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국이 희토류로 압박하면 미국은 어김없이 ‘반도체 소프트웨어’ 카드를 꺼내 든다. 서로의 가장 ‘약한 고리’를 겨냥한 맞대응이다. 하지만 미·중 무역 분쟁이 긴장과 완화를 거듭하는 사이 중국의 독자적인 반도체 생태계 구축은 더 정교해지고 있다.
16일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 등에 따르면 전날 중국 선전에서 열린 ‘반도체 산업 생태계 박람회(SEMiBAY 2025)’에선 중국의 독자적인 지식재산권(IP)으로 개발된 ‘반도체 설계 자동화(EDA)’ 툴이 공개됐다. EDA는 반도체 칩을 만들기 위한 회로 설계와 검증에 사용되는 필수 소프트웨어다.
이날 토종 EDA를 공개한 업체는 2023년에 설립된 ‘우한 치윈팡 테크놀로지(치윈팡)’로, 중국의 반도체 장비 제조사인 사이캐리어(SiCarrier)의 자회사다. 화웨이 산하 연구소에서 출발한 사이캐리어는 국산화 장비를 화웨이에 납품하며 ‘반도체 굴기의 비밀 병기’로도 불린다. 사실상 화웨이(반도체 제조)를 필두로 장비(사이캐리어)와 설계 소프트웨어(치윈팡)를 잇는 가치 사슬이 구축되고 있는 셈이다.

특히 EDA는 반도체 패권을 좌우할 핵심 요소로 꼽힌다. 인공지능(AI) 반도체의 성능을 결정짓는 미세 공정이 설계 역량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 EDA는 미국이 절대 우위를 차지한 반도체 자산이기도 하다. 반도체 생산은 TSMC(대만)와 삼성전자(한국), 장비는 ASML(네덜란드)과 TEL(일본) 등으로 분산된 반면, EDA 분야만큼은 미국의 독점적 지위가 공고하다. 미국의 케이던스, 시놉시스와 미국에 본사를 둔 독일 지멘스의 EDA 사업부가 전 세계 시장의 70% 이상을 장악하고 있다.
문제는 반도체 소프트웨어 분야에서도 미국의 기술적 우위가 흔들리고 있다는 점이다. 미국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는 지난 6일 ‘반도체 수출 통제의 양날의 검: EDA’ 보고서를 통해 미·중 무역 분쟁 속 오히려 미국의 EDA 지배력이 약화되고 있다는 점을 지적했다.
여전히 중국 내에서도 케이던스·시놉시스·지멘스 3사가 점유율 70% 이상을 차지하고 있지만, 6년 전(90%)과 비교하면 점차 낮아지는 추세다. 그 빈자리는 엠피리언, 프리마리우스 등 중국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는 현지 EDA 기업들로 채워지고 있다.
윌리엄 앨런 라인쉬 CSIS 수석 고문은 “그간 미국은 첨단 칩 설계에 필수적인 EDA로 전 세계 칩 산업에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해왔지만 점점 더 불리한 입장에 놓이고 있다”며 “미국의 수출 통제 조치와 협상 카드가 오히려 중국의 기술 자립 움직임을 촉진시키고 있다”고 분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