쇼팽 콩쿠르의 명물 된 ‘Lee’ 형제, "앞뒤 연주, 부담 없고 든든하다"

2025-10-13

“형제로서 같이 참가한 것에 특히 감사합니다. 이렇게 함께 연주하고 서로 의지가 될 수 있다는 점이 행복해요.”(이효)

폴란드 바르샤바의 쇼팽 국제 콩쿠르에서 ‘혁효 형제’가 화제다. 피아니스트 이혁(25)ㆍ효(18) 형제는 2일(현지시간) 개막한 이 대회에 함께 참가하고 있다. 지난 6일 1차와 10일 2차 경연 모두에서 동생-형의 순서로 연이어 연주했다. 성의 알파벳 순서로 연주하도록 한 대회의 규정 때문이다. 이들은 12일 밤 발표된 본선 3차 진출자 20명의 명단에도 나란히 올라갔다.

세계적 권위의 대회인 만큼 긴장감이 높은 곳이다. 영상 심사에 600여명, 현장 예선에 162명이 참가했다. 본선 1차에 84명에서 2차 40명, 3차 20명으로 경연자 숫자가 줄어들었다. 이런 분위기에서 형제 피아니스트는 “서로 경쟁보다 의지하는 쪽”이라고 했다.

2차 경연 직후 중앙일보와 가진 영상 인터뷰에서 이혁은 “앞뒤로 연주하는 데에 부담은 없었고 오히려 너무 좋았다”고 전했다. 동생 이효 또한 “연주가 끝나면 항상 서로 포옹하는데 이번에도 큰 격려가 됐다”고 했다. 콩쿠르를 주최하는 쇼팽 인스티튜트는 연주 장면 뿐 아니라 무대 뒤편까지 중계하는데, 동생이 연주를 마치고 나오면 곧 연주를 시작하는 형과 깊게 포옹하는 장면이 종종 잡혔다.

이들은 오랜 시간 함께 음악을 했다. 2014년부터 러시아의 모스크바 음악원과 중앙음악학교에서 피아노를 함께 공부했다. 이후 두 피아니스트 모두 프랑스 파리의 에콜 노르말 음악원을 졸업했다. 프랑스의 명문 대회인 롱티보 콩쿠르에서 형은 2022년에 1위를, 동생은 올해 3위를 차지하며 계속되는 ‘평행 행보’를 보여왔다.

이혁은 이번이 쇼팽 콩쿠르의 두 번째 출전이다. 2021년에 그는 12명의 파이널리스트에 들었지만 수상은 하지 못했다. 이혁은 “4년 동안 쇼팽을 더 깊게 탐구할 수 있었고, 무대에서의 마음을 어떻게 가질 것인지에 대해서도 연구할 수 있었다”고 했다. 이효는 이번이 첫 번째 출전이고 “형과 함께하게 돼 특별한 의미”라고 전했다.

무엇보다 쇼팽의 고향인 폴란드가 이들에게는 낯설지 않다. 2022년부터 폴란드에 거주하고 있기 때문이다. “2021년에 형이 쇼팽 콩쿠르 결선에 진출하고 나서 폴란드 내에서 관심이 높아졌다. 그리고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모스크바에 있을 수 없게 되면서 폴란드를 선택했다.”(이효)

이들은 3년 동안 폴란드의 문화를 흡수하면서 쇼팽의 작품만 연주하는 쇼팽 콩쿠르에 최적화했다. “폴란드어를 공부하고 쇼팽의 편지와 글을 읽으면서 영감을 얻을 수 있었다.”(이효) “쇼팽은 폴란드의 민속 리듬을 사용해 춤곡을 만들고는 했는데 춤곡 이외의 장르에서도 이런 리듬을 발견한다. 이런 전통적인 리듬을 비롯해 폴란드 정서에 대해 많이 알게 됐다.”(이혁)

또한 폴란드어가 유창해 콩쿠르 주최측, 현지 언론과 인터뷰가 수월하다. 쇼팽 인스티튜트의 한국 코디네이터인 정주영 씨는 “통역을 위해 대기하고 있었는데 전혀 필요 없었을 정도”라고 전했다. 폴란드의 문화전문 사이트인 브페 쿨투라(WP Kultura)는 “예술성뿐만 아니라 폴란드 문화에 대한 특별한 헌신으로 주목받고 있다”고 두 형제를 소개했다.

다재다능하다는 면에서도 스타성이 있는 피아니스트 형제다. 두 피아니스트 모두 피아노뿐 아니라 바이올린을 다룬다. 이혁은 2022년 폴란드의 국제 체스 대회에서 3위에 입상했고, 동생 또한 수준급으로 체스를 둔다. 이혁은 “동생은 굉장히 공격적으로 체스를 두고, 저는 신중하게 두는 편”이라고 했다.

두 피아니스트는 1·2차 경연에서 각자 다른 스타일로 쇼팽의 작품들을 소화했다. 앞서서 연주하는 동생은 대조가 분명하고 화려했지만 형은 보다 우아하고 섬세했다. 또 각각 연주하는 곡이 달라 겹치지 않았다. 이혁은 “최대한 같은 곡을 연주하지 않기 위해 노력한다”고 했다.

쇼팽 콩쿠르에서 혁효 형제의 활약은 20년 전 임동민·동혁 형제를 떠올리게 한다. 2005년 각각 25ㆍ21세였던 이들은 쇼팽 콩쿠르에 함께 출전해 2위 없는 공동 3위에 올랐다. 한국인의 첫 수상이었다. 이후 조성진의 2015년 우승을 거치며 이 대회에 대한 관심은 더 뜨거워졌다.

이번이 19회째인 쇼팽 콩쿠르는 14~16일 3차 경연을 거쳐 18~20일 결선을 끝으로 수상자를 가리게 된다. 이후 수상자 공연을 포함해 23일 폐막한다. 본선 84명 중 한국 피아니스트는 4명이었으며 2차 경연 3명에 이어 혁·효 형제 2명이 3차 경연에 진출하게 됐다. 3차에 진출한 20명 중에는 중국 피아니스트가 6명으로 가장 많다.

2차에 진출했던 피아니스트 이관욱(29)은 “막연히 꿈만 꿔오던 대회에서 두 번이나 무대에 설 수 있었다는 것만으로도 기쁘고 잊지 못할 것 같다”는 소감을 남겼다. 이번 대회의 모든 경연 무대는 쇼팽 인스티튜트의 유튜브에서 실시간으로 시청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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