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문화] 김낙수와 유만수는 왜 불행한가

2025-11-13

사회적인 성공을 보유한 두 사람

수입보다 ‘체면 추락’이 삶 괴롭혀

불행은 ‘어쩔 수 없는 것’이 아니라

인생의 기준을 남에게 맡긴 결과

진급 누락 없이 스트레이트로 승진한 대기업 25년 차 부장이다. 서울에 자가 아파트도 있다. 게다가 아들은 명문대생. JTBC 드라마 ‘서울 자가에 대기업 다니는 김 부장 이야기’의 주인공 김낙수(류승룡)가 자랑스럽게 내세우는 명패들이다. 실제로 대한민국이 성공이라고 규정한 것들이다. 그래서 김낙수 스스로도 자화자찬을 늘어놓는다. “위대한 인생”이라고.

그런데 이 남자, 말은 번지르르한데 자존감은 그리 높아 보이지 않는다. 그는 매사 타인과 자신의 삶을 비교한다. 전문대 출신 후배가 치고 올라오자 학벌을 무기로 정신 승리를 하고, 백수일 줄 알았던 친구가 월세 3000만원 받는 건물주가 돼서 나타나자 부러움에 치를 떤다. 가방 하나 살 때도 사수보다는 싸되, 후배보다는 비싼 걸 고르려 고심 또 고심한다. 그는 늘 비교를 통해 자신의 자리를 확인한다. 비교는 삶을 괴롭힌다. 자존감을 갉아먹는다. 김낙수가 행복해 보이지 않는 이유다.

‘이스털린의 역설’(Paradox of Easterlin)이란 말이 있다. 미국의 경제사학자 리처드 이스털린이 주장한 것으로 ‘일정 소득 이상에서는 소득이 증가해도 행복이 증가하지 않는다’는 이론이다. 왜 그럴까. 이 이론의 핵심은 ‘사회적 비교’에 있다. 사회가 부유해져서 먹고살 만해져도, 친구나 동료 등의 소득도 늘어나면 비교하는 본성 때문에 행복을 덜 느낀다는 것이다. 즉, ‘얼마나 버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남들보다 더 버느냐’가 행복에 더 민감하게 작용한다는 것이다.

감낙수의 구축 아파트는 이 이론의 정점을 보여준다. 김낙수는 10년 전 매수한 구축 아파트 시세가 2배나 뛰어오른, 부동산 가격 폭등의 수혜자다. (알고 보니 낙수의 반대를 무릅쓰고 매수를 감행한 아내 덕이었지만, 그러거나 말거나) 절묘한 타이밍에 집을 샀다는 자신감이 상당하다. 그러나 자기보다 어린 경쟁팀 부장이 서울 노른자 땅에 있는 신축 아파트에 살고, 그로 인해 더 큰 시세 차익을 봤다는 사실을 알고 나서 상대적 박탈감을 느낀다. 그런 낙수를 보면 미국 소설가 고어 비달의 말이 떠오른다. “친구가 성공할 때마다 나는 조금씩 죽는다”고 한 말이. 낙수도 그렇게 비교를 통해 자신을 조금씩 죽인다.

김낙수와 사정은 조금 다르지만, 여기 직업 자체가 정체성인 또 한 명의 사람이 있다. 영화 ‘어쩔수가없다’의 유만수(이병헌). 김낙수의 동년배이고, 낙수처럼 한 회사에서 25년간 일해 관리자 자리에 오른 인물이다. 그리고 역시나 사회가 성공이라 부르는 것들을 보유하고 있다. 온실과 정원이 딸린 단독주택에 사는 그는 분재라는 고급 취미를 향유하고, 아내와 사교댄스를 배우며, 사교육비가 많이 드는 첼로 레슨을 딸에게 지원한다. 그는 (‘성공’을 위해 달려온 것들을 ‘행복’이라 착각하며) 만족감을 느낀다. 그래서 생각한다. ‘모든 걸 이뤘구나.’ 그러나 이뤘구나 하는 찰나, 구조조정을 당하면서 모든 걸 잃는다.

그는 재취업을 결심한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동종 업종의 경쟁자를 살인하겠다는 극단적 방법을 선택한다. 어쩔 수가 없노라며. 그런데 정말 그 방법밖에 없었을까. 실직했다고 하나, 만수의 상황은 당장 굶어 죽을 정도는 아니다. 아내 말처럼 집을 팔면 아파트 전세로 옮겨갈 수 있고, 마트에라도 취직해서 돈을 벌 수도 있다. 그러나 그런 선택지를 그는 애초에 지워버린다. 박찬욱 감독은 여러 인터뷰에서 이를 “자기 생활 수준을 유지하려는 중산층의 욕망”이라고 표현했다. “이것은 빵을 얻기 위한 전쟁이 아닌, 타인과 끊임없이 비교되는 인터넷 시대에 중산층 생활 수준에서의 전락을 피해야겠다는, 소위 말하면 아주 속물적인 이야기”라고.

결국 그가 어쩔 수 없다고 여긴 건, 먹고사니즘이 아니다. 그건 계층 사다리에서 떨어져 구겨질 자신의 ‘체면’이다. 이스털린이 말했듯, 행복을 ‘절대적 수준’보다 비교 우위에 의한 ‘상대적 수준’에서 찾는 자본주의 사회의 민낯이기도 하다. 만수가 행복할 수 없는 것이야말로, 어쩔 수 없는 일이 아니었을까.

정시우 대중문화 칼럼니스트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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