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쯤 되면 연예매체들은 송은이에게 저작권에 대한 인센티브라도 내야 하는 것 아닐까. 송은이가 대표로 있는 스튜디오 비보에서 제작하고 KBS2와 KBS joy 채널로 지난 3월까지 방송했던 <오래된 만남 추구>(이하 <오만추>)에서 코미디언 이영자와 배우 황동주, 역시 코미디언 김숙과 배우 구본승이 소위 현실 커플 가능성을 보여 화제가 되자 이후 이들의 관계성을 활용한 수많은 낚시성 연예 기사가 한 달이 넘도록 쏟아지는 중이다. 물론 어떤 프로그램이나 출연자가 화제가 되어 그에 대한 기사가 늘어나는 건 흔한 일이다. 그럼에도 굳이 연예매체가 인센티브를 내야 한다고 한 건, 단순히 방송 내 특정 장면이나 출연자 활동에 대한 사실을 전달하는 게 아니라, <오만추> 세계관을 빌려 2차 창작을 하는 중이기 때문이다. 예술로서의 2차 창작을 폄하하려는 건 결코 아니다. 단지 이들 기사가 창작으로 독자를 낚는 영리 행위 중이란 걸 지적하려는 것뿐이다. 가령 지난 9일 방송된 MBC <라디오스타>에 출연한 황동주가 이영자에 대한 자신의 감정을 밝힌 건 얼마든지 기사화될 수 있다. 하지만 해당 방송에서 두 사람 사이를 응원하는 이들이 AI로 2세 사진도 만들어주며 응원한다는 이야기에 대한 ‘이영자♥황동주, 2세 사진까지 공개 “응원해주는 사람 많아”’라는 스포츠조선의 기사 제목은 이영자와 황동주 사이 2세가 있고 그에 대해 응원하는 이들이 많다는 허위 사실로의 오독을 노골적으로 유도한다. 제목을 보고 클릭해 기사를 확인하면 허무하지만, 기사를 안 보고 넘어가면 더 큰 문제다.
이영자와 황동주, 김숙과 구본승에 대해 이런 식의 한심한 기사 제목을 찾아 나열하기란 어렵지 않다. 이영자가 본인 유튜브 채널 ‘이영자TV’에서 집에 오두막과 다이어트를 위한 샤브샤브용 인덕션 식탁을 설치한 것에 대해 스포츠조선은 ‘이영자, 드디어 ♥황동주 집 초대하나..“다이어트도 열심”’이라는 망상 수준의 제목을 달아 소개한다. OSEN은 ‘“구본승♥과 조심스러운 단계” 김숙, 결혼설 터졌다..“웨딩홀 관심”’이라고 소개하지만, 실제 내용은 MBC <구해줘 홈즈>에서 김숙이 웨딩홀에 관심을 가진다며 결혼설로 몰아가는 양세형과 장동민의 농담에 불과하다. 교묘하다고조차 말할 수 없을 만큼 막무가내로 정보를 왜곡하는 이런 제목에서 최근 연예 기사 어뷰징의 핵심인 하트 마크 ♥가 역시 막무가내로 남발되는 건 우연이 아니다. 최근 tvN <언젠가 슬기로울 전공의생활>에 전작 <슬기로운 의사생활>의 추민하(안은진) 캐릭터가 특별출연한 것에 대해 앳스타일이 ‘‘슬의생’ 커플→부부 탄생…안은진♥김대명, 신혼생활 공개’ 같은 제목을 붙여 조회수 장사를 하듯, 기사 제목의 ♥는 섬광처럼 짧게 소비될 가십을 쉽고 빠르고 심지어 책임조차 회피하며 만들 만능 키처럼 사용된다.
이러한 ♥의 무분별한 사용은 <슬기로운 의사생활>처럼 드라마 캐릭터를 이용한 낚시든, 한창 KBS <사장님 귀는 당나귀 귀>에서 예능으로 소비된 ‘전현무♥홍주연 아나운서’ 같은 셀프 열애설에서든 매체에 요구되는 최소한의 정보도 신뢰도 무너뜨린다는 점에서 그 해악이 결코 가볍지 않다. 그럼에도 이영자 등 <오만추> 출연자들에 대한 ♥ 남발의 해악은 그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큰데, 그들이 <오만추>에서, 또 그 이후 다른 예능에서 보여주었듯 어느 정도 진중한 만남을 염두에 두고 있다고 가정할수록 그들의 현실 관계는 가십으로서의 소비에 더더욱 취약해지기 때문이다. 황동주는 이영자에 대한 자신의 호감 표현이 방송용 연기가 아닌 진심이라는 것을 <오만추> 이전부터 최근 출연한 <라디오스타>에서까지 꾸준히 주장하고 있다. 믿거나 안 믿는 건 자유지만, 적어도 그 진정성과 현실 커플의 관계성을 전제로 작성된 기사에서 왜곡이 벌어지면 그 부담은 고스란히 황동주와 이영자에게 지워진다. 예를 들어 아이즈는 오는 21일 황동주가 KBS <불후의 명곡> ‘라이징 스타 특집’에 출연한다는 소식을 단독으로 전하며 ‘황동주, ‘불후’ 첫 출연...♥이영자 향한 세레나데 부를까’라는 제목을 붙였다. 이것은 맞거나 틀릴 수 있는 예측이 아니라, 그 자체로 일종의 개입이다. <불후의 명곡>은 졸지에 두 사람의 진정성 여부를 확인해 볼 무대가 되고, 대중이 기대하는 모습을 수행하거나 하지 않는 것에 대한 압박은 당사자들의 몫이 된다. 이것은 그들이 서로에 대한 호감을 방송에 공식적으로 드러냈다는 이유로 당연히 감당할 일이 아니다. 일간스포츠는 ‘이영자♥황동주 등 ‘핑크빛’으로 물든 예능계…‘방송용’ 설정은 양날의 검’이라는 기사에서 “설정이 작위적이라는 게 드러나거나 일정 시간이 지나도 관계가 진전되지 않으면 시청자들이 실망감을 느끼”게 될 수 있다고 우려 및 경고한다. 그 자체로는 꽤 맞는 말이다. 하지만 바로 그 일간스포츠는 MBC <전지적 참견시점>에서 이영자가 “보통 사람은 결혼을 하려고 사람을 만나지만 나는 이 사람 때문에 결혼을 하고 싶어야 한다”고 지극히 원론적인 결혼관을 밝히자 ‘‘황동주 핑크빛’ 이영자 “이 사람이라 결혼 생각하게 돼” 깜짝 발언’이란 타이틀로 소개한 바 있다. 타인의 삶을 특정한 관계성으로 환원해 최대한 자극적으로 재구성하고 소비하는 매체 환경 속에서 그들이 감당해야 할 부담만큼은 진짜다.

특히 이러한 환원과 재구성이 유독 이영자와 김숙, 여성 출연자에 대해선 결혼을 욕망하는 형태로 제시된다는 건 흥미로우면서도 어딘가 병적이다. 앞서 <구해줘 홈즈>에서의 에피소드가 기사 제목을 통해 김숙의 결혼에 대한 관심처럼 왜곡된 사례를 인용했지만, 애초에 해당 방송 자체가 양세형과 장동민이 쉬지 않고 김숙의 일거수일투족을 구본승과의 열애설과 엮어 결혼에 목맨 사람처럼 몰아가고 놀리는 패턴으로 진행됐다. 김숙이 임장 중에 웨딩홀에 가면 웨딩홀에 관심이 있다고, 친구가 준 식당용 철판이 혼자 쓰기엔 너무 크다고 하면 철판 때문에 결혼 준비를 한다고, 방송에서 우연히 학교 선생님을 만나니 주례 부탁하러 갔다고, 1절에서 멈추지 않고 2절, 3절까지 놀리는 걸 보노라면 순수한 응원으로 해석하긴 영 어렵다. 그 정도는 아니지만 역시 앞서 인용한 이영자의 결혼에 대한 발언에 대해 “그게(결혼하고 싶은 사람이) 황동주인 거죠?”라는 전현무의 반응도 이 모든 걸 결혼에 대한 바람으로 몰아간다는 점에선 대동소이하다. 심지어 지난 1월 <전지적 참견시점>에서의 김장 에피소드에서 전현무와 양세형이 서로를 이영자의 결혼 상대로 떠넘기는 농담을 몇 번에 걸쳐 주고받던 걸 떠올리면 더더욱. 즉 비혼여성으로서의 재밌고 충만한 삶의 형태를 그토록 잘 보여주던 이영자와 김숙조차 이성애적 관계성에 편입되자 결혼을, 더 정확히는 결혼하지 못한 결핍을 강요받는다.
연애 프로그램으로서의 <오만추>가 신선하면서도 담백한 설정과 좋은 섭외로 긍정적인 설렘과 화제성을 만들었음에도, 그 이후 미디어를 통해 빤하고 딱히 건강하지도 않은 형태로 소비되는 것은 그래서 씁쓸한 한편 중요한 질문들을 남긴다. 우리는 왜 이성애적 관계와 감정을 꼭 결혼이라는 종착역을 향한 과정으로 종속시키는가. 비혼여성의 삶은 왜 결혼과 다른 삶이 아닌 결핍된 삶으로 이해되는가. 이성에 대한 진지한 감정의 결들은 왜 ♥로 단순하게 환원되는가, 사랑에 대한 도상인 ♥는 왜 사랑하는 주체를 더 폭넓게 묘사하는 대신 ‘아무개♥’라는 한정된 입장으로 규정하는데 사용되는가. 이 질문들을 넘어설 때 <오만추>를 비롯한 새 연애 프로그램들은 더 다양한 사랑과 관계의 형태를 보여줄 수 있지 않을까. 이영자와 김숙처럼 개성 넘치는 인물들의 말과 행동과 감정이 남성 출연자들의 결혼에 대한 농담과 ♥를 남발하는 기사 속에서 얄팍하게 해석되듯, 낡고 다분히 남성 중심적인 이성애 규범이 지배적일수록 모든 만남은 가장 흔한 만남의 방식으로만 이해, 아니 곡해되기에. ‘오만추’든 ‘자만추’든, 어떤 만남의 형태를 추구하든.
<위근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