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3 비상계엄 사태’를 계기로 민주주의에 관심이 높아진 젊은 세대가 헌법과 민주주의를 공부하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는 헌법을 베껴 쓰며 법의 의미를 되새기는 ‘헌법 필사’ 문화가 확산하고 있다.
헌법에 대한 관심 증가는 계엄 이후 헌법·민주주의 관련 도서 판매량 증가 현상에서도 나타났다. 지난 20일 인터넷서점 ‘예스24’에 따르면 헌법 관련 도서 판매는 지난해 12월부터 올해 1월까지 두 달 연속 증가했다. 헌법 전체 조문을 순서대로 따라 쓸 수 있는 헌법 필사책도 인기를 끌고 있다. 더휴먼 출판사의 <헌법 필사>는 1월 들어 판매량이 전월 대비 1036%까지 급상승해 베스트셀러 2위에 올랐다.
오프라인 서점에도 헌법 관련 판매대가 따로 마련됐다. 지난 25일 기자가 찾은 서울 종로구 교보문고 광화문점 한쪽에는 <헌법 필사> <헌법의 탄생> <시민을 위한 헌법 첫걸음, 아름다운 헌법> 등 헌법 관련 서적들이 모여있었다. 서점에서 헌법을 쉽게 설명해주는 책인 <주민의 헌법>을 구매했다는 홍모씨(43)는 “현재 헌재에도 탄핵심판 등 중요한 재판이 남아있기도 하고, 계엄 이후에 법에 관해 잘 알지 못한다는 생각이 들어 자세히 알아보려 한다”고 말했다. 홍씨는 “헌법 조문들을 보고 나니 이를 지키지 않는 정치인들이 이렇게나 많다는 것이 더 와닿았다”라고 말했다.
SNS에는 종이에 헌법을 필사한 인증 사진이 올라오고 있다. X에는 인증 사진과 함께 “우리가 밟고 있는 땅 위에 있는 모든 것들이 당연하게 주어지는 것이 아님을 다시 깨달았다” “헌법 조항을 쓰다 보니 저쪽 세력이 헌법 어기기를 숨 쉬듯 하고 있다는 사실에 화가 난다” 등의 반응이 올라왔다.
일부 시민들은 헌법을 들여다보는 것에 그치지 않고 헌법 전체를 베껴쓰는 ‘필사’를 하고 SNS에 올리기도 했다. 직장인 김수인씨(30)는 지난 17일부터 하루에 한 페이지씩 헌법을 필사하고 SNS에 인증 사진을 올리고 있다. 김씨는 “글씨를 하나하나 힘주어 쓰니 시간이 오래 걸리는 힘든 점도 있지만, 손으로 쓰니까 더 기억에 남는 것 같다”고 말했다.
필사에 참여한 시민들은 필사도 하나의 ‘연대’ 방법으로 선택했다고 말했다. A씨(21)는 “계엄날 국회를 지킨 사람들과 탄핵 찬성 집회에 많은 사람이 참여한 것을 보고 내가 여태 ‘우물 안 개구리’였다는 것을 알게 됐다”며 “이후 직접 알아보고 생각하고 시민들과 함께하기 위해 헌법 필사를 시작하게 됐다”고 말했다. 게엄 후 혼란스러운 시국에 화가 나 헌법 필사를 시작했다는 박하빈씨(31)는 “탄핵 시위를 기점으로 시민들의 연대가 계속된다는 것을 직접 보고 느꼈다”며 “필사 서적 구매도 목소리를 내는 행위 중 하나”라고 말했다.
이들은 헌법 필사 후 계엄의 ‘위헌성’을 더 잘 알게 됐다고 했다. 김씨는 “헌법 전문에 나와 있듯이 이 헌법을 만들기 위해 수많은 시민의 피와 노력이 있었다는 것이 보이는데, 어떻게 이런 위헌적인 계엄이 일어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A씨는 “헌법을 필사하고 나니 내가 당연하게 여기는 헌법의 짧은 한 문장조차도 누군가가 간절히 바라고 노력해 얻어낸 조항이라는 것을 느꼈다”며 “법과 가장 가까운 국회의원, 검사 출신 대통령이 이런 일을 행하고도 옹호하는 현 상황에 분노하게 됐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