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자력발전소 부지 내 임시 저장 중인 사용후핵연료 저장용량 포화시점이 5년 앞으로 도래한 가운데, 지속가능한 차세대 원자로에 대한 선제적 지원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한국경제인협회(이하 한경협)는 김용희 카이스트 교수에 의뢰한 ‘차세대 원자로의 기술 동향과 정책 과제’ 보고서를 통해 13일 이같이 밝혔다.
보고서에 따르면, 차세대 원자로는 2030년대 이후 상용화될 것으로 예상되며 현세대 원자로와 비교할 때 보다 높은 지속가능성, 안전성, 친환경성을 개발 목표로 하고 있다.
사용후핵연료 재활용 가능, 최대 350년치 전력수요 충당
보고서는 차세대 원자로가 사용후핵연료 처리 문제와 우라늄 수급 문제를 동시에 해결할 수 있는 지속가능한 에너지원이라고 강조했다. 차세대 원자로는 재처리 과정을 거친 후에 사용후핵연료를 재사용할 수 있다.
보고서는 차세대 원자로를 통해 현재 한국에서 보관 중인 사용후핵연료 약 1만9000t을 재활용하는 것만으로도 국내 전력수요를 최대 350년간 충당할 수 있을 것으로 추산했다.
중대사고 발생 가능성 1000만년에 1회 이하, 현세대 원자로의 10% 이하
차세대 원자로가 현세대 원자로와 대별되는 점은 중대 사고의 주된 원인이 되는 냉각 기능이 상실되는 경로를 원천적으로 차단한다는 점이다. 차세대 원자로는 연간 중대사고 빈도(CDF)가 1000만년에 1회 수준으로 현세대 원자로 CDF의 10% 이하로 예상된다.
이는 현세대 원자로가 노심(원자로에서 핵연료가 위치하여 핵분열이 일어나는 영역)의 냉각 과정에서 높은 압력(약 150기압)의 물을 사용하는 것과 달리, 차세대 원자로는 대기압 상태(1기압)의 냉각재를 사용해 증발되거나 외부 유출로 냉각재를 상실할 가능성이 현저히 감소하는데 기인한다.
차세대 원자로는 사용되는 냉각재의 특성에 의해 전원이 끊기는 등의 비상 상황에서도 추가 조치 없이 스스로 안정적인 상태를 유지하는 것으로 평가된다.
고온 운전으로 높은 효율성, 탄소 배출량 태양광의 25% 이하 수준
보고서는 고온 운전이 가능한 차세대 원자로는 전력 생산 공정의 효율성을 제고해 온실가스 감축에 기여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차세대 원자로는 설계상 운영 온도가 450~1000℃로 현세대 원자로(300℃)보다 높아, 많은 열에너지를 활용하는 전력 생산 공정을 효율적으로 운영할 수 있다.
원자력 발전의 이산화탄소 배출량의 상당 부분은 우라늄 채굴 및 농축 과정에서 발생한다. 차세대 원자로를 통한 사용후핵연료 재활용 기술이 현실화된다면 우라늄 의존도가 낮아지고 사용후핵연료 발생이 현저히 감소한다.
일반적으로 현세대 원자로의 온실가스 배출량은 태양광의 4분의 1 수준인 것으로 평가되는데, 차세대 원자로의 배출량은 이보다 더 적을 것으로 추정된다.
보고서는 차세대 원자로가 온실가스 감축에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할 것으로 전망했다.
글로벌 차세대 원자로 경쟁 격화, 한국 경쟁력 확보를 위해 정책지원 필요
보고서는 미국, 일본, 프랑스 등 주요국에서 선제적으로 인허가 제도를 정비하고, 연구개발 및 실증에 예산을 지원하는 가운데, 한국의 경쟁력 확보를 위한 정책과제를 제시했다.
먼저 실증부지 확보 및 실증로 건설 지원을 제안했다. 차세대 원자로가 상용화를 거쳐 수출 실적으로 연결되기 위해서는 적극적인 실증 과정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보고서는 국내 실증부지를 조기에 확보해 다양한 기업이 참여하도록 독려할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다.
이외에도 원천기술 확보를 위해, 민간이 해외 정부 및 기업과 협력해 국외 실증로(실증용 원자로)를 건설할 경우에도 이를 지원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해야 한다고 밝혔다.
공공 기술·설비 개방 및 생태계 조성도 강조했다. 현재 한국의 차세대 원자로 기술 개발은 공공에서 주도해 기획되고 있으며, 민간은 여기에 투자함으로써 협력 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그러나 민간이 상용화를 주도할 수 있도록 공공의 핵심 기술 및 연구개발 설비의 접근성을 확대해야 한다고 보고서는 강조했다.
보고서는 한국 정부가 2024년 2조5000억원 규모의 ‘한국형 차세대 원자로 기술개발 및 실증 프로그램(K-ARDP)’를 발표하면서 차세대 원자로에 대한 선제적인 지원 의사를 밝힌 만큼, 실용적인 시각에 입각한 장기적 지원책을 추진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신속한 인허가 및 규제 시스템 혁신도 주장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미국 정부는 성공적인 차세대 원자로 시스템 개발을 위해 반드시 필요하다고 요구되는 규제 시스템 혁신 및 정비를 강하게 추진하고 있다.
예를 들어 2024년 7월 ADVANCE 법안을 공식 제정해 원자력규제위원회(NRC)의 인허가 수수료를 절감하고, 조기 부지허가 검토 등을 통해 산업계 인허가 부담을 줄여줬다.
영국은 2050년까지 최대 24기가와트(GW)의 원자력 보급을 목표로 부지, 자금 조달, 규제 등의 세부 계획을 로드맵(2024년 1월)에 제시한 바 있다.
반면 한국은 원자력 보급 목표를 제시하는 제11차 전력수급기본계획과 사용후핵연료에 대한 관리 절차 및 원칙을 제시하는 방사능 폐기물 관리법안 관련 여야간 합의가 이뤄지지 않는 등 원자력 산업 발전을 저해하는 요인에 대한 선제적 해결이 요구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