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소기업의 힘, 5000억 규모 치매 신약 기술수출 성사

2025-01-23

[연중 기획 혁신창업의 길] R&D 패러독스 극복하자 〈75〉 큐어버스 조성진 대표

지난해 10월 국내 바이오 스타트업이 이탈리아의 글로벌 제약사 안젤리나파마와 대규모 기술수출 계약을 했다는 소식이 이어졌다. 치매 치료 후보물질을 기술이전하고, 그 대가로 총 3억 7000만 달러(약 5440억원)를 받는다는 내용이었다. 매출이 일어날 때 로열티는 별도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보도자료를 내고, 대통령실 과학기술수석까지 나서 홍보에 열을 올렸다. ‘대박’의 주인공은 창업한 지 만 3년이 갓 넘은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창업기업 큐어버스. 3억 7000만 달러는 임상 3상을 통과하고 상용화까지 이어질 경우 단계마다 순차적으로 받을 수 있는 돈의 총액이지만, 정부 출연 연구소 출신 스타트업의 기술 이전 규모로는 역대 최대다. 창업 후 만 3년 여, 아직 임직원 8명에 불과한 스타트업이 올린 기록으로는 이례적이다. 국내 신약 스타트업의 해외 기술이전 사례가 없는 건 아니지만, 큐어버스가 특히 주목받는 건 국내 출연연의 ‘R&D 패러독스’ 극복의 모범사례로 떠올랐기 때문이다. 지난해 8월 대표적 국제학술지 네이처가 인덱스 특집호를 통해 ‘한국은 R&D에 막대한 투자를 하고 있지만, 비용 대비 효과는 놀라울 정도로 낮다’고 비판한 바 있다.

KIST 신약 후보물질 이전 받아

치매 원인인 염증 없애는 약물

기존 치매 치료는 30%가 한계

3상 완주 글로벌 제약사가 꿈

큐어버스를 이끄는 사람은 조성진(50) 대표와 박기덕(50) KIST 뇌과학연구소장이다. 두 사람은 연세대 생명공학과 학부 때부터 박사과정까지 함께 해 온 동기다. 졸업 뒤 조 대표는 민간기업에서, 박 소장은 KIST에서 경력을 쌓아 올렸다가 창업의 인연으로 다시 만났다. 서울 홍릉 KIST 내에 본사를 둔 큐어버스를 찾아 그들의 성공 방정식을 물었다.

정부 기술 창업 유도사업의 성과

큐어버스와 KIST는 어떤 관계인가.

“큐어버스는 KIST의 ‘연구소기업’ 중 하나라 할 수 있다. 큐어버스가 기술이전한 핵심 신약 후보물질은 KIST 뇌과학연구소에서 개발한 기술을 바탕으로 만들어졌다. KIST의 신약 후보물질에 대한 기술을 큐어버스가 이전받았다는 얘기다. 과기정통부의 창업 유도형 연구개발 프로그램인 ‘바이오스타’ 사업의 결과였다.”

(바이오스타 프로그램은 원래 연구자가 소속을 유지하면서 창업을 준비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제도다. 기업 경험이 있는 외부 바이오 전문가 조성진 대표가 바이오스타 프로그램을 통해 KIST에 들어와 박기덕 박사와 함께 큐어버스를 공동창업했다. 이후 지난해 6월 바이오스타 프로그램이 끝나면서 조 대표는 KIST에서 퇴직하고 큐어버스의 최고경영자(CEO)로 전환됐다. 창업 이후에도 박 박사는 KIST 연구자로 남아, 새로운 후보물질 연구를 지속하고 있으며, 최근 80명이 넘는 연구자를 이끄는 KIST 뇌과학연구소장이 됐다.)

박 박사도 지분을 가진 공동창업자인데 큐어버스에선 빠져 있나.

“나(박 박사)는 연구개발이 좀 더 적성에 맞고, 잘할 수 있을 거 같아서였다. 신약 후보물질을 발굴하는 것과 그걸 더 개발해 임상시험에 들어가고 회사를 경영하는 건 다른 얘기다. 내가 큐어버스로 직장을 옮기면 그간 해온 후보물질 발굴을 더는 못하게 되는데, 그건 회사로서도 이득이 아니다. 개발과 경영은 조 대표가 맡고, 나는 KIST에 남아 계속 새로운 약물을 연구·개발할 수 있다.”

치매 근원 치료에 대한 새로운 접근

이탈리아에 기술이전한 치매치료 후보물질은 어떤 건가.

“제약회사들은 그간 알츠하이머 치매의 근본 원인으로 꼽혀온 베타 아밀로이드나 타우 단백질이 뇌에 과다하게 쌓이는 것을 막거나 제거하는 물질을 개발해왔지만, 효과가 그리 좋지 못했다. 베타 아밀로이드를 모두 없애도, 인지기능 개선 효과는 29%를 넘지 못했다. 최근에는 뇌에 염증이 생기면서 베타 아밀로이드가 뭉치게 되고 염증이 더 악화해 치매 증상이 일어날 수 있다는 연구 결과가 많이 나오고 있다. 베타 아밀로이드가 발병의 원인이 아니라 결과란 말이다. 우린 이 점에 주목했다. 염증을 없애 베타 아밀로이드가 뭉치는 걸 정상적으로 돌려놓으면 보다 근원적인 치료가 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개발한 약물로 동물 실험을 한 결과 탁월한 개선 효과를 볼 수 있었다. 약물성도 뛰어나다. 그게 지난해 10월 기술수출한 CV-01이다. 지금 국내 임상 1상에 들어간 상태다.”

약물성이 뛰어나다는 말이 효능과 다른 뜻인가.

“효능이란 건 약을 먹었을 때 인지기능이 개선된다든지 하는 경우를 말하는 거다. 이렇게 효능을 보이기 위해선 약이 몸 안에 들어가 이동과 흡수가 잘 되면서 대사에 대한 안정성도 갖춰야 한다. 이럴 때 약물성이 좋다고 한다.”

CV-01 하나만으로 스타트업을 키울 순 없을 텐데.

“현재 다발성 경화증 치료제를 목표로 하는 CV-02는 미국 임상을 신청 중이다. 이외에도 폐 섬유화와 희귀암 치료를 목표로 하는 CV-03, 퇴행성 뇌질환과 신경계 질환 치료를 위한 CV-04도 자체 개발 중이다.”

차별화된 기술로 투자 혹한기 넘어

요즘 스타트업 투자환경이 한겨울인데, 투자유치가 어렵지 않았나.

“왜 안 어려웠겠나. 그래도 차별화된 기술을 인정받은 덕분에 국내 투자사들로부터 2022년 5월 시리즈A로 81억원을, 올해 들어 최근 시리즈B로 253억원의 투자유치를 마무리했다. 애초 시리즈B 투자유치 목표가 200억원이었으니, 목표를 초과한 거다. 지금까지 총 누적투자 유치금액은 340억원이다. 앞으로 한 차례 더 투자 유치를 한 다음, 2027년쯤 코스닥에 상장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임직원이 8명뿐인데, 그게 다 가능하나. 창업 후 기술이전 성과도 아주 빠른 편이다.

“KIST가 오랜 기간 연구·개발한 성과물을 이전받은 덕분이다. 임직원이 너무 적어 보이긴 하지만 현재로선 파이프라인을 순차적으로 개발하는 거라 큰 무리가 없다. 회사가 KIST 내부에 있다 보니, 실험·연구장비들을 이용할 수 있었다. 바이오스타 프로그램 속에 많은 지원이 있어서 적은 인원으로 빠른 성과를 낼 수 있었다.”

회사의 비전은 뭔가.

“지속가능한 신약 개발회사로 성장하는 거다. 당장은 초기 임상 후 기술이전해 자금을 모으고, 또 새로운 파이프라인을 개발하고 기술이전하는 방식이 불가피하다. 신약 개발을 위해서는 임상 과정만 10년 이상 걸리고, 투자되는 비용도 조 단위라 국내 바이오 스타트업들은 초기 임상 후 글로벌 제약사에 기술이전하는 방식이 불가피하다. 하지만 그렇게 성장하다 보면 임상 3상까지 완주할 수 있는 자금 여력이 있는 글로벌 제약회사로 성장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

오상록 KIST 원장

큐어버스의 기술수출은 KIST가 지향하는 혁신적 연구와 임무 중심의 성과 창출이 결실을 본 의미 있는 사례다. 특히 이번 성과는 출연연 사상 최대 규모의 수출 계약으로, KIST의 원천기술이 국제적으로 인정받았다는 점에서 큰 의의를 지닌다. 큐어버스의 후속 신약 파이프라인들 역시 KIST에 뿌리를 두고 있다는 점에서 기술사업화의 모범 사례로 매우 바람직하다.

정보라 스틱벤처스 파트너

큐어버스의 창업자들은 산·학·연에서 오랜 연구 경험을 쌓은 저분자 신약개발 전문가들로서, 신약 후보물질 발굴 역량이 뛰어나다. 이를 바탕으로 글로벌 기술 이전이 가능한 CV-01과 CV-02를 확보하였을 뿐 아니라 후속 파이프라인 확장을 통해 지속가능한 비즈니스모델을 구축했다. 향후 큐어버스가 유니콘기업(상장 전 기업가치 1조원)으로 성장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혁신창업의 길’에서 소개하는 스타트업은 ‘혁신창업 대한민국(SNK) 포럼’의 추천위원회를 통해 선정합니다. SNK포럼은 중앙일보ㆍ서울대ㆍKAIST를 중심으로, 혁신 딥테크(deep-tech) 창업 생태계 구성원들이 함께 참여하는 단체입니다. 대한민국이 ‘R&D 패러독스’를 극복하고, 퍼스트 무버 국가로 도약하기 위해서는 연구개발(R&D)에 기반한 기술사업화(창업 또는 기술 이전)가 활성화되어야 한다는 취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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