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 세계에서 인공지능(AI) 패권 경쟁이 격화되는 가운데 컴퓨팅 인프라 확보 전략이 국가 경쟁력을 좌우하고 있다. 최근 중국이 개별 데이터센터 중심의 '점(點)' 전략에서 전국적 규모 '네트워크(網)' 전략으로 전환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개별 데이터센터 확충에 머물러 있다. 정부의 '국가AI컴퓨팅센터' 계획은 방향성은 옳지만 규모와 접근법에서 한계가 뚜렷하다. 중국이 전국 150개 스마트 컴퓨팅 센터를 연결하는 거대 네트워크를 구축하는 동안 우리는 여전히 '점'을 늘리는 데 그치고 있다.
최근 초거대 AI 모델 '딥시크' 사례는 컴퓨팅 파워 부족이 현실적 위협이 될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이는 우연한 사고가 아닌 필연적 흐름을 보여주는 사례다. AI 모델은 갈수록 정교해지고 학습에 필요한 데이터 양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한다. 현 인프라로는 미래 AI 개발 경쟁을 감당할 수 없다는 명확한 신호다.
딥시크 사태 이후 중국은 컴퓨팅 인프라 확충을 강화했다. 반면 우리나라는 턱없이 부족한 컴퓨팅 인프라로 한계에 직면했다. 일부 대기업이 자체 AI 데이터센터를 운영하지만 개별 기업 중심의 분산된 접근법으로는 국가 차원의 AI 경쟁력을 확보할 수 없다.
결과적으로 컴퓨팅 공급과 수요 불균형이 심화하면서 AI 연구개발 속도는 둔화할 위험이 커지고 있다. 중국이 국가적 컴퓨팅 네트워크를 구축하는 동안 우리나라는 아직 명확한 방향조차 설정하지 못하고 있다.
AI 인프라는 자동차를 위한 고속도로와 같다. 아무리 성능 좋은 자동차(AI 에이전트)라도 달릴 도로(컴퓨팅 인프라)가 없다면 의미가 없다. 컴퓨팅 네트워크라는 AI 고속도로를 잘 건설해야만 AI 에이전트라는 자동차가 제대로 달릴 수 있다.
중국의 '동수서산(東數西算)' 전략은 단순한 인프라 확충을 넘어선 국가적 최적화 전략이다. 핵심은 데이터와 연산을 지역별로 분리해 효율적으로 처리하는 데 있다. 동부 경제 중심지에서는 데이터를 저장하고, 전력 비용이 낮은 서부 지역에서 대규모 연산을 담당한다. 데이터 접근성은 유지하면서도 연산 비용은 절감하는 최적화된 국가 컴퓨팅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있다.
반면 우리나라는 수도권에 데이터센터와 기업, 연구소가 집중돼 비효율적으로 전력을 소비하면서 비싼 땅 위에 데이터센터를 건설한다. 지금 당장 '경수동산(京數東算)' 같은 지역 특성을 고려한 국가 컴퓨팅 전략이 필요하다. 수도권에서는 데이터 저장과 실시간 처리를, 전력이 풍부한 동해안 지역에서는 대규모 AI 연산을 수행하는 분업 체계를 구축해야 한다. 이것이 한국형 컴퓨팅 네트워크의 출발점이 되어야 한다.
현 정부 정책은 전략적 접근보다는 데이터센터 늘리기에 치중하고 있다. 컴퓨팅 경쟁이 '국가 네트워크 구축' 단계로 진화한 상황에서 우리는 '점(點)' 단위 접근에 머물러 있다.
중국 정부는 AI 패권을 위해 전국 컴퓨팅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AI기업이 이를 공동 활용하도록 했다. 기업의 개별 구축으로 인해 네트워크화로 발전하지 못하는 우리나라와 달리 중국은 정부 주도하에 통합된 인프라를 제공, 산업 전체 경쟁력을 높이는 전략을 구사한다.
정부가 적극 나서 기업 간 컴퓨팅 자원을 통합 운영하는 '국가 컴퓨팅 네트워크'를 구축해야 할 시점이다. 개별 기업 경쟁이 아닌 국가 차원의 전략적 접근이 필요하다. 데이터 보안과 해킹 방지를 위한 강력한 보안 체계 구축도 필수다.
AI 경쟁력은 단순한 기술이 아닌 국가 인프라의 문제다. 중국이 전국 AI 컴퓨팅 네트워크를 구축하며 AI 패권 경쟁에서 유리한 고지를 차지하려는 지금 우리도 국가 컴퓨팅 네트워크 구축 전략을 시급히 수립해야 한다. 개별 점(點)에서 통합된 망(網)으로의 전환은 선택이 아닌 필수다. 지금 행동하지 않으면 글로벌 AI 패권 경쟁에서 영원히 뒤처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