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센트 반 고흐의 제수와 조카

2025-04-15

6일(현지시간) 오전 9시,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반 고흐 미술관 앞에 긴 줄이 늘어섰다. 이탈리아어·영어 말고도 “오늘 예매표 완판됐다며?” 하는 한국말도 들렸다. ‘해바라기’ 앞은 셀카 찍는 관객들로 북적였다.

암스테르담 방문객들의 필수 관람 코스 반 고흐 미술관, 그냥 된 게 아니다. 흔히들 빈센트 반 고흐를 유일하게 알아주고 지원을 아끼지 않은 이로 동생 테오를 꼽는다. 그러나 반 고흐가 37세로 요절하고 반년 뒤 테오도 세상을 떠난다. 반 고흐가 남긴 작품을 포함한 테오의 유품은 그대로 아내 요하나에게 상속된다. 파리의 화상이던 테오도 팔지 못한 ‘혹’과도 같던 작품들이었다. 결혼한 지 2년도 안 돼 과부가 된 그녀는 이후 두 번 더 결혼하면서도 그림을 잘 간직했다. 요하나가 아니었다면 반 고흐의 그림은 진작에 여기저기 흩어졌을 거다. 요하나는 또한 네덜란드에 있던 테오의 묘를 프랑스 오베르쉬르와즈의 반 고흐 옆으로 이장했고, 반 고흐의 편지를 출간했다. 오늘날 반 고흐가 수퍼스타가 된 데는 이 출판의 공이 컸다.

테오의 아들 빈센트 빌럼은 엔지니어로 자랐다. 테오가 “형처럼 단호하고 용감한 아이가 되길 바란다”며 갓난아기 이름을 빈센트로 하겠다고 알리자 반 고흐가 “나처럼 불행해지면 어떻게 하냐” 짐짓 걱정했던 그 조카다. 반 고흐는 아기방에 걸라며 화사한 아몬드꽃(사진)을 그려 보냈다.

암스테르담 시립미술관의 요청에 빌럼은 1930년 삼촌의 그림들을 영구 대여했고, 1962년에는 국가에 위탁한다. 이후 반 고흐 미술관을 설립한 것도 빌럼이었다. 반 고흐가 인생의 마지막 봄에 그린 아몬드꽃처럼, 그의 예술은 제수와 조카 손에 활짝 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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