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승팀 아니어도, 이글스라서 행복한 한화 보살팬들을 위하여[BOOK]

2026-01-02

이글스라 행복합니다

배영은·정민철 지음

북오션

한화 이글스는 1999년 이후 우승하지 못했다. 2025년엔 파란을 일으키며 한국시리즈까지 진출했지만, 우승 앞에서 멈췄으니 21세기의 4분의 1이 지나도록 한 번도 우승하지 못했다는 사실엔 변함이 없다.

책은 그런데도 '이글스라 행복합니다'라고 한다. 한화 팬들은 패배의 고통을 즐기는 마조히스트인가. '마리한화'라는 별명처럼 뭔가에 취한 것인가.

스포츠팬들이 만년 꼴찌팀을 떠나지 못하는 이유는 뭘까.

에릭 사이먼스는 저서 『더 팬』에서 '고통의 공유'로 설명한다. 고통받는 팀의 팬들은 뇌에서 옥시토신이 더 강하게 분비된다고 했다. 함께 지고 함께 아파할 때 팬들 사이의 연대감은 승리할 때보다 더 끈끈하다. "나는 이 팀이 가장 어려울 때도 떠나지 않았다"는 도덕적 우월감도 팬덤을 지탱한다.

매몰 비용의 심리도 있다. "지금까지 쏟아부은 시간과 감정이 얼마인데, 이제 와서 그만둘 수 없다." 보스턴 레드삭스의 '밤비노의 저주', 시카고 컵스의 '염소의 저주'처럼 기다림의 시간이 길어질수록 '언젠가 올 우승의 가치'는 커진다. 응원을 그만뒀는데 내년에 팀이 우승한다면 그동안의 고생이 모두 헛수고가 된다는 공포도 이들을 붙잡아 둔다.

언더독 효과도 작동한다. 평범하고 고단한 삶을 사는 대중은 매번 이기는 완벽한 팀보다 실수하고 좌절하면서도 다시 일어서는 약팀에 자신을 투영한다. 스탠퍼드대 교수 한스 울리히 굼브레히트는 『경기장에서』에서 스포츠를 '세속적 종교'로 봤다. 86년 만의 우승, 108년 만의 우승 같은 사건은 단순한 승리가 아니라 '구원'의 의미다. 팬들은 이 구원의 드라마에 동참하기 위해 긴 고통의 시간을 인내하는 수도자가 된다.

스포츠 심리학자 대니얼 완은 팀의 성적과 상관없이 팀을 응원하는 행위가 자존감을 유지하는 핵심 기제라고 했다. 『피버 피치』를 쓴 닉 혼비는 "축구에 빠지는 것은 사랑에 빠지는 것과 같다. 선택권이 없기 때문"이라고 했다.

책은 "가을 경험의 첫 버튼을 눌렀다. 야구 잘하는 행복을 모르고 살았는데 올해는 얼싸안고 승리의 환호를 만끽하는 데 익숙해졌다"며 달콤한 칭찬 일색이다.

한화가 올해 잘했지만, 논란이 없었던 건 아니다. 마무리 투수 김서현에 대한 김경문 감독의 과도한 믿음이 우승을 날렸다는 지적은 곱씹어 봐야 한다.

그러나 책은 누구도 비난하지 않는다. 그럴 생각이 전혀 없다. “‘나는 행복하다’며 쓰린 속을 달래다 이제는 진짜 행복해진 한화 이글스”라고 한다. 그러니 팀 성적이 좋지 않아도 인내하며 응원하는 '한화 보살스'에 어울리는 책이다.

『이글스라 행복합니다』는 우승하지 못해도 마음 먹기에 따라 우승팀보다 행복할 수 있다는 걸 알려준다. 또한 다음 시즌을 기다릴 이유를 준다.

배영은 중앙일보 야구팀장과 정민철 전 한화 단장이 함께 썼다. 저널리스트와 선수, 프런트를 거친 레전드의 공저는 드물다.

책은 류현진의 2006년 입단 장면으로 시작해 그의 2025년 마지막 투구로 마무리한다. TV에서 볼 수 없는 더그아웃, 원정 버스, 로커룸에서 포착한 선수들의 표정과 한마디를 전해준다. 문동주, 문현빈, 폰세, 노시환 등 이글스 스타들의 뒷얘기로 뜨거웠던 2025년 시즌을 주로 돌아본다.

배영은 기자가 따뜻하게 쓰고, 정민철 전 단장이 깊이 있게 봤다.

Menu

Kollo 를 통해 내 지역 속보, 범죄 뉴스, 비즈니스 뉴스, 스포츠 업데이트 및 한국 헤드라인을 휴대폰으로 직접 확인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