전력기기 업체 최초로 전시회에 참가했다”며 “안전과 보안 등 측면에서 한 단계 높은 기술을 요구하는 시장에서 검증받겠다”고 말했다.

일반인에게는 다소 생소한 전력기기 회사, ‘OO 일렉트릭’의 진격이 매섭다. HD현대일렉트릭과 LS일렉트릭, 그리고 효성중공업이 대표적인 국내 ‘빅3’ 전력기기 업체다. LS전선·대한전선 같은 회사가 AI 붐에 따른 ‘K 전력망’의 1차 수혜 기업(전선)으로 꼽혔다면, 빅3는 2차 수혜 기업(전력기기)이라고 볼 수 있다. 장상식 한국무역협회 국제무역통상연구원장은 “전력기기 업체가 높은 기술력을 바탕으로 글로벌 호황 사이클에 올라탔다”며 “조선·방산에 이어 트럼프 시대에 한국 제조업의 미래 먹거리 중 하나로 떠올랐다”고 분석했다.

실제 빅3는 지난해 HD현대(영업이익 6690억원), LS(3897억원), 효성(3625억원) 모두 역대 최고 실적을 기록했다. LS는 최근에도 구글·마이크로소프트·아마존·메타 같은 미국 빅테크 기업 중 한 곳과 1625억원 규모 전력·배전 시스템 판매·공급계약을 맺었다. 구자균 LS일렉트릭 회장은 지난 5일 국내 최대 배터리 산업 전시회 ‘인터배터리’에 참석해 “올해 변압기·배전반·ESS(에너지저장장치) 등 매출이 미국에서만 1조에 이를 것”이라며 “퀄리티(품질) 좋고, 가격 괜찮고, 납기가 빨라 경쟁력이 있다”고 자신했다.

전력기기 업체가 호황을 맞은 건 AI란 ‘메가 트렌드’ 때문이다. 빅테크의 천문학적인 AI 투자, 데이터센터 확충 기조가 전력 인프라 수요 폭증으로 이어질 전망이라서다. 글로벌 시장조사업체 가트너에 따르면 올해 세계 데이터센터 투자 규모는 3670억 달러(약 540조원)에 달할 전망이다. 2028년에는 4700억 달러(약 690조원)까지 성장할 것으로 예측했다.

미국과 유럽의 노후한 전력망 교체 시기까지 맞물렸다. 미국 에너지부에 따르면 미국 송전선의 70%가 최소 25년 전 설치됐다. 대형 변압기 설치 시기도 평균 40년을 넘어섰다. 미국 국립재생에너지연구소(NREL)는 2050년까지 변압기 공급을 2021년 대비 160~260% 늘려야 한다고 전망했다. 전력기기 제조업체가 ‘수퍼 사이클’을 맞았다는 분석이 나오는 이유다.

빅3는 호황을 맞아 공장 증설에 증설을 거듭하고 있다. HD는 2026년까지 미국 앨라배마 2공장과 울산 공장 증설에 4000억원을 투자한다. 연구개발(R&D) 투자도 1년 전보다 30% 늘리기로 했다. LS는 지난해 초고압 변압기 생산 증설에 1600억원을 투자했다. 2026까지 생산 능력을 기존 연 2000억원에서 7000억원 규모로 확대할 예정이다. 효성은 미국 테네시주와 창원 공장을 증설해 초고압 변압기 생산 능력을 기존의 1.4배로 늘린다.

글로벌 대전도 본격적으로 불붙기 시작했다. 델타스타·펜실베이니아트랜스포머·버지니아-조지아트랜스포머(미국), 히타치에너지·미쓰비시일렉트릭·도시바(일본), 지멘스에너지(독일) 같은 강자들도 미국 현지 생산시설 투자를 늘리는 추세다.

트럼프 대통령이 한국산 초고압 변압기에 반덤핑 관세를 부과할지도 관심사다. 이동헌 신한투자증권 연구원은 “한국 업체는 진입장벽이 높은 미국 시장에서 빅테크 사업을 수주하는 등 기술력이 갖췄기 때문에 경쟁에서 밀리지 않는다”며 “R&D 투자로 품질을 끌어올리고, 생산 규모를 늘리는 데서 승부가 갈릴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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