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칠 때 오세요…산골짜기 망경산사

2025-04-04

완판 행렬 불교박람회, ‘부처핸썹’ 뉴진 스님, 그리고 ‘나는 절로’에 이르기까지 현재의 불교는 젊은이들의 감성을 제대로 저격했다. 템플스테이 역시 세파에 지친 청춘들을 불러모은다. 그중에서도 강원 영월 망경대산 자락에 있는 작은 사찰 ‘망경산사’는 2030들을 끌어모으는 템플스테이로 이름난 곳이다. 이른바 피켓팅(피 튈 정도로 치열한 티케팅)을 하는 수준이라고 입소문이 났다.재방문율은 30%를 넘는다. 스님과 차담, 사찰음식, 자연 속에서의 휴식, 명상을 통한 힐링 등 템플스테이 하면 떠오르는 프로그램들이 뻔한데 그곳엔 도대체 뭐가 있을까.

지난달 22일 망경산사를 찾았다. 목적지 도착 20분 정도를 남겼을 때 내비게이션 화면에 나타난 지도는 마치 인체해부도의 소장을 보는 듯했다. 45도는 족히 될 법한 가파른 경사로가 꼬불꼬불 이어지는 ‘산꼬라데이길’(강원도 방언으로 ‘산골짜기길’이라는 뜻)을 따라 오르니 낙엽송, 자작나무가 병풍처럼 둘러싼 망경산사가 나타났다. 길 한쪽에 아직 덜 녹은 눈이 쌓였고 그 곁으론 봄의 시작을 알리는 복수초가 노란 꽃잎을 내고 있었다.

1박2일 템플스테이 일정에 참가한 16명 중 10명이 90년대생이다. 그중 함께 온 세 커플은 단숨에 눈길을 끌었다. “놀러 갈 만한 좋은 펜션도 많은데 왜…” “템플스테이는 남녀 각방인 거 아시죠?” “젊은 분들이 너무 예쁘네요” 각양각색의 농담과 덕담이 잠시 오갔다.

산과 들을 품은 밥상

“계절마다 다른 나물들이 자라요. 눈개승마를 캐고 곰취를 뜯고. 스님이 그걸 요리해서 밥상에 올려주시거든요. 다른 나물이 나는 계절의 밥상도 너무 궁금한 거죠.”

망경산사의 공양은 ‘맛 좀 안다’는 사람들 사이에 맛있기로 소문이 났다. 그럴 만도 하다. 해발 800m 청정한 산중 도량에서 자라는 산나물과 약초는 300여종, 나무는 200종이 넘는다. 전국 산과 들에서 나는 산나물을 총망라한 산나물 박물관 같다. 매주 토요일 오후 시작되는 템플스테이의 주요한 일정은 이 ‘박물관’을 1시간가량 살펴보는 것이다. 구절초와 눈개승마가 이제 막 움을 틔운 봄의 초입이라 절정의 모습은 아니지만, 생기로 물들기 시작하는 나뭇가지를 보는 것만으로도 즐거운 기대감이 든다.

‘피켓팅’ 부르는 영월 작은 사찰

종교색 적고 참가자 주로 2030

별보기 등 다양한 재능기부 행사

각양각색 산나물 밥상도 ‘명물’

한때 번성한 탄광촌이던 마을. 1989년 폐광되고 사람들이 떠난 자리에 자급자족 선농일치 삶을 실천하는 수행자들이 모였다. 버려진 민가와 창고, 탄광사무실을 보듬어 수리하고 손톱에 피가 맺히도록 돌을 치우며 뙤약볕 아래 호미질을 쉬지 않았다. 그렇게 대웅전과 공양간이 만들어졌고 회색빛 산골은 살아 있는 식물도감이자 꽃 대궐이 됐다. 이곳에선 주지 하원 스님을 비롯해 모두 5명의 스님이 수행공동체를 이루고 있다. 템플스테이 프로그램을 시작하게 된 것은 2021년부터다. 우연히 찾은 여행객들의 발걸음이 거듭되고 입소문이 나면서 요청이 이어졌다. 스님들 입장에선 노동과 참선만으로도 여력이 없었지만 결국 마음을 냈다. 하원 스님은 “삶에 치여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이곳의 자연이 쉼과 치유를 나누어줄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 충분하다”고 말했다.

스님이 차려준 밥상엔 두릅과 속새, 눈개승마와 시금치, 산마늘, 청국장, 그리고 케일가루로 색깔을 낸 찰밥이 올랐다. “눈개승마는 잘게 찢어놓은 고기 같아요.” 다들 서너 번씩 밥과 찬을 더 가져와 먹는다. 겨울부터 3월 말까지는 나물이 귀한 때인데도 이전에 갈무리해둔 묵나물 덕분에 밥상은 풍성하다. 망경산사는 사찰음식 대가로 알려진 백양사 천진암 정관 스님이 사랑하는 곳으로도 유명하다. 정관 스님과 함께 찾았던 미쉐린 3스타 강민구 셰프도 각양각색 산나물을 보며 감탄을 금치 못했다.

자연, 역사, 일상과 함께

영월과 정선, 태백, 삼척은 과거 탄광 산업이 번창했던 곳이다. 이 지역을 따라 석탄을 운반했던 길들은 ‘운탄고도’라는 이름의 트레일코스가 됐다. 망경산사는 ‘광부의 길’이라는 별명이 있는 운탄고도 3길 자락에 있다. 템플스테이 참가자들의 숙소는 탄광 간부들이 사용하던 사무실이었다. 옥동납석광업소가 전성기를 구가했던 1960~1970년대 이 일대엔 초등학교만 3개였고 극장과 다방도 있었다. 산길 곳곳에선 지름 20㎝가 채 안 되는 옛날 전봇대를 볼 수 있는데, 전기가 개통된 마을이 극히 드물던 시대였음을 고려하면 당시 이곳의 생활상을 짐작할 수 있다. 망경산사에서 1㎞ 남짓 산 위로 올라가면 1958년 창건된 만경사가 있다. 망경산사 스님들이 아침저녁으로 오르내리며 관리하고 있는 만경사는 수십 년 전 출근길 광부들이 찾아 하루의 안녕과 무사를 기원하던 소박한 열망과 소원을 품고 있다.

일몰을 앞두고 참가자들과 함께 만경사에 올랐다. 마을과 들녘 뒤로 펼쳐진 산등성이 위엔 연붉은 하늘빛이 번졌다. 익살스러운 포즈로 사진을 찍으며 까르르 터지던 웃음이 잠시 멈췄다. 다들 홀린 듯 숨소리조차 내지 않는 ‘해멍’의 시간이 15분 정도 지났을까. 해가 산 아래로 넘어간 하늘빛은 황홀했다. “그냥 빨려 들어갈 것 같은 하늘이네요.” “올 때마다 길 색깔도, 노을빛도 달라지는 게 신기해요.”

지난해 12월 망경산사를 처음 방문한 뒤 매달 템플스테이에 참여하고 있다는 김다정씨(29)는 “눈이 쌓이고 낙엽이 덮이고 새로 봄기운이 피어나는 모습이 볼 때마다 새로워서 아마도 계속 올 것 같다”며 “벌레를 워낙 무서워해서 여름철이 걱정은 되지만 이참에 극복하고 싶다”고 말했다.

템플스테이 프로그램은 계절마다, 때마다 달라진다. 매년 4월 말 열리는 영월 단종문화제를 함께 구경하기도 하고 산사 입구 예밀리 포도밭에서 포도를 맛보거나 와인 족욕체험을 하기도 한다. 마당을 쓸고 눈을 치우고 장작을 나르고 잡초를 뽑는 일상의 울력들도 참가자들에겐 특별한 경험이 된다. 매년 두어 차례 템플스테이에 참여하는 박효진씨(31)는 “맞아주시는 스님들과 이 공간을 생각하면 마음의 고향 같다”면서 “처음엔 자연을 보며 힐링하려는 생각으로 왔는데 이젠 눈이 올 때, 메주를 쑬 때면 자연스럽게 오고 싶은 마음이 든다”고 밝혔다.

재능을 나누고 마음을 내는 곳

망경산사 템플스테이 프로그램에는 종교적 색채가 거의 없다. 새벽예불과 108배를 할 수도 있지만 희망자에 한해서다. 스님과의 차담은 종교적 설법보다는 참가자들의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이다. 굳이 자신의 이야기를 하지 않아도, 종교가 달라도 상관없고 부담도 없다. 그렇게 소통하면서 마음이 동하기도 한다. 지난해 큰 호응을 얻었던 ‘망경산사 밤하늘 별보기’는 여행교육서비스 사업을 하는 청년스타트업 위드라잇 최창대 대표의 재능기부 덕분에 지속됐다. 몇년 전 별자리 체험 프로그램 개발을 위해 여러 곳을 답사하다 우연히 템플스테이에 참여하면서 인연이 됐다. 지난해 10월엔 청각장애인들의 별자리 체험을 위한 특별 템플스테이도 열렸다. 해발고도가 높고 맑은 영월의 밤하늘은 별자리를 관측하기에 좋다. 최 대표가 준비해 온 천체망원경으로 북두칠성, 목성, 좀생이별 등을 관찰하고 스마트폰으로 별자리도 촬영했다. “별똥별이 지나간다”는 누군가의 외침에 “저건 인공위성입니다” 하는 답변과 함께 한바탕 웃음이 터졌다. 차담실 앞마당 한편에 피운 장작불 위에선 옥수수가 익어가며 구수한 냄새를 풍겼다.

망경산사에선 종종 음악회며 필라테스나 요가 수업이 열리기도 한다. 이전에 방문했던 참가자들이 자원해서 마음을 내는 것이다. 때문에 앞으로 또 어떤 깜짝 이벤트가 마련될지는 모른다.

모든 프로그램 참여는 자유지만 한 가지는 의무사항이다. 일요일 오전 7시부터 시작되는 아침 공양이다. 견과류가 듬뿍 들어간 약밥과 미역국, 우엉조림, 고추장아찌. 평소에 아침을 먹지 않는다는 참가자들에게도 꿀맛이다. 비운 식기를 씻으며 ‘벌써부터 점심 메뉴가 궁금해진다’는 한 참가자가 조용히 속삭였다. “너무 좋은 시간이었는데, 그래서 더 끔찍해요. 내일 출근할 생각을 하니…”

망경산사 템플스테이 예약은 조계종 템플스테이 사이트를 이용하면 된다. 토·일 1박2일 프로그램이며 1인당 참가비는 8만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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