④작은 일터에서 플랫폼까지, 노동자 주치의가 필요하다

2025-05-23

의사, 변호사, 교수 등 다학제 연구자·전문가 단체인 〈노동건강정책포럼〉은 제21대 대통령 선거를 맞아 차기 정부가 반드시 해결해야 할 산재 예방 보상 정책과제를 제안하고자 한다.

일터에서 병들고 목숨을 잃는 고통이 더는 반복되어서는 안 된다는 절박함 속에서, 산재보험 제도의 개선부터 산재 사고 사망 감축, 직업병 예방 정책, 그리고 산재 취약계층 지원 정책 등 정책 방향을 제시한다. 일하다 죽지 않는 사회, 일해서 건강을 잃지 않는 노동 환경은 그 자체로 정의로운 국가의 최소 조건이자, 사회 구성원이 인간다운 삶을 누리기 위한 전제다. 일터의 생명안전은 국가의 책임이다. 차기 정부가 ‘노동 존중’을 실질적 제도로 구현할 수 있기를 바란다.

산업안전보건법은 차별적인 법이다. 일하는 사람의 건강과 안전을 보호하기 위한 법이지만 일하는 사람 모두에게 적용되지 않는다. 위험은 다단계 하도급 시스템에서 아래로 아래로 흘러 작은 일터에 고이지만 법은 5인미만 사업장에는 적용되지 않는다. 플랫폼, 배달 노동자들을 노동자로 부르지 못하는 사회에서 이들은 장시간 노동과 야간 작업을 수행하고 있지만 단 두 개의 조항만 적용될 뿐이다.

우리는 이미 그 결과를 알고 있다. 2016년 삼성전자의 3차 하청업체인 휴대폰 부품공장들에서 불법인력 파견으로 일했던 청년 노동자 7명이 메탄올 중독으로 실명했다. 이중 3명은 이주노동자였다. 그들은 맨손으로 메탄올을 다뤘고 환기 장치도 보호구도 없는 작업환경에서 일했다. 소규모 인쇄소, 제본소, 귀금속 제조공장 등 도심 제조업 현장 역시 마찬가지다. 유기용제와 중금속에 일상처럼 노출되지만 정기적 건강검진은 커녕 작업환경이 기록조차 되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한 해에 500여명이 건설 현장에서 추락사를 당한다. 이들은 대부분 하청노동자들이다. 쿠팡에서는 스물일곱살 청년이 1년 4개월간 매일 야간노동을 하다가 과로사했다. 그들은 이 일을 하면 어떤 위험이 있는지, 그 위험을 어떻게 관리해야 하는지, 일한 결과 어떤 질병이 생길 수 있는지, 그에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알기 어렵다.

사업주는 “몰랐다”고 하고 노동자는 “어쩔 수 없다”고 한다. 진짜 문제는 노동자를 위험에 방치하는 구조와 무관심이다. 이러한 비극을 멈추기 위해서 무엇보다도 필요한 것은 국적, 사업장 규모, 고용형태에 따라 차별받지 않도록 법과 제도를 바꾸는 것이다.

고용노동부와 산업안전보건공단은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근로자건강센터를 통해 ‘찾아가는 건강관리 서비스’를 제공한다. 소규모 사업장, 특수고용·이주노동자 등 산재 취약계층에게 건강상담, 작업환경 점검, 운동프로그램 등을 무료로 제공하는 공간이다. 센터 직원들은 새벽에 대리운전기사들이 모여있는 이동노동자 쉼터를 방문하거나, 폭염 시기 건설현장 노동자들을 찾아 혈압·당뇨 수치를 검사하고 상담한다. 센터가 노동자 생활권과 가까운 곳에 있어 지역별 업종 구성, 산업 밀집도, 노동 특성에 따라 다양한 위험 요인에 맞춰 선제적·맞춤형 예방 활동이 가능한 것이다.

유사한 지방자치단체 사업으로는 경기도의 ‘우리회사 건강주치의 사업’이 있다. 2019년부터 소규모 사업장 노동자, 특수고용직, 이주노동자 등을 대상으로 일반 및 특수건강진단, 사업장 위험성 평가, 작업환경 개선 컨설팅 등을 제공하고 있다.

이 공간들이 모든 노동자들에게 열려 있는 것은 아니다. 여러 정부에서 근로자건강센터를 확대하겠다고 했지만 지난 15년간 24개소를 설치했을 뿐이다. 이제는 전국 260개 지역에 센터를 확충해 기본적인 직업안전 보건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어야 한다. 직업병 판정 연계, 재활, 심리상담, 직업복귀 지원까지 통합 수행하는 거점이 될 수 있도록 말이다.

새 정부에서는 노동부와 산업안전보건공단 뿐 아니라 지방정부, 보건소가 협력하여 지역 기반 공공 체계를 구축해야 한다. 산재취약계층에 대한 촘촘한 사회 안전망을 짜는 것이 노동자의 생명과 건강을 지키는 국가의 책임을 다하는 길이다. 작은 일터 노동자에서 플랫폼 노동자까지, 누구도 예외 없이 보호받을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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