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5월 스탠퍼드대 의과대학 교수인 브라이언트 린은 50번째 생일을 앞두고 비소세포암(비흡연자 폐암) 판정을 받았다. 한 번도 흡연 경험이 없었던 그였다. 얄궂게도 그가 평생 연구해온 주제는 아시아계 미국인 비흡연자의 폐암이었다.
지난해 봄에 5~6주간 심한 기침에 시달린 게 전조였다. 동료인 이비인후과 의사에게 조언을 구한 린은 흉부 X-레이를 찍으라는 권유를 받았다. 폐 조직을 검사하기 위해 CT 스캔도 받았다. 결과는 폐암 4기였다.

남은 생이 2년 남짓이란 판정을 받은 뒤, 린은 일을 그만두는 대신 자신의 암을 수업 교재로 삼았다. 뉴욕타임스(NYT)에 따르면 지난해 가을 학기 그가 개설한 10주짜리 강좌는 ‘진단에서 대화까지: 의사가 암과 벌이는 실시간 전투’였다.
린은 NYT에 “내 암이 누군가에게 도움이 됐으면 하는 마음에 강의를 열었다”고 밝혔다. 개설되자마자 수강 인원은 꽉 찼다. 강의실은 빈 자리가 없어 일부 학생들은 바닥에 앉아 수업을 들었다.
치료와 수업을 병행하는 동안, 암세포는 간·뇌로 전이됐다. 뇌에서만 악성 종양이 50개 발견됐다. 척추와 갈비뼈 통증, 체중 감소까지 겹쳐 고통은 극에 달했다. 하지만 수업은 계속됐다. 암이 정신건강에 미치는 영향, 간병인의 역할, 차세대 약물치료 등을 다루면서 자신의 간병인 역할을 하는 아내와 종양학자, 종교 관계자 등을 특별 강사로 모셨다.
동료 교수들은 “약물이 잘 듣는지 봐야 하니 린 교수가 오래 살아야 한다”며 덕담을 건네기도 했다고 한다.

"암 밝히면 인간관계 끊어져 고통"
린 교수는 특히 암환자의 멘털 관리를 강조했다. ‘암밍아웃(암과 커밍아웃을 합친 단어)’을 하면 인간관계가 끊어지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미 공영방송 NPR에 따르면 최근 암 환자들 사이에서는 '암 소외(Cancer Ghosting)' 현상이 화두로 떠올랐다. 이는 암 투병 사실을 밝히면 인간관계가 갑자기 끊어져 유령 취급을 당하는 현상을 뜻한다. 암 진단 후 65%가 이런 현상을 겪었다는 조사 결과도 있다.

암 환자들은 NPR에 "치료 자체도 그렇지만, 관계가 소원해지는 게 더 고통스러웠다"고 입을 모았다. 미국 암 협회의 최고 환자 책임자인 아리프 카말은 NPR에 "복잡하게 생각할 필요 없다"며 “‘널 생각하고 있어’ 같은 짧은 메시지도 환자에겐 큰 힘이 된다”고 말했다. 카말 책임자는 "오늘 밤 피자 사갈게, 아직도 페퍼로니 피자 좋아하니?"처럼 구체적인 메시지가 좋다고 귀띔했다.
린 교수도 암 자체를 다루는 일도 중요하지만 "학생들이 의학의 핵심인 인간성을 이해하기를 바랐다"고 전했다. 린 교수는 NYT에 “과거 암환자의 주치의를 지냈는데, 환자가 숨지기 2주 전, 귀한 시간을 할애해 나에게 아버지처럼 돌봐줘서 고맙다는 감사 편지를 써준 것을 잊을 수 없다”고 했다.
이제 환자가 된 린 교수가 두 아들에게 꼭 남기고 싶은 메시지도 '사랑''감사'와 같이 인간적인 것이었다고 NYT는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