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옌스 스톨텐베르그 노르웨이 재무부 장관은 비록 각료 신분이지만 국제사회의 거물이다. 2000년대 들어 두 차례에 걸쳐 9년 7개월 동안 노르웨이 총리를 지냈고, 2014년부터 10년간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사무총장을 역임했다. 나토를 떠난 뒤 유유자적하던 그는 올해 2월 노르웨이 내각에 장관으로 복귀했다. 미국과 관세 협상을 앞둔 노르웨이 정부가 SOS(구조 요청)를 보냈기 때문이다. “위기에 처한 조국에 도움이 된다면 자리의 ‘급’이 뭐 중요하겠나”라는 스톨텐베르그의 자세는 공직자의 귀감이라고 하겠다.
스톨텐베르그는 김대중(DJ) 전 대통령과 인연이 깊다. 2000년 노벨평화상 수상자로 선정된 DJ가 시상식 참석차 오슬로에 갔을 때 스톨텐베르그가 노르웨이 총리로서 DJ를 환영했다. 당시 DJ는 노르웨이가 북한과 수교한 점을 들어 “평양에 상주 대사관을 개설하라”고 권유했다. 이에 스톨텐베르그가 “인구 500만명의 작은 나라 노르웨이가 세계 모든 국가에 외교 공관을 두긴 어렵다”며 정중히 거절한 것은 유명한 일화다.
DJ와 달리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는 악연이다. 스톨텐베르그가 나토 수장이던 2017년 취임한 트럼프는 4년 임기 내내 나토와 갈등을 빚었다. “동맹국들이 방위비 지출을 늘리지 않으면 미국은 나토를 탈퇴할 것”이란 트럼프의 협박은 스톨텐베르그를 난처하게 만들었음이 분명하다. 2020년 11월 미 대선에서 트럼프가 낙선하고 나토 등 동맹을 중시하는 조 바이든 후보가 당선됐을 때 스톨텐베르그는 속으로 기뻐했을 것이다.
최근 노르웨이 현지 매체가 흥미로운 사실을 보도했다. 지난달 오슬로 시내를 거닐던 스톨텐베르그에게 느닷없이 한 통의 전화가 걸려 왔는데, 발신자가 다름 아닌 트럼프였다는 것이다. 기사에 따르면 트럼프는 스톨텐베르그에게 대뜸 노벨평화상 유력 후보에 관해 물었다. 매년 노벨평화상 수상자를 선정하는 기관이 바로 노르웨이 노벨위원회다. 스톨텐베르그는 트럼프와 통화한 사실은 인정하면서도 노벨평화상을 주제로 대화를 나눴는지에 대해선 “언급하지 않겠다”고 했다. 트럼프의 노벨평화상 수상을 향한 집념이 어느 정도인지 짐작할 만한 대목이 아닐 수 없다.
김태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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