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잊혀진 가정방문
몇 년 차 되지 않았던 시절(2000년대 초), 당시만 해도 시골 학교에서는 가정방문을 했다. 5학년 ○○이의 가정방문을 하게 되었는데 가정환경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부엌 아궁이가 없는 데다 방 안의 벽에 벽지도 바르지 않은 채로 춥고 오래된 아주 낡은 집이었다. 어떻게 이렇게 살 수 있나 싶을 정도로 어려운 집이었다. 4남매 집이었는데 큰아이가 중학교를 다니고 있었고, 밑으로 동생이 둘이 있었다. 아버지는 알콜 중독이 있으셨고, 어머니는 건강이 좋지 못하셨다. 그런데도 아이들은 아주 밝고, 또랑또랑한 아이들이었다. 이런 집에 내가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면 좋겠다 싶어 때마침 MBC에 집을 지어주는 프로그램에 사연신청을 하게 되었다. 내가 낸다고 될까 싶어 사연을 보내고 몇 달 동안 까마득히 잊고 있었다. 그런데 정말 다행히 MBC에서 전화가 왔고, 그 아이 사연이 소개되어 방송에도 나오고 예쁜 집을 지어주게 되었다. 돌이켜 보면 참 행운이었지만 만약 내가 가정방문을 가지 않았다면 그 아이 형편을 알 수가 있었을까. 가정방문을 가게 되면 교실에서만 보이던 아이가 보이지 않던 집과 연결되고, 부모님과도 연결되어 그 아이 삶의 맥락이 연결된다. 물론 시대가 변해서 체험학습도 가기 어려운 시절이 되었고, 개인정보(?)를 지나치게 중시하는 사회 분위기에서 가정방문은 나만의 추억으로 남을 수 있겠지만.
■ 가난한 아이들은 어떻게 어른이 되는가
어린 시절, 나도 어렵게 자란 터라 제목에 이끌려 읽게 된 책 제목이다. 저자는 교사생활을 하다가 가난한 집에서 자라는 아이들이 눈에 밟혀 사회복지학을 공부했다고 한다. 10년이 넘는 기간 동안 여덟 명 아이들이 가난과 어려움을 어떻게 대처하고, 성장하는지 질적 연구로 기록한 책이다. 읽는 내내 마치 내 일인 것만 같아 저리는 가슴을 쓸어내렸다. 그러면서도 가정환경은 어렵지만 의지가 있는 아이들만 고른 것은 아닌지, 하고 생각하다 다시 생각해 보면 저자가 만난 아이들이 우리 둘레 지역아동센터에만 가도 만날 수 있고, 조금만 주의를 살펴도 만날 수 있는 아이들임을 알아채게 된다.
공사판에서 막노동 일을 하시던 부모님에게 자란 나 또한, 어려웠던 어린 시절이 원망스러울 때가 있었다. 다른 집은 잘 사는데 왜 우리 집만 못 살까 견주기도 하고, 나는 왜 새 문제집을 사볼 수 없을까, 원망하는 마음도 컸다. 하지만 나뿐만 아니라 당시만 해도 어려운 환경을 스스로 포기하지 않고, 자신의 삶을 좀 더 잘 될 수 있도록 앞으로 나아가는 아이들도 제법 되었다.
■ 수렁을 벗어나기 어려운 아이들
사회 구조, 국가 시스템이 받쳐주지 못해 아이들을 수렁으로 빠트리는 경우를 종종 보게 된다. 예를 들면 보통 가정 아이들이야 부모님이 대학 등록금을 내주고 생활비까지 줄 수 있지만 어려운 가정 아이들은 대학 등록금은 국가에서 내준다고 해도 생활비는 따로 주지 않는다. 결국 그 아이들은 공부를 해야 할 시간에 아르바이트에 내몰리게 된다. 생활비와 방값, 휴대폰 값 등을 내고 나면 자신이 쓸 수 있는 돈은 얼마 되지 않아 생활고가 이어진다. 결국 대출을 받아 생활하게 되고, 그 빚은 사회초년생으로 출발하기도 전에 고스란히 무거운 짐으로 남게 된다. 혹시라도 부모님이 아프거나 생활력이 없을 때에는 부모님까지 감당해야 하는 아이들도 제법 된다. 이런 상황에 놓인 아이들은 자신이 아무리 발버둥 치고 노력해도 달라지지 않는 상황을 비관하거나 자포자기하게 된다. 애써 모르는 척하는 건지 아니면 거기까지 챙길 여력이 없는 것인지 이해할 수 없다. 대기업과 부자들을 위한 감세는 척척 하면서도 사각지대에서 온갖 어려움을 이겨내며 사는 청소년과 젊은이들이 보이지 않는지 안타깝기만 하다.

■ 지역사회의 역할
‘너는 원래 그렇게 태어났으니까 그냥 그렇게 살아.’
출발점이 다르면 애초부터 넘볼 수 없는 빈익빈 부익부 사회 양극화가 점점 깊어지고 있다. 안타까운 현실이다. 수백만 원의 사교육을 시킬 수 있는 집과 시골에서 오롯이 공교육으로만 공부하는 고등학생은 애초부터 승부가 되지 않는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것은 시골에서 초·중·고등학교를 졸업한 아이들에게 대학등록금과 생활지원금까지 주는 지자체가 늘어가고 있다는 거다. 아주 반가운 일이다. 그럼에도 아직은 온전히 아이들을 다 살필 수 있는 시스템은 되지 못한다.
둘레에 지역아동센터나 사회복지 영역의 도움만 조금 받아도 아주 어려운 상황에 놓인 아이를 찾기 어렵지 않다. 우리 사회는 그 아이들을 그냥 모르는 척 내버려둘 것인지 아니면 어떤 도움이라도 주어야 할지 고민이 필요하지 않을까.
윤일호 장승초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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