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사청, 3급 비밀 유출 정황에도 ‘문제없다’ 판단
3년 뒤 한화오션 임원...직무 연관성 논란 확산

한국형 차기구축함(KDDX) 기본설계 제안서 제출 과정에서 한화오션(옛 대우조선해양)이 ‘개념설계 보고서’를 무단 활용했다는 의혹이 제기된 가운데 해당 사안을 ‘문제없음’으로 종결한 해군 고위 간부 A씨가 3년 뒤 한화오션에 임원으로 입사한 사실이 확인됐다.
26일 복수의 업계 관계자 및 관련 자료에 따르면 방사청은 2021년 1월 보안심사위원회를 열고 한화오션의 기본설계 제안서 일부가 2012년 작성된 KDDX 개념설계 보고서(군사 3급 비밀)와 동일하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그럼에도 위원회는 “현 시점에서 비밀로서의 수준은 낮다”며 ‘문제없음’으로 결론짓고 행정조치 없이 종결했다.
당시 방위사업청 보안심사위원회 위원장으로 위원회를 주관한 A씨는 공직자윤리법상 취업제한 기간이 끝난 직후인 2024년 4월, 한화오션 임원으로 입사했다. 현재 그는 공직 재직 당시 직접 관여했던 국내 함정사업과 밀접한 업무를 맡고 있다.
한 군사 전문가는 “자신이 무혐의 결론을 내린 업체에 입사해 관련 업무를 맡고 있는 것은 명백한 직무 연관성”이라며 “공직자윤리법 제18조의2는 퇴직 공직자가 재직 중 직접 처리한 업무를 퇴직 후에도 일정 기간 취급하지 못하도록 규정하고 있어 위법 소지가 있다”고 지적했다.
일각에서는 형법상 ‘부정처사 후 수뢰죄’에 해당할 수 있다는 주장도 나온다. 형법 제131조 제2항은 공무원이 직무상 부정한 행위를 한 뒤, 나중에 뇌물을 수수하거나 약속한 경우에도 처벌하도록 하고 있다.
또 다른 방산업계 관계자는 “해당 인물이 당시 무혐의 판단을 내린 후 관련 업체에 취업한 것은 전형적인 수뢰죄 요건 중 ‘직무 연관성’에 해당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번 논란은 2023년 말 방사청 사업팀이 개념설계 원본 이관 과정에서 한화오션이 해당 자료를 무단 보관하고 있던 사실을 인지하면서 다시 불거졌다. 이후 국군방첩사령부는 수사 결과를 통해 한화오션 제안서에서 총 27건의 개념설계 보고서 무단 인용 정황을 확인했다.
그러나 방사청은 이 같은 사실을 인지하고도 고발이나 제재 없이 사안을 종결했다. 현재까지도 별도 행정조치는 이뤄지지 않았으며 향후 KDDX 상세설계 및 선도함 건조업체 선정에 이 사안이 영향을 미칠지 주목된다.
한화오션 측은 “A씨는 퇴직 후 3년이 지나 입사했기 때문에 법적으로 문제가 없고, 당시 판단 시점은 HD현대가 대우조선을 인수 추진하던 때여서 한화와는 전혀 관련이 없었다”고 밝혔다. ‘그 시기에 누군가가 로비를 했다는 식의 해석은 시기상 맞지 않다’는 설명이다.
그러나 방산업계 일각에서는 여전히 의문이 남는다는 반응이 감지되고 있다.
업계 한 관계자는 “당시 ‘문제없음’ 결론이 내려진 배경에 대해 논점이 흐려지고 있다”며 “설령 인수주체가 달라졌다고 해도, 동일 법인에 대해 무혐의 결론을 내린 인사가 그곳에 취업한 것은 문제가 있는 것”이라며 “지금이라도 방사청은 진상을 명확히 밝혀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다른 관계자도 “해당 사안은 민감한 군사기술과 관련된 만큼 수사당국이 충분히 검토하고 사실관계를 명확히 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