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한반도 안보 전문가들은 한·미가 공동 팩트시트를 통해 공개한 안보 관련 합의에 대해 “전반적으로 새 안보전략과 동맹국의 역할 사이에서 균형을 맞춘 결과”라면서도 “모호하고 불명확한 항목과 관련해 향후 이견을 노출할 가능성이 있다”고 평가했다.

특히 대통령실이 최대 성과로 내세운 원자력추진 잠수함(원잠) 건조와 관련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행정명령만으로 추진에 한계가 있다”며 합의 사안의 ‘디테일’에 주목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韓의 협상력 증명됐지만…이행 여부 의문”
대니얼 스나이더 스탠퍼드대 동아시아학과 교수는 15일(현지시간) 중앙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미국의 고립주의가 심화되는 가운데 한국은 동맹을 오히려 강화하고 자율성을 어느 정도 확대한 성과를 거뒀다”고 평가했다.
스나이더 교수는 이어 “분명 협상 과정에서 한국 정부가 보인 인내심에 대해 보상을 받은 성격이 있지만, 곳곳에 모호하고 불확실한 부분이 존재하기 때문에 이번 합의가 완전히 이행될 수 있을지가 오히려 의문”이라고 덧붙였다.

패트릭 크로닌 허드슨연구소 아태지역 안보 의장은 “핵심은 한국의 국방 기여 확대가 (미국의) 국가 안보와 억지력 강화에 연계된다는 점을 분명히 한 것”이라며 “팩트시트 곳곳엔 동맹국이 미국의 새 안보 전략에 일치된 입장을 취해야 한다는 점이 강조돼 있다”고 분석했다. 크로닌 의장 역시 “특히 안보 분야에서 최고 수준의 약속을 얻어내긴 했지만, 약속을 이행하기 위해서는 상당한 노력과 도전에 직면할 가능성이 있다”고 예상했다.
“원잠 놀랍지만…트럼프 임기내 어렵다”
전문가들이 공통적으로 실현 가능성에 의문을 제기한 분야는 원잠이었다.

마이클 그린 호주 시드니대 미국학센터 소장은 “합의안 도출이 지연된 것은 NSC(국가안보회의)가 예상치 못한 트럼프 대통령의 발표를 따라가지 못했다는 의미”라며 “그 핵심은 미국의 많은 사람들을 놀라게 했을 원잠”이라고 했다. 그는 “한국의 원잠 확보는 트럼프 대통령의 행정명령만으론 불가능하다”며 “한미원자력협정(123협정)을 개정해야 하고 국제무기거래규정(ITAR) 개정, 핵추진 기술 이전 등 의회와 정부의 동의 과정을 거쳐야 하기 때문에 트럼프 대통령 임기 중에는 어려울 수 있다”고 말했다.
지금까지 미국 의회가 원자력 추진 기술 이전을 승인한 곳은 영국과 호주뿐이다. 호주의 경우 2012년 원잠 확보 의사를 피력했지만, 2021년 미·영·호의 3자 안보동맹인 오커스(AUKUS)를 체결한 이후에야 원잠 제공이 확정됐고 실제 서명까지는 3년이 더 걸렸다.
앤드류 여 브루킹스연구소 한국석좌는 “트럼프의 접근법은 매력적으로 들리는 제안에 일단 동의한 뒤 세부 사항은 나중에 해결하는 방식”이라며 “한국이 자체 방위 역량을 강화하고 미국에 투자를 확대하는 것은 트럼프의 논리에 부합하지만, 이행 과정에서 극복하기 어려운 관료적, 규제적, 물류적 장애물에 직면하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스콧 스나이더 한미경제연구소(KEI) 소장은 다만 “원잠과 관련해 모호한 표현을 쓴 배경이 유연성 유지를 위함인지, 쟁점에 대한 합의 도출 실패를 의미하는지가 중요하다”며 “고위급 위원회 등 한·미 핵협력협정에 따른 조정안 검토 과정을 지켜볼 필요가 있다”고 했다.
‘중국’ 명시 피했지만…“원잠 논의부터 영향”
미국의 억제 태세 강화 대상을 ‘모든 역내 위협(all regional threats)’으로 하고, 이를 위한 한국의 재래식 억지력 강화를 명시한 전략적 유연성 문제에 대해선 한국에 부담이 될 수 있다는 분석을 내놨다.

여 석좌는 “‘중국’과 ‘전략적 유연성’을 직접 언급하지 않은 것은 한국의 진보 진영에게 정치적 함의가 강한 용어를 피하도록 한 일종의 미국의 양보일 수 있다”며 “작전통제권을 명기한 것도 이재명 대통령이 진보 진영에게 알리기 위한 중요한 항목”이라고 분석했다.그는 이어 “전작권과 미국 무기의 추가 구매, 산업 방위 협력 증진을 연계한 대목이 흥미롭다”며 “이 지점이 트럼프 대통령이 전작권 논의에 더 개방적 태도를 보인 이유”라고 했다.
스나이더 소장은 이와 관련 “팩트시트엔 사실 한·미 양국이 중국을 지역 안정에 대한 잠재적 위협으로 인식하고 있다는 점과, 이러한 위협이 현실화될 경우 양측이 협력한 방안을 담은 여러 조항을 포함했다”고 지적했다.
그린 소장 역시 “향후 논의 과장에서 미국은 표면 아래로 한국의 지역 억지력에 대한 공약에 대해 계속해 명확한 입장을 요구하게 될 것”이라며 “특히 이는 당장 원잠 생산 논의 과정에서부터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확신한다”고 강조했다.
“‘北 비핵화’ 표현은 외교적 수사일 가능성”
‘한반도의 비핵화’ 대신 ‘북한의 비핵화’란 표현을 담은 데 대해선 의견이 엇갈렸다. 크로닌 의장은 “바람직한 목표지만 실현 가능성이 낮은 수사적 의미”라며 “북한과 소규모 협상의 여지를 마련하거나 일본 등 동맹국을 안심시키는 의미 정도가 될 것”이라고 했다. 스나이더 KEI 소장 역시 “북한의 핵보유에 대한 반대와 관련한 동맹의 결속은 변함이 없다는 표현을 담았지만, 북한과의 외교적 돌파구를 만들 가능성은 더 줄어들었다”고 예상했다.

반면 스나이더 스탠퍼드대 교수는 “한반도가 아닌 북한의 비핵화를 목표로 한 것에 대해 반가운 놀라움을 느꼈다”며 “대북 대화를 지지하면서도 정책 조율에 합의한 것은 트럼프 대통령이 김정은과 별도의 일방적 합의를 추진할 가능성을 한국이 억제하려는 시도가 반영된 것”이라고 평가했다.
스나이더 교수는 다만 “가장 문제가 될 수 있는 부분은 2030년까지 주한미군(USFK)에 330억 달러(약 48조원)를 지원한다는 항목”이라며 “현행 양국의 협정은 연간 약 15억 달러를 지출하는 수준인데 5년을 누적해도 이 계획에 미칠 수 없는 터무니 없는 목표치”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이 합의가 어디(어떤 거래)에서 나온 수치인지 의문이 든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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