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만 타이중(Taichung)은 단순한 공업도시가 아니다. 대만 제조업의 핵심 기반이자, 자국 산업 생태계 전체가 회전하는 허브로 평가받는다. 정밀기계·금속가공·수공구·냉동공조·체결구(Fastener) 등 1500여 개 중소·중견 제조사가 이 지역에 밀집돼 있다.
이들은 공정별 세분화된 협업 체계를 기반으로, 발주에서 출하까지의 리드타임이 짧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해당 클러스터는 빠른 대응, 균일한 품질, 위탁생산(OEM) 기반의 유기적 부품 네트워크 등을 통해 대만 하드웨어 산업의 경쟁력을 끌어올리고 있다.
대만 경제부(TAIWAN Ministry of Economic Affairs, MOEA) 통계에 따르면, 수공구 산업 내 제조사만 2274개에 달한다. 이들은 연간 생산 999억 대만달러(약 4조3000억 원) 규모를 형성하고 있다. 이때 연구개발(R&D) 비용은 6억6000만 대만달러(약 300억 원)을 투입하고 있다. 이 가운데 지난 2023년 체결구 수출은 미화 46억 달러(약 6조5000억 원), 수공구 수출은 38억 달러(약 5조5000억 원)에 달했다.
이처럼 대만은 여전히 세계 주요 패스너 수출국 상위권을 지키고 있다. 대만 정부는 이러한 경쟁력을 유지하기 위해 ‘스마트기계 촉진 오피스(Smart Machinery Promotion Office)’와 ‘AI 제조혁신 계획(AI Manufacturing Innovation Program)’을 추진하며 타이중시와 함께 제조 디지털 전환(DX)과 산업 고도화를 뒷받침하고 있다.
특히 타이중의 산업은 과거 가성비 중심의 OEM 시대를 지나, 솔루션과 서비스 중심의 신뢰 산업으로 이동 중이다. 브러시리스(Brushless) 전동공구, 내식성(Anti-corrosion) 코팅 패스너, 경량 합금 금속 등 고부가가치화가 빠르게 진행되는 양상이다. 최근에는 ESG 기준에 맞춘 친환경 제조와 순환자원화 기술이 새 성장축으로 부상했다.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공급망 불확실성과 통상 리스크 속에서도 대만 산업의 본질은 여전한 것으로 분석된다. ‘빠르고 정확한 제조’라는 DNA를 필두로, 지속가능성(Sustainability)·스마트화(Smartization) 그리고 생산거점이 국내로 복귀하는 리쇼어링(Reshoring) 트렌드가 더해지며 새로운 경쟁력이 형성되고 있다.
‘대만 산업주간 2025’, 4개 전시회 통합의 의미

이 같은 산업 기반을 무대로 열린 ‘대만 산업주간(Taiwan Industry Week, TIW 2025)’은 지난해부터 네 개의 기존 전문 전시회를 하나로 통합했다. 대만국제하드웨어박람회(THS), 국제철강기술타이완(IMT), 직업안전타이완(T-SAFE), 냉동·공조기술타이완(RHVAC Taiwan) 등 각기 다른 산업의 수요를 ‘공급망 교차 조달(Cross-Sourcing)’ 구조로 연결하겠다는 전략적 시도다.
주최 측인 카이고(Kaigo)는 이번 통합에 대해, 제조 현장과 더 가까운 곳에서 실질적인 비즈니스 매칭을 실현하기 위한 결정이라고 설명했다. 실제로 행사장은 타이중의 대표 제조벨트 중심부인 타이중국제전시장(Taichung International Exhibition Center)에 구축됐다.
올해 TIW의 슬로건은 ‘직접 소싱 경험(Experience Direct Sourcing)’과 ‘400여 개 공급사를 한 지붕 아래로(400+ top suppliers under one roof)’로 내걸었다. 현장에는 80여 개국, 350여 개사가 5000여 제품·솔루션을 출품했고, 이를 보기 위해 약 2만8000명 이상의 참관객이 한자리에 모였다. 카이고는 전년 대비 20% 성장해, 협·단체 후원이 급증했다고 평가했다.
각 전시회는 ▲추락 방지·방폭 기술 시연(T-SAFE Demo Area) ▲탄소중립·에너지 효율·냉매 대체 기술 포럼(RHVAC Technical Forum) ▲THS·IMT 혁신존 등으로 구성됐다. 이 자리에서 150건 이상의 기업 간 거래(B2B) 매칭, 40개 이상의 세미나 및 포럼 프로그램, 일본·중국·인도네시아 등 업체가 운집한 국가관이 동시에 운영됐다.
이 배경 속에 이달 14일(현지시간) 타이중국제전시장에서 ‘TIW 2025’가 시작됐다. 사흘간 펼쳐진 올해 TIW는 하드웨어·금속·안전·냉동공조 산업의 융합과 시너지를 표방했다.

첫 날 열린 개막식에는 △후치쥐안(Chi-Chuan Hu) 대만 경제부 국제무역서(MOEA International Trade Administration) 부서장 △알렉산더 카임(Alexander Keim) 카이고 전무 △올리버 지네스티에(Oliver Ginestier) 유럽 DIY·홈임프루브먼트 리테일 네트워크(EDRA/GHIN) 홍보국장 △양이춘(Yi-Chun Yang) 전국하드웨어상연합회(National Joint Association of Hardware of R.O.C.) 회장 △오젠싱(Chien-Hsing Wu) 전국냉동공조기술사연합회(National Federation of Air-conditioning & Refrigeration Professional Engineer Guilds, Republic of China) 회장이 연사로 나섰다.
여기에 △황젠하오(Chien-Hao Huang) 입법원(Legislative Yuan, Republic of China) 의원을 비롯한 주요 내빈도 자리를 채웠다. △장화현 타이중시 관계자 △테루타카 타케다(Terutaka Takeda) 일본DIY홈센터협회(Japan DIY Homecenter Association) △사브리나 카네세(Sabrina Canese) 이탈리아 Assofermet 하드웨어분과(Hardware Division of Assofermet, Italy) 회장 △아통 수키르만(Atong Soekirman) 인도네시아 경제조정부(Coordinating Ministry for Economic Affairs of Indonesia) 금속·기계·운송·전자산업개발 부차관 △콕 젠 로우(Kok Zhen Law) 말레이시아 냉난방공조협회(ASHRAE Malaysia Chapter) 회장 △수브컨트랙팅 프로모션 협회(Subcontracting Promotion Association, Thailand) 태국 대표단 △미국냉난방공조학회(ASHRAE) 대만·홍콩·한국·말레이시아·브라질 지부 대표 등이 참석했다.
이 밖에도 대만 전역의 하드웨어상연합회·냉동공조기술사협회·에너지기술서비스협회·산업단지협의회 등이 참가해 대만 산업의 저변을 상징적으로 드러냈다. 일본·이탈리아·인도네시아·말레이시아·태국 등 10여 개국 30여 산업단체 대표도 자리를 함께했다.
대만 하드웨어 현장의 메시지는? 협력·신뢰·지속가능성
알렉산더 카임 전무는 인사말 세션에서 TIW의 성장세를 수치로 보여주며 현장의 열기를 전했다. 그는 “올해는 350여 개 기업이 5000개 이상의 제품을 전시하며 전년 대비 성장한 모습을 공개하게 됐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디지털화(Digitalization)·인공지능(AI)·에너지 전환(ET) 등 변화 속에서 협력만이 혁신의 유일한 해답”이라며 “산업이 나란히 서 있는 관계에서 함께 성장하는 생태계로 발전하고 있다”고 말했다.

끝으로 카임 전무는 올해 TIW가 150건 이상의 B2B 매칭 세션, 40개 이상의 세미나와 포럼을 운영한다고 소개하며, “TIW는 산업이 미래를 함께 설계하는 장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연단에 오른 올리버 지네스티에 홍보국장은 TIW가 세계 하드웨어 전시의 트렌드를 바꾸고 있다고 평가했다. “부스의 규모와 디자인이 커지고, 마케팅과 브랜딩 예산이 늘었다. 이는 대만 기업들이 글로벌 브랜드로 도약할 준비가 됐다는 뜻”이라며 그는 언급했다. 그러면서 무엇보다 지속가능성이 논의의 최상단에 오른 점이 가장 반가운 지점”이라고 덧붙였다.
발표를 마무리하며 “대만 제품은 이미 품질로 인정받고 있으며, 이제는 브랜드 스토리와 철학으로 평가받는 시대가 왔는데, TIW가 그 변화의 무대를 열었다”고 힘주어 말했다.

오프닝 발표 연단의 마지막 세션에 선 후치쥐안 부서장은 정부의 역할과 비전을 제시했다. 그는 “TIW는 타이중 제조 클러스터의 강점을 글로벌 바이어와 직접 연결하는 플랫폼”이라고 평가했다. 연이어 지속가능성과 혁신을 축으로 한 ▲산업 고도화 ▲현장 매칭 및 공장 투어 프로그램 활성화 ▲정부·업계 협력 강화를 통한 신뢰·품질 브랜드 이미지 제고 등 대만 정부가 전개할 공약을 전했다.
그는 특히 중소기업의 스마트 제조, 수출 디지털화, 산학연 연계를 통한 차세대 제조혁신을 강조하며, 정부 차원의 지원을 약속했다.

이처럼 올해 TIW의 메시지는 확고했다. 협력·신뢰·지속가능성 그리고 브랜드가 주요 키워드다. 기자가 제안한 인터뷰에 참여한 대만 하드웨어 산업 고위 관계자는 “더 이상 가성비 제조의 대명사가 아니다. 빠르고 정밀한 납기, 품질의 일관성, 글로벌 인증 체계, ESG 친화적 생산으로 무장한 솔루션 공급자로 거듭나고 있다”고 말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타이중의 클러스터 역량, 정부의 혁신 정책, 글로벌 네트워크가 결합하며 ‘Made in Taichung’은 신뢰의 단계로 자리 잡았다”며 “대만 제조업이 다시 하나로 뭉쳐 미래를 향해 나아가야 한다”고 말했다.
헬로티 최재규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