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미 양국의 ‘2+2 통상협의’에서 미국이 환율 문제는 거론하면서 ‘관세전쟁’이 ‘환율전쟁’으로 흐를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이르면 다음달 발표될 미국 재무부의 환율보고서를 ‘무기’로 미국이 한국에 원화 절상 요구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미국이 다른 분야에서 성과를 내기 위해서 환율을 협상 지렛대로 활용한다면 한국의 협상력이 떨어질 수 있어 셈법이 복잡해진다. 특히 미국이 중국을 목표로 ‘환율 전쟁’을 진행한다면 위안화와 흐름을 같이 하는 원화의 변동성을 예측하기 어려워진다는 우려도 나온다.
발표 임박한 환율보고서···한국 관찰대상국 지정 전망 — 당장 주목할 부분은 미 재무부가 이르면 다음달 환율 보고서를 발표한다는 점이다. 매년 상·하반기에 주요 20개국의 환율 동향을 평가하는 미국은‘지난 1년간 150억 달러 이상의 대미 무역흑자’ ‘국내총생산(GDP)의 3%을 넘는 경상수지 흑자’ ‘12개월 중 최소 8개월간 달러를 순매수하고 그 금액이 GDP의 2% 이상인 경우’ 등 3가지를 판단 기준으로 삼는다. 3가지가 모두 충족되면 ‘환율조작국’으로 받아들여진다.
한국은 이미 지난해 11월 대미무역흑자와 경상수지 흑자 요건이 충족돼‘환율관찰대상국’에 오른 상태다. 이번에도 같은 이유로 환율관찰대상국 목록에 오를 가능성이 크다. 미국 측이 관세협상과 더불어‘대미 무역과 경상수지 흑자’ 등을 이유로 원화 미세조정 자제나 원화 절상을 요구할 가능성이 제기된다.
과거에도 미국이 한국을 환율관찰대상국으로 지정한 뒤 원화 가치가 가파르게 상승한 적이 있다. 한국은 2016년 4월 환율관찰대상국으로 지정됐다. 도널드 트럼프 미 행정부 1기 때인 2016년 말 원·달러 환율은 1207.7원에서 2017년 말 1070.5원으로 12.8% 절상됐다. 이는 2004년 이후 13년 만에 최고 절상률이었다.
이에 미국이 환율 문제를 경제안보·투자협력·관세 등 다른 협상의제에서 양보를 얻어내는 ‘지렛대’로 활용할 수 있다는 전망도 있다.
허준영 서강대 경제학부 교수는 미국이 통상협의에서 환율 문제를 거론한 배경으로 “미국은 환율관찰대상국 지정으로 협상력을 약화시키고 궁극적으로는 미국 국채 매입 등을 통해 달러패권 유지와 무역 수지적자 완화라는 두 목적을 함께 달성하려는 것”이라고 말했다.

트럼프 행정부 2기가 ‘환율 전쟁’을 염두에 두고 있다는 점도 이같은 맥락에 힘을 싣는다.
트럼프 2기 스티븐 마이런 백악관 경제자문위원회 위원장은 지난해 ‘글로벌 무역시스템 재구성 사용자 가이드’ 보고서에서 미국 제조업의 경쟁력을 강화하고 재정적자를 줄이기 위해 달러 가치를 낮춰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보고서는 미국이 관세와 환율을 미국 무역수지 적자와 재정적자 해소 수단으로 보고 있다. 지난해 기준 미국의 무역적자는 9184억 달러로 역대 최대치를 기록했다.
특히 최근 미국의 달러 가치가 떨어지는 만큼 원화 가치가 덜 올랐다는 점에서 미국 입장에선 ‘눈엣가시’처럼 보일 수 있다. 주요 6개국 통화대비 달러 가치를 나타내는 달러 인덱스는 지난 1월13일 109.87에서 지난 11일 기준 99.404로 하락해 10.53% 평가 절하됐다. 같은 기간 원·달러 환율은 1470.8원에서 1424.1원으로 하락했다. 달러화 가치가 10% 이상 떨어졌는데 원화 가치는 3.28% 오르는 데 그친 셈이다. 미국 입장에서는 한국 정부가 인위적으로 원화 가치를 낮췄다고 주장할 수 있는 대목이다.
미국이 앞서 열린 일본과의 협의에서 환율을 의제로 포함시키지 않았다는 점도 한국과 대비된다. 엔화 환율은 올초만해도 달러당 160엔 수준이었으나 현재는 140엔대다. 엔화 가치가 10% 넘게 오른 것이다.
김광석 한국경제산업연구원 경제연구실장은 “한국이 환율 조작까진 아니더라도 꾸준히 환율 미세조정을 해왔다고 보고 미국은 아예 개입을 자제하라고 말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문제는 원화 방향성을 정부가 인위적으로 개입하기 쉽지 않다는 점이다. 최근 원화 흐름은 탄핵 정국 등 정치적 불확실성과 무역전쟁으로 인한 위험회피 심리 등이 반영된 것에 가깝다. 허 교수는 “최근 반도체에 대한 관세 불확실성 등 우리나라 경제 기초체력이 약해진 부분이 있다”고 했다.
미국이 ‘환율전쟁’의 최종 목표 대상을 중국으로 설정하고 있다면 중국 위안화에 동조하는 경향이 있는 원화의 변동성이 커질 우려도 상당하다. 미국이 요구하는대로 원·달러 환율이 움직이지 않을 수 있는 셈이다.
다만 너무 일찍 걱정할 필요 없다는 의견도 있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는 25일(현지 시간) 미국 워싱턴 D.C.에서 열린 기자단 간담회에서 “아무 생각없이 환율이 얼마 절하됐는지만 보면, 최근 몇 달간 정치 등 다른 이슈에 의해 절하된 점을 설명하기 어렵다”며 “미 재무부와 이야기하는 게 전문적인 이야기를 할 수 있어 나쁘지 않다”고도 했다. 한국의 특수성을 설명할 상대로 전문성을 가진 미국 재무부가 유리하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