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들

2024-07-03

강방영 시인/논설위원

신라 초기 왕들의 호칭이 눈길을 끌었다.

제1대 왕 박혁거세 ‘거서간’은 ‘존귀한 사람’이란 뜻이며 제2대 왕 남해 ‘차차웅만’은 무당이나 제사장을 뜻하고, 제3대부터 제16대까지는 ‘이사금’이라고 불렀는데 그 뜻은 ‘이빨 자국’ 또는 ‘연장자’라고 한다. 이는 석탈해가 처음 왕 자리를 제안받았을 때 치아의 수를 비교하며 사양했던 때부터 쓰였다고 한다. 제17대부터 제22대까지는 ‘마립간’, 즉 ‘왕 중의 왕’이라는 뜻이었다니, 소박하던 공동체 사회가 야심에 찬 왕 중심 국가로 바뀌는 시기 같다.

이 초기 왕들은 출생 또한 현실 너머 다른 세계와 연결된 듯 신비하다. 박혁거세는 알로 태어나고, 이빨 자국 왕 석탈해 역시 알로 태어나 돌 상자에 담겨 바다에 버려졌다가 아이가 되어서 구조됐다고 한다. 과학 기술 발달 이전에 인류가 지니던 세계에 대한 경외감과 상상력을 보여주는지도 모른다.

이름은 한 존재를 정의하면서 그 속에 시대상도 반영하는 듯하다. 사는 도중에 스스로 선택하는 새 이름도 있고 종교 단체가 부여하는 이름도 있는데 미국 원주민 중에는 훌륭한 일을 했을 때 이름을 바꾸고 공동체에 선포하는 전통도 있었다고 한다.

중국과 조선이 가졌던 시호 풍습, 왕이 죽으면 계승한 새 임금이 사망한 왕에게 새로 지어주는 이름은 마무리된 한 평생을 종합 평가하여 내린 결론처럼 보인다. 이와는 정반대로 죽은 사람에게서 그 이름을 박탈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는 이집트 파라오들의 미라 연구 과정에서 드러난 사실이다.

3500여 년 전 파라오들의 미라는 영상의학자와 역사가, 형사 등이 첨단 기술을 동원하여 그 삶을 추적한다. DNA 검사 등으로 파라오들의 족보도 밝힌다. 그들은 겹겹의 황금 관에 들어있던 소년 왕이 단명한 이유가 소년 왕의 부모가 친 남매간이었기 때문임도 알아내었다.

이름 없는 기이한 미라가 있어 그 신분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특이한 사실이 드러났다. 당시의 재판 기록 등을 추적하여 묻힌 역사를 파헤치니 그 미라는 파라오의 아들이었다. 파라오의 자리에 오르려고 아버지를 살해하고 반역을 꾀하다가 실패해 사형당하면서 그의 이름이 모든 기록에서 지워진 것이었다. 당시 믿음에 따르면 불러 줄 이름이 없으면 사후 세계에 들어갈 수가 없고 영원한 떠돌이가 되고 만다. 이름을 박탈하는 것은 최고의 형벌이었다.

지금 인류는 생태계에 거대한 영향을 미쳐서 지구의 암세포라고 할 정도이다. 환경 파괴와 다른 생명체 착취는 일상이 됐으며 무한한 호기심은 인간의 작은 뇌 속에 우주를 담으려고 끝없이 뻗어 가는가 하면, 한편으로는 유전자에 가위질로 편집을 시도하니 앞으로 인류는 준 조물주하고 불려야 할 듯 하다.

인공지능은 어떠한가. 현재는 생각하는 기계일 뿐이지만 점차 유기체의 신경 활동 과정을 모방한 ‘액체 전산망’을 도입하면 현실 세계에 물리적으로 진입하여 역동적으로 참여하게 될 것이라는 전망이다.

지구상에 새로운 디지털 종이 탄생하여 그 이름을 획득하게 되는 것이다. 새로운 이름의 탄생은 미지의 별이 우리 삶에 들어오는 것과 같지 않을까. 다양한 새 이름들과 함께 변모할 세상은 더욱 흥미진진해질 것도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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