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장호의 사자성어와 만인보] 복수난수(覆水難收)와 강태공(姜太公)

2024-12-16

주(周. 기원전 1046~기원전 256)나라 창업 공신 가운데 으뜸인 강태공(姜太公)의 본명은 상(尙)이다. 그와 관련해 기다림의 어려움과 소중함을 동시에 환기시키는 일화가 하나 있다. 그는 몰락한 강족(姜族) 명문가 후예였으나, 성장기와 청년 시절의 처지나 행색을 보면 천민에 가까웠다. 첫 부인 마(馬)씨 집안에 데릴사위로 들어갔지만 그녀는 남편의 큰 포부를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여인이었다. 천하를 가슴에 품은 강태공을 그저 차분히 생업에 집중하지 못하는 무능한 남편으로만 여겼다.

그녀는 차츰 실망하고 집을 나가 얼마 후 재가(再嫁)했다. 훗날 강태공은 주나라가 천하를 차지하는 데에 큰 공을 세우고 제(齊)나라를 분봉(分封)받았다. 이렇게 귀한 신분이 되자 떠났던 마씨 부인이 그를 찾아왔다. 재결합을 내심 기대하고 온 것이었다.

강태공은 그녀에게 물을 한 그릇 가져오라고 요청한다. 그녀가 물을 가져오자 그 물을 바로 땅에 쏟고는 말한다. “만약 당신이 이 물을 다시 그릇에 주워담을 수 있다면 우리가 함께 살 수 있습니다.” 남편의 성공을 기다리지 못하고 떠났던 마씨 부인은 이내 강태공의 의도를 알아챘다. 기다림의 과정이 없었으니 재결합도 불가능하다는 것을 분명히 깨달았다.

이번 사자성어는 복수난수(覆水難收. 엎어질 복, 물 수, 어려울 난, 거둘 수)다. 앞의 두 글자 ‘복수’는 ‘엎질러진 물’이다. ‘난수’는 ‘회수하기 어렵다’라는 뜻이다. 두 부분이 합쳐져 ‘바닥에 엎질러진 물은 다시 그릇에 담기 어렵다’라는 의미가 된다. ‘복수난수’는 이 강태공 관련 일화에서 유래했다. 원래 ‘복수불반분(覆水不返盆)’ 이렇게 5글자였다. 용례를 보면, ‘이미 발생했거나 저질러진 일은 다시 되돌릴 수 없다’라는 의미로 주로 쓰인다.

당시 청동기 시대였던 상(商. 기원전 1600~기원전 1046)나라를 다스리던 주(紂)는 폭군이었다. 달기라는 여인에 빠져 가짜 봉화를 올리는 등 어처구니없는 행태를 보이기도 하고, 주지육림(酒池肉林)을 조성해 기이한 잔치를 즐겼다. 가뜩이나 점(占)과 인신공양 풍습 등 신을 과도하게 숭배하고 인명을 경시하던 문화였는데, 이런 잔혹한 통치자까지 등장하자 민심이 상나라를 떠났다. 국정의 혼란이 계속되자 훗날 주 문왕(文王)이 되는 서백(西伯) 창(昌)에게 민심이 옮겨가고 있었다. 문왕과 강태공이 처음 마주한 낚시터 일화는 꽤 유명하다.

하루는 그가 소문을 듣고 강태공을 방문했다. 이 무렵 중년의 강태공은 곧은 바늘을 사용하며 물고기 대신 세월을 낚고 있는 인물로 세상에 알려져 있었다. 하지만 실제로는 한 국가를 경영하기에 부족함이 없는 지략을 궁리하며 보필할 군주를 탐색하던 중이었다.

문왕이 다가와 먼저 질문했다. “노인장은 낚시가 즐겁습니까?” 잠시 침묵하던 강태공이 준비된 답변을 한다. “뭔가 일을 할 때, 군자는 그 뜻이 이루어지는 과정 하나하나를 참을성 있게 기꺼이 즐깁니다. 소인들이 그 일의 결과로 생기는 이익만을 즐기는 것과는 다른 점이지요.” 몇 마디 대화가 더 오가고 문왕은 흔쾌히 강태공을 등에 업고 무려 800걸음을 걸었다. 주나라 800년 역사를 암시하는 첫 만남이었다.

강태공은 이렇게 문왕에 의해 최고 사령관 지위에 발탁되고도 왕조 교체가 실질적으로 가능한 때가 무르익길 더 기다렸다. 그러면서 병서(兵書) ‘육도(六韜)’를 저술하고 주변 부족을 결집시키는 등 준비에 힘썼다. 그 사이 문왕이 세상을 뜨고 그의 아들이자 강태공의 사위인 무왕이 왕위를 이어받았다.

상나라를 멸망시킨 ‘목야의 전투(牧野之戰)’를 며칠 앞두고, 무왕은 점괘가 나쁘다며 결단을 망설인다. 이 순간 강태공이 무왕을 강하게 설득하고, 큰 도끼를 치켜들고 군대를 선봉에서 지휘했다. 기다림과 확신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강태공과 무왕은 4만 명 조금 넘는 급조된 부족 연합 병력을 이끌고 과감히 황허(黃河)를 건넜다. 이어 신속히 행군해 목야 초원에서 70만이 넘는 상나라 군대를 맞아 단숨에 격파하는 놀라운 성과를 보여준다. 이 단 한 번 승부로, 상-주 왕조 교체는 되돌릴 수 없는 일이 됐다.

홍장호 ㈜황씨홍씨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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