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버터] 변화 만드는 공공기관 사회공헌의 다섯 가지 조건

2025-09-03

공공기관 사회공헌 가이드

‘공공기관 사회공헌’이 시험대에 올랐다. 단순 기부나 보여주기 식의 활동은 통하지 않는다. 국민 세금과 공적 자원으로 운영되는 기관으로서 사회적 책임을 증명하는 수단이자 지역의 문제를 해결하는 변화의 동력으로 새롭게 주목받고 있다. 공기업 경영평가단장인 곽채기 동국대 행정학과 교수는 “기존 공공기관 사회공헌은 일회적이고 소극적인 면이 있었다”면서 “사회공헌을 잘 설계해 수행한다면 지역사회 발전에도 기여할 수 있고 대외적인 이미지를 제고해 공공기관의 지속가능성을 확보할 수 있다”고 말했다.

공공기관 경영정보 공개시스템(알리오)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공기업 31개 중 연간 기부금 지출이 가장 큰 기관은 한국철도공사(344억6788만원)이었다. 이어 인천국제공항공사(238억5810만원), 강원랜드(204억4624만원), 한국토지주택공사(146억7067만원), 한국서부발전(141억5328만원), 한국가스공사(132억8921만원), 한국남동발전(116억1196만원), 한국남부발전(113억4086만원), 한국수력원자력(98억2251만원), 제주국제자유도시개발센터(86억2286만원) 순이었다.

지난 6월 새 정부 출범과 함께 기획재정부의 ‘2024 공공기관 경영평가’ 결과가 발표되면서 공공기관들의 사회공헌 전략 수립 작업이 분주히 진행되고 있다. 전문가들은 공공기관의 설립 목적에 맞게 업(業)과 연계된 사업을 설계하고, 정책과 현장을 잇고, 전략과 브랜딩을 확보하는 사회공헌만이 진정한 가치를 만든다고 지적한다. 더버터는 경영평가의 사회공헌 평가 기준과 전문가 조언을 종합해 공공기관이 전략적 사회공헌으로 전환할 수 있는 다섯 가지 조건을 알아봤다.

1. 기관의 핵심 역량과 연결이 되는가

공공기관의 사회공헌은 기관의 설립 목적, 업(業)의 특성과 직결될 때 힘을 발휘한다. 일시 후원이나 일회성 이벤트를 넘어 기관이 가진 전문성을 활용해 사회문제 해결에 기여해야 한다.

에너지 공기업이 에너지 복지, 안전, 환경 등과 사회문제를 연결한 프로그램을 만든다면 단순 기부 이상의 임팩트를 남길 수 있다. 반대로 기관 정체성과 무관한 활동은 중복 사업이라는 비판을 받기 쉽다. 일례로 한국가스공사는 2010년부터 ‘온누리 열효율 개선사업’을 운영하며 에너지 복지와 업(業)의 특성을 연결한 사회적 가치를 실현하고 있다. 저소득 가구의 난방환경을 개선하면서 동시에 에너지 절감 효과를 달성한 모범 사례다. 지금까지 누적 지원 3083개소, 이를 통해 약 7억8000만원의 에너지 절감 효과를 창출했다.

2. 국가 정책과 현장을 잇는가

민간기업의 사회공헌이 주로 브랜드와 마케팅에 연결된다면, 공공기관은 정책과 현장을 잇는 다리 역할을 해야 한다. 청년 일자리, 저출산·고령화, 탄소중립, 지역 균형발전 등 국가 과제를 현장에서 실행하는 것이 공공기관 사회공헌의 본질이다. 제주국제자유도시개발센터는 청년부터 중장년층 일자리 창출을 위한 ‘이음일자리’ 사업을 2018년부터 운영하고 있다. 지난해까지 90억8100만원을 투입해 총 2178명의 일자리를 만들었다. 이는 고용 확대라는 국가 정책 과제를 제주 지역 현장에서 실현한 사례로 꼽힌다.

정책은 거대 담론으로 머물기 쉽지만 공공기관이 사회공헌을 통해 지역 주민과 맞닿으면 정부 정책도 실질적인 효과를 내게 된다. 공공기관만이 할 수 있는 차별화된 사회적 기여다.

3. 전략이 있는가

사회공헌도 경영 활동의 일부다. 중장기적 관점에서의 전략 체계가 필요하다. 미션과 비전, 슬로건을 갖추고, 이를 실행하는 전담 조직과 프로세스를 마련해야 한다.

에너지 공기업인 한국수력원자력은 상생협력처 내 사회공헌부라는 전담 부서를 두고, 올해 기준으로 직접 지출만 120억원을 넘게 투입한다는 계획이다. 단순히 예산 규모만이 아니라, 체계적인 조직 운영이 질적 성과를 뒷받침한다.

4. 지속가능하고 장기적인가

사회공헌은 ‘얼마를 썼는가’가 아니라 ‘어떤 변화를 만들었는가’로 평가돼야 한다. 일회성 이벤트는 잊히지만, 장기 프로그램은 지역 사회에 뿌리내리고 변화를 만들고 확산한다. 한국수력원자력은 2014년부터 12년째 전국 골목길에 태양광 가로등을 설치해 주는 ‘안심가로등 플러스’ 사업을 진행 중이다. 올해까지 84개 지역에 총 3420개의 안심가로등을 설치했다. 한국철도공사의 취약계층 어린이를 위한 기차여행 프로그램 ‘해피트레인’도 대표적인 장기 사업으로 올해로 20년째 지속중이다.

사업이 만들어낸 변화를 데이터로 입증하는 작업도 중요하다. 예컨대 범죄 예방을 위한 안심가로등 설치가 실제 범죄율 감소로 이어지는지, 아동돌봄 사업이 학습 격차 해소에 기여하는지를 구체적인 수치로 나타낼 때 보여주기식 활동이 아니라 진정한 성과로 평가받을 수 있다.

5. 브랜딩이 되는가

공공기관 사회공헌은 결국 기관의 이미지와도 직결된다. 공공기관 중에는 매년 수억에서 수십억원짜리 사업을 진행하면서도 브랜드화된 사업이 없는 경우가 많다. 강원랜드는 2022년 강원랜드복지재단과 강원랜드희망재단을 ‘강원랜드사회공헌재단’으로 통합 출범했다. 폐광 지역 개발이라는 설립 목적에 맞춰 장학·멘토링, 지역 맞춤형 일자리 지원 등을 꾸준히 이어오면서 폐광 지역 공동체 회복을 대표하는 시그니처 브랜드로 자리 잡았다.

가용자원 안에서 선택과 집중을 통해 국민과 지역사회가 떠올릴 수 있는 대표 브랜드를 만들어야 한다. 이렇게 탄생한 시그니처 프로그램은 단순한 사회공헌을 넘어 기관을 상징하는 자산으로 성장할 수 있다. 잘 설계된 사회공헌은 지역사회에 실질적으로 기여할 뿐 아니라, 국민의 신뢰와 사랑을 끌어내는 힘이 된다.

지난해 기준 공기업 기부금 상위 10개 기관의 집행액은 1622억원이다. 규모만 놓고 보면 민간 대기업에 뒤지지 않을 정도다. 전문가들은 사업의 설계와 운영 방식에 따라 같은 돈이 지역사회 변화를 이끌 수도, 단순한 지출로 그칠 수도 있다고 지적한다. 곽채기 교수는 “국내 공공기관이 330개 정도 되는데 각각 사회공헌으로 20억~30억원만 써도 매우 큰 액수”라며 “이 돈이 사회발전을 위해 쓰이느냐 낭비되느냐는 공공기업들의 전략에 달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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