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처음부터 그의 의식은 명료하지 않았다. 이따금씩 흘러나오는 앓는 소리와 얼굴 찡그림만이 그의 고통을 대변해주는 듯 보였다. 40도가 넘는 고열이 며칠째 지속되고 있어 몸은 불덩이처럼 뜨거웠다. 산소마스크에 의존해 힘겹게 숨을 내쉬고 있었지만 당장 임종하더라도 이상하지 않은 상태였다.
널뛰는 맥박과 빠른 호흡수 때문에 모니터 알람 소리가 빈번히 울려댔다. 그럴 때면 그의 가족들은 긴장하기 시작했고 때로는 화들짝 놀라며 간호사를 찾았다. 그때마다 나는 재빨리 뛰어가 모니터의 수치를 주시하며 환자가 임종 직전의 상태인지 확인했다. 그렇게 병실로 들어설 때마다 가족들의 긴장감과 위기감이 느껴졌다.
가족의 죽음을 받아들이는 건 누구에게나 힘든 일임이 분명하다. 환자에게 곧 죽음이 닥쳐오리란 것을 알면서도, 그 죽음을 눈앞에서 지켜봐야 하는 현실은 힘겨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오랜 기간 간호한 것은 아니었지만, 그의 아내를 포함한 가족들이 그를 얼마나 아끼는지 느껴졌다. 임종 과정이 가족들에게 조금이나마 덜 두렵게 느껴지기를 바랐다. 환자와 이별하는 순간을 잘 간직할 수 있도록.
환자를 불편하게 하는 것들이 눈에 들어왔다. 너무 꽉 조인 산소마스크 때문에 끈이 닿아 있는 볼과 귀 뒷부분에 빨간 자국이 나 있었다. 거즈를 가져와 끈을 돌돌 말아 감쌌다. 간혹 몸 아래로 소변줄과 모니터 연결선이 깔려 있기도 했다. 생명과 직결된 것은 아니라 지나쳐버릴 수도 있는 것들이었다. 하지만 나는 복잡하게 얽혀 있는 선부터 하나둘 정리했다. 보호자와 힘을 합쳐 옆으로 누이면 그의 아내는 젖은 물수건으로 남편의 펄펄 끓는 등을 정성스럽게 닦아내었다.
“아이, 이렇게나 뜨거워서 어째. 후후-.”
그녀는 남편의 등에 바람을 불어넣었다.
아내는 매일 정성스럽게 남편을 돌보았지만, 환자의 상태는 시간이 갈수록 악화되어갔다. 숨을 쉬는 간격이 짧아지고 과호흡과 무호흡이 반복되기 시작했다. 맥박수도 40회에서 200회까지 쉴 새 없이 오르내리고 있었다. 혈압 또한 정상 미만으로 떨어졌다.
이러한 변화를 지켜보는 가족들의 표정에는 점점 더 깊은 슬픔과 두려움이 서려갔다. 수치의 의미까지는 정확히 알지 못하겠지만, 쉬지 않고 울리는 알람 소리와 함께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느꼈으리라. 나는 조심스레 설명했다.
“아직 들으실 순 있으니까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씀 하시겠어요.”
가족들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아내가 가장 먼저 그의 얼굴 가까이로 향했다.
“여보, 이제껏 정말 고마웠어요. 함께할 수 있어서 너무 행복했어요. 우리 걱정하지 말고 이제 마음 편히 가세요.”
아내의 눈에서는 눈물이 멈추지 않고 흘러내렸다.
그때였다.
허공을 향해 있던 환자의 초점 없는 눈에서 변화가 일어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