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오기의 문화기행] 암스테르담 운하-물 위의 길, 빛의 도시를 걷다

2025-12-05

비가 그치고 난 뒤의 암스테르담은 마치 한 폭의 수채화 같다. 흐린 하늘 아래 물방울이 스며든 창가, 운하 위를 유영하듯 미끄러지는 보트들, 그리고 붉은 벽돌의 중앙역이 햇빛을 받아 황금빛으로 빛난다. 도시의 시간은 멈추어 있지 않다. 다만, 흐름과 멈춤의 경계가 물 위에서 부드럽게 녹아 있을 뿐이다.

운하는 암스테르담의 혈관이다. 이 도시는 땅보다 물이 먼저 태어났다. 17세기 네덜란드 황금기의 상인들이 바다와 도시를 연결하기 위해 파 놓은 수로는, 지금도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는 삶의 통로다.

‘DIRCK VAN OS’라 쓰인 작은 유람선이 정박해 있다. 꽃으로 장식된 좌석 사이로 빗물이 반짝인다. 선원들은 주황색 점퍼를 입고, 마치 예의 바른 춤사위처럼 밧줄을 정리한다. 이곳에서의 일상은 물 위에서 시작되고, 물 위에서 끝난다.

유리창에 맺힌 빗방울 사이로 햇살이 비친다. 운하 위를 미끄러지는 보트의 엔진음, 트램의 철제 바퀴가 그리는 선, 그리고 멀리서 들려오는 자전거 벨 소리가 도시의 교향곡처럼 어우러진다.

암스테르담의 하늘은 늘 변화무쌍하다. 잠시 전까지 쏟아지던 비가 그치면, 이내 무지갯빛이 운하 위로 떨어진다. 사람들은 우산을 접고, 커피 한 잔을 들고, 그 변화무쌍한 하늘을 바라보며 웃는다.

붉은 벽돌과 황금빛 문양으로 장식된 중앙역은 마치 시간의 문처럼 서 있다. 이곳은 수많은 여행자의 출발점이자 귀환의 상징이다. 르네상스풍의 화려한 외벽 위로 하늘이 푸르게 열리고, 전차선이 거미줄처럼 얽혀 있다. 그 위로 구름이 천천히 흘러가며, 도시의 속도를 조용히 늦춘다.

운하의 다리 위, 붉은 제라늄과 분홍색 꽃들이 가을바람에 흔들린다. 그 너머로 보이는 네덜란드 국기가 바람결에 펄럭인다. 꽃들은 잠시의 존재지만, 그 짧음 속에서 계절의 빛을 다 품는다. 마치 이 도시의 사람들처럼-덧없지만 강인하게, 흐르지만 사라지지 않는다.

암스테르담은 유럽의 다른 도시들처럼 돌로 지어진 것이 아니라, 물 위에 떠 있는 기억의 도시다. 이곳에서는 하늘과 운하, 사람과 보트, 빛과 그림자가 서로를 비추며 공존한다. 운하의 물결에 비친 구름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길이란 꼭 땅 위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가끔은, 물 위에 떠 있는 시간 속에서도 사람은 여전히 길을 걷고 있다. 비와 햇살이 교차하는 순간, 도시도 여행자도 잠시 물 위에서 숨을 고른다.”

권오기 여행 아티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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