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일(현지 시간) 출범하는 도널드 트럼프 2기 행정부가 반도체와 조선 등 주력 산업의 미국 내 생산에 속도를 낸다. 인텔이 흔들리고 있지만 미국 내 반도체 생산이 본격화하고 미중 전략적·군사적 경쟁의 최전선에 있는 조선업 부흥을 시작하면 글로벌 산업 판도에도 지각변동이 불가피하다. 이 때문에 정치권이 정쟁보다 반도체와 조선 등 국내 산업 지원에 관심을 쏟아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1일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조 바이든 행정부에서 기업당 수조 원대의 보조금을 쏟아부은 미국은 인텔과 삼성전자, TSMC 등 세계 최첨단 제조 업체들이 한데 모이는 유일한 국가가 된다.
세계 최대 파운드리(반도체 위탁 생산) 업체인 대만 TSMC는 올해 상반기 미국 애리조나주 피닉스에 세운 첫 첨단 팹(반도체 제조 공장)을 본격 가동한다. 삼성전자는 2026년 준공을 목표로 텍사스주 테일러시에 새 반도체 공장을 건설하고 패키징 시설과 함께 첨단 연구개발(R&D) 시설을 신축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특히 트럼프 대통령 당선인은 대규모 감세와 규제 완화를 약속한 상태다. 임기 첫날부터 속도전을 통해 미국에 투자하는 기업들에 대대적인 혜택을 제공할 예정이다. 미국 우선주의를 뼈대로 미국에서 만들고 구매하며 미국인을 고용하는 미국을 위한 산업 정책을 펴나갈 것으로 전망된다. 정치권이 앞장서 산업과 기업을 지원하는 미국과 달리 한국은 정치 공백에 별다른 대책조차 내놓지 못하는 형편이다. 권석준 성균관대 화학공학과 교수는 “트럼프 당선인의 제조업 르네상스 추진으로 현지 고용 인력 규모 확대, 현지 업체들로 구성된 공급망 구성 요구 등이 강화될 것”이라며 “이에 대한 대응책이 절실하다”고 말했다. 반도체 업계의 또 다른 관계자는 “미국 내 반도체 생산이 본격화한 뒤의 상황을 그려볼 필요가 있다”고 주문했다.
트럼프 당선인은 반도체에 이어 조선 산업도 다시 일으켜 세우겠다는 포부를 갖고 있다. 앞서 글로벌 컨설팅펌인 맥킨지앤드컴퍼니는 ‘새로운 항로 개척: 미국 조선소의 미개발 잠재력’ 보고서에서 자국 내 조선 산업을 강화해야 한다고 제안한 바 있다. 지난 10년간(2014~2023년) 중국 해군은 157척의 함선을 진수했지만 미국은 67척에 그치는 실정이기 때문이다.
미국 의회에는 민주·공화 양당 의원들이 초당적으로 협력해 내놓은 ‘조선업강화법’이 발의되기도 했다. 118대 의회 임기가 끝나면서 자동 폐기됐지만 119대 의회에서도 재발의될 것으로 보인다. 이 법에는 향후 10년 안에 미국 내에서 만든 선박을 기존 80척에서 250척으로 늘려 ‘전략상선단’을 운용한다는 목표가 제시됐다. 군용 및 상업용 선박의 미국 내 건조를 늘리기 위해 조선소 투자에 25%의 투자세액공제를 해주고 조선 금융 인센티브 프로그램도 만들어 선박 건조 및 수리에 대한 금융 지원도 늘리기로 했다.
조선업 부활에 사활을 걸고 있는 미국의 행보는 한국 입장에서 기회이자 중장기 위기 요인이다. 트럼프 당선인은 대통령 선거에서 승리한 직후 한국 조선에 러브콜을 보냈다. 단기로는 미국 시장 진출의 길이 크게 열리겠지만 중장기적으로 미국 정부의 견제가 보다 강해질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