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을 재촉하는 핫핑크…'일상의 멍울'을 지우다

2024-12-16

일본의 슈퍼스타 작가 아야코 록카쿠가 크리스마스에 어울리는 환상적인 설치 작품을 들고 한국을 찾았다.

서울 남산 자락에 위치한 쾨닉 서울은 아야코 록카쿠 개인전 ‘마운틴스 오브 네임리스 이모션(이름 없는 감정의 산)’을 개최한다고 16일 밝혔다.

일본의 현대미술 작가 아야코 록카쿠는 그야말로 미술계의 슈퍼스타다. 일본 치바에서 태어나 지극히 ‘일본스러운’ 캐릭터에 기반한 회화를 그리는 아야코 록카쿠의 작품 가격은 최근 6년간 100배 정도 상승한 것으로 알려졌다. 어린아이의 장난 같은 골판지 위에 그린 그림은 지금도 수억 원 대에 거래되고 있으며, 캔버스 작품은 그 이상의 가치를 자랑한다. 1982년생, 40대 초반인 작가의 나이를 감안하면 엄청난 성공이다.

작가에게 부와 명예를 가져다 준 존재는 작가의 분신과도 같은 캐릭터, ‘커다란 눈을 한 귀여운 여자아이’다. 어딘가 잔뜩 화가 난 듯한 이 여자 아이는 빨강, 노랑, 초록, 분홍으로 가득한 수많은 색의 숲에서 관객을 뚫어져라 응시한다. 그림 곳곳에는 해골이나 전령이 등장한다. 귀여운 여자아이와 전령이 함께 놓인 기괴하고 화려한 그림을 오래도록 바라보고 있으면 으스스한 기분마저 든다.

하지만 이번 전시에서는 아야코 록카쿠의 상징인 귀여운 여자아이의 얼굴을 찾아보기 힘들다. 이번 전시의 대표작은 작가가 ‘산’이라 부르는 설치물이다. 작가는 약 한 달 반 가량 한국 동대문 시장을 돌아다니며 눈이 따가울만큼 영롱한 분홍색 직물을 구입했다. 그리고 서울의 작업실에서 이 직물을 손으로 직접 자르고 연결해 덕지덕지 붙여 산을 만들었다. 산 구조물의 봉우리에는 생명체와 같은 형상이 있고 경사면에는 상상 속 존재들이 솟아 있다.

전시를 보는 관람객의 눈에 ‘산’은 ‘동굴’처럼 보인다. 동굴의 입구를 통해 산의 내부를 들여다보면 어린이의 놀이방처럼 작은 인형들이 놓여있다. 분명 ‘눈 큰 여자 아이’가 숨어 있을 것같은 동화같은 분위기다. 작가는 작품을 ‘산’이라 부르지만 사실 무엇이라고 명확하게 이름 짓지는 못했다. 지난 12일 전시장을 직접 찾은 작가는 “스페인 마요르카의 레지던시에서 산에 둘러싸여 생활하다 이번 전시의 작품을 구상했다”며 “이 설치물은 근본적으로 커다란 감정의 동요나 그것의 축적으로부터 출발했지만 그것을 형용할 만한 이름은 찾을 수 없었다”고 설명했다.

회화 작품에서도 귀여운 여자아이의 모습은 완전히 드러나지 않았다. 작가는 손에 물감을 묻혀 그림을 그린다. 손에 직접 물감을 묻혀 화면을 채우는 것. 작품의 규모가 커질수록 작업은 고단해진다. 작가는 손에 물감의 감촉이 느껴지지 않으면 그림을 그릴 수 없다고 할 정도로 물감과 캔버스의 촉감에 집중한다.

이번 작품에서 작가는 여자 아이의 얼굴과 몸을 색 속에 파묻어버렸다. 캔버스에는 여자 아이의 커다란 눈과 산처럼 생긴 모자만 등장한다. 그리고 전령과 해골이 군데군데 그려져 있다. 하지만 영롱한 ‘핫핑크’는 버리지 않았다. 작가는 “그림을 그리다보니 형광 핑크색이 나의 기분을 고양한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며 “처음에 한 가지 색을 정하고 캔버스에 색을 칠한 후 여러가지 색 중 어울리는 색을 찾아 형태를 맞추는 식으로 색을 얹어 나간다”고 설명했다.

아야코 록카쿠는 점차 자신의 그림에서 귀여운 여자 아이를 지워가는 걸까. 작가는 귀여운 여자 아이에 대해 “나는 아니지만 나의 내면의 자아”라고 표현했다. 그는 “나는 이 아이에게 도움을 받고 있다”며 “이 캐릭터와 함께 성장해 왔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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