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1년부터 1986년까지 프랑스의 법무장관을 지낸 로베르 바댕테르가 10월9일 파리에 있는 판테온에 안장되었다. 그의 안장식은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을 비롯해 프랑스 정계의 전현직 주요 인사가 모두 참석한 국가적 행사로 엄수되고 프랑스 전역에 생중계되었다.
한국에는 널리 알려지지 않았지만, 바댕테르는 프랑스에서 사형제도를 폐지한 역사적 인물로 평가받는다. 그는 변호사로 활동하며 교도소 인질 사건을 벌인 피고인을 변호했는데, 최선을 다한 변호에도 불구하고 그 의뢰인은 1972년 사형이 확정되어 집행되었다. 이 사건의 경험으로 인해 그는 사형 위기에 처한 피고인을 변호하는 일과 사형제도 폐지 운동에 앞장서게 되었다.
프랑스혁명 이후 공포정치를 상징하는 사형 집행 도구인 단두대, 프랑스어로 ‘기요틴’이 프랑스혁명 당시 혹은 20세기 이전에나 쓰였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프랑스에서 마지막으로 단두대로 사형이 집행된 것은 놀랍게도 1977년 9월10일이다. 여자친구를 살해한 혐의로 사형이 확정된 튀니지 출신 이민자 하미다 잔두비가 단두대로 처형되었고, 이는 프랑스의 마지막 사형 집행으로 남았다.
1981년 5월 프랑수아 미테랑이 대통령에 당선되면서, 2차 세계대전 이후 1958년 성립한 프랑스 제5공화국 사상 처음으로 사회당이 집권한다. 미테랑과 사회당은 사형 폐지를 공약했고, 바댕테르는 미테랑 정부의 첫 법무부 장관을 맡아 1981년 10월 프랑스에서 사형제도를 폐지했다.
사형제도 폐지를 위해 오랜 기간 싸우고 실제로 이를 이루어낸 기록을 담은 그의 책 <사형제도에 반하여>는 국내에도 출간된 적이 있다. 그는 프랑스의 사형 폐지 과정을 자세히 소개하며 민주주의 국가에서 민주주의의 이름으로 사형을 폐지해야 하는 이유를 논증한다. 사형 폐지가 흉악범죄에 대해 무책임한 태도라는 비난이 있지만, 과거의 범죄를 되돌릴 수 없는 사형제도 대신 다른 수단을 통해 범죄를 예방하고 추가 피해를 최소화함으로써 국가의 책임을 다하는 것이 사형 폐지의 진정한 목적이라는 논리다. 그런 측면에서 사형 폐지는 인간 존엄의 문제이자 주권자의 진정한 이익에 따른 통치가 이루어져야 하는 민주주의의 문제라는 것이다.
유럽의 선진국에서는 사형제도 폐지가 오래된 일이고 당연하게 받아들여지는 것 같지만, 프랑스에서 사형이 폐지되던 당시 프랑스 국민의 사형제도 찬성 비율은 63%였다. 바댕테르가 판테온에 안장된 이유는 법무부 장관으로서 다수의 지지를 받는 인기 있는 정책을 해서가 아니라 여론을 선도해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했기 때문이다.
판테온에는 볼테르, 장 자크 루소, 빅토르 위고, 앙드레 말로, 마리 퀴리 같은 프랑스의 대표적 위인들이 안장되어 있다. 판테온 안장은 지금까지 83명에게만 주어진 최고 수준의 영예라고 할 수 있다. 보통의 국립묘지와 달리 사후에 상당한 기간을 두고 엄격한 심사를 통해 안장이 결정되기 때문에, 프랑스의 정책과 사회의 동향을 반영하는 일이기도 하다. 예컨대 마리 퀴리가 1995년에, 사후 61년이 지나서야 자신의 업적으로 판테온에 들어간 첫 번째 여성이 된 일은 프랑스에서 성평등의 진보와 지체를 동시에 보여주는 사건이었다.
바댕테르는 2024년 2월 타계한 후 바로 그다음 해에 안장이 결정되고, 안장식 일자는 그의 주도로 사형제도가 폐지된 1981년 10월9일을 기념해 2025년 10월9일로 지정되었다. 그 정도로 프랑스 사회의 존경을 받았고 ‘프랑스의 양심’이라는 칭호가 전혀 과하다고 느껴지지 않는 인물이다.
그의 판테온 안장은 또 다른 의미에서도 주목받았다. 그의 안장식은 프랑스 정치의 불안정이 극에 달했던 시점, 세바스티앵 르코르뉘 총리가 예산안에 관한 의회의 지지를 얻지 못해 사임했다가 4일 만에 다시 총리직을 맡게 되는 와중에 이루어졌다. 고인의 유지 그리고 유족의 뜻에 따라 극우와 극좌 양극단에 속하는 정치인은 안장식에 초청되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안장식이 열린 10월9일 저녁만큼은 모든 정쟁이 멈추었다. 안장식을 생중계하던 진행자는 ‘정치적 불안정의 시기에 오아시스 같은 일’이라 평가하기도 했다.
프랑스의 몇몇 지인과 얘기를 해보니 40년 전에 법무장관을 지낸 그에 대해 다들 알고 있어 살짝 놀랐다. 기억하고 기념할 만한 법무부 장관의 뒷모습은 바로 이런 것이라 생각했다. 이런 식으로 기억되거나 국가적인 안장식을 거행할 만한 법무부 장관이 혹시 우리에게 있었는지 생각해보는 일은 정신건강을 위해 하지 않는 편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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