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설에게’
- 송용탁 시인
숫눈 위를 걷는다
너무 하얘서 아플 때도 있는 것이다
괜찮냐고 묻지 말아야 한다
어디선가 전화가 오면 나도 모르게
울컥 지구 반대편 해 지는 소리를 듣게 된다
둥근 지구도 때론 평평해지는 날이 있다
몸이 눈 속에 가라앉을까 뒤꿈치에 힘을 준다
애쓰지 마라고 눈이 다시 내린다
떠난 사람은 늘 인사가 없다 그래서
누군가의 뿔은 먼 곳을 향해 애쓴다
발바닥이 흥건하다 원래
보이지 않는 곳에서 진짜 눈물이 온다
약봉지를 힘껏 털어 넣어도 눈이 멈추지 않는다
누군가의 소주잔이 울컥 흔들렸다
눈이 와서 잠시 미끄러진 그리움이었다고 하자
태어나기 전부터 그리웠던 걸
걷다가 뒤돌아보는 그런 날이었다.
<해설>
폭설이 덮인 세상, 시적 자아가 숫눈 위를 걸으면서 “너무 하얘서 아플 때”를 맞이합니다. 눈에 덮인 세상에서는 누구나 아프니 “괜찮냐고 묻지 말아야 한다”라고 합니다.
지구가 평평해지도록 내리는 폭설이어서, 어디선가 전화가 오면 자신도 모르게 “울컥” 슬픔이 몰려오고, 어찌나 적막한지 “지구 반대편 해 지는 소리”까지 들려온다고 했습니다.
폭설은 마침내 온 세상이 평평해지도록, 눈 속으로 몸이 가라앉을 만큼 내립니다.
폭설이 내려 적막한 세상에서 “먼 곳으로 떠난 사람”이 그리워 눈물이 흐릅니다. 그래도 눈이 멈추지 않습니다.
눈이 내리고 “누군가의 소주잔”이 울컥 흔들리고, 그리움이 깊어갑니다. 이 그리움은 “태어나기 전부터 그리웠던” 순백의 원초적인 그리움입니다.
언제 이런 폭설의 날이 올까요. 나도 폭설에 덮인 적막한 눈길을 걸고 싶습니다. 순백의 슬픔과 그리움을 만날 수 있을 테니까요.

강민숙 <시인, 문학박사>
저작권자 © 전북도민일보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포토에세이] 푹신푹신 뽁뽁이… “동장군 물럿거라”](https://img.segye.com/content/image/2025/12/04/20251204518302.jpg)
![[권오기의 문화기행] 암스테르담 운하-물 위의 길, 빛의 도시를 걷다](https://www.usjournal.kr/news/data/20251206/p1065568022804420_904_thum.jpg)



![[사진 한 잔] 흑토 사람들](https://pds.joongang.co.kr/news/component/joongang_sunday/202512/06/2f56ed36-f9f0-4ad8-8149-2044f8578c3c.jpg)
![[김상문의 달빛愛] 올해 마지막 슈퍼문의 약속](https://image.mediapen.com/news/202512/news_1064005_1764902788_m.jp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