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계 경제가 심상치 않다. 미국이 관세 전쟁 칼날을 빼 들며 보호무역주의에 불을 지피고 있고, 원달러 환율은 좀처럼 내릴 기미가 없다.
글로벌 공급망 불안과 지정학적 리스크, 급격한 금리 변화 여기에 국내 정치적 환경까지 맞물리며 수출 중심 한국 경제는 복합 위기 정점에 서 있다. 수출 기업은 물론 내수 산업 전반이 휘청이면서 실물경제에 거센 충격이 가해지고 있다.
이처럼 대내외 불확실성이 커진 상황에서 금융기관 역할은 그 어느 때보다도 막중하다. 특히 금융지주와 시중은행, 국책은행은 시장 안정화 최후 보루이자 실물경제 회복을 위한 관문으로서 기능을 동시에 수행해야 한다.
유동성 공급을 통한 경기 보완은 물론, 산업 전반에 신뢰를 제공하고 금융시장 내심을 단단히 붙잡는 중추적인 역할이 요구된다.
올해 1분기, 4대 금융지주(KB·신한·하나·우리)는 역대급에 달하는 실적을 올린 것으로 파악된다. 고금리 환경 속에서 예대마진이 확대되고 기업·가계 대출 수요가 꾸준히 이어지면서 외형과 수익 모두 안정적 흐름을 보였다. 그러나 이러한 성적에도 불구하고, 정치·경제적 불확실성이 증폭되는 현 상황에서 금융기관들은 결코 안심할 수는 없다. 여전히 이자 이익에만 의존하는 성장 구조가 위기 대응력 측면에서 한계를 드러낼 수 있기 때문이다.
은행들은 자체 건전성을 확보하는 동시에 산업계와 취약 부문에 대한 자금 공급을 더욱 확대해야 하는 이중 과제를 안고 있다. 불확실성이 커질수록 금융기관들은 방어적으로 돌아서기 마련이다. 그러나 지금은 과감하고 선제적 자금 지원과 함께 미래를 내다보는 전략적 판단이 필요한 시점이다. 은행은 이익추구를 넘어, 국가 경제 전체 체력을 지탱하는 중대한 책무를 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역할 수행을 위해서는 정부와 정치권의 전폭적 뒷받침이 필수적이다. 무엇보다 민간 금융기관과 국책은행이 각자 역할을 다할 수 있도록 규제 유연성과 정책적 유도 장치가 동시에 작동해야 한다.
당국은 금융기관들이 과도한 리스크 우려로 발이 묶이지 않도록 자본적정성, 대출규제 등에서 일시적 유연성을 검토하고, 산업에 금융이 자연스럽게 흘러가도록 제도적으로 지원해야 한다.
아울러 국책은행들이 위기 상황에서 적극적 역할을 다할 수 있도록 정책자금 확대와 손실보전장치 마련 등 물적 지원도 아끼지 말아야 한다. 특히 신산업, 수출기업, 중소기업 등 전략 산업과 민생 최전선에 있는 부문에 대한 금융 접근성이 낮아지지 않도록 금융 시스템 전체가 연대해 대응해야 한다.
지금의 위기는 금융기관에게 있어 '지켜야 할 안정'과 '도와야 할 경제' 사이에서 균형 잡힌 판단을 요구한다. 금융이 지나치게 보수적이어도, 과도하게 모험적이어도 안 된다. 보다 정교하고 유연한 정책 조율과 현장 밀착형 금융 지원이 병행될 때, 우리 경제는 위기 속에서도 새로운 활로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대혼돈의 시대'다. 이럴수록 민·관·사회가 합심해 중심을 잡아야 한다. 그리고 그 중심에 바로 대한민국 금융기관들이 서 있다. 이들이 제 역할을 다할 수 있도록, 정부와 정치권, 시장 모두가 한 몸처럼 움직여야 할 때다.
김시소 기자 siso@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