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동진 칼럼] 쿠테타, 한국영화를 망하게 하다

2024-12-17

영화는 망했다. 최소한 극장용 영화는 망했다. 쿠테타가 일어나는 사회에서, 내란이 일어나는 사회에서, 그것이 비록 조기에 진압됐다 하더라도 대통령 탄핵이라는 중차대한 사회변화가 일어나는 세상에서, 그리고 매일처럼 헤드라인으로 누구누구가 공조본(공동조사본부)에 소환되고 구속됐다는 기사가 뜨는 사회에서 극장에 영화를 보러 가는 사람들이 있을 수가 없다. 많을 수가 없다. 고로 한국의 영화는 망했다. 극장도 망했다. 아무리 짧게 잡아도 헌법재판소의 탄핵 판결이 나는 내년 3월말까지 영화의 흥행은 기대하기가 난망인 상황이다. 어떻게 키운 영화산업인가. 1년에 2억명 정도가 극장을 가고 국민 1인 연평균 관람회수가 4~5회인 나라가 아니었던가. 이런 시장을 쿠테타 시도로 한방에 날려 버렸다.

12월 4일에 개봉했던 영화 ‘대가족’은 3일 밤의 내란 소요 사태로 피폭을 당하면서 17일 현재 20만 여명에 그치고 있다. 손익분기점은 260만명이다. 92억원을 들인 영화이다. 투자배급사인 롯데, 영화를 만든 양우석 감독 모두 심한 좌절감에 빠져 있다. 송강호 주연의 ‘1승’ 역시 30만에 채 미치지 못하고 있다. BEP는 180만명이다. 턱도 안된다. 그나나 곽경택 감독이 만든 ‘소방관’이 간신히 명맥을 유지하는 것처럼 보이기는 한다. 관객 2백만에 육박하고 있다. ‘소방관’의 손익분기점은 260만명이다. 손해를 볼 것 같지는 않지만 후반 마케팅 비용 등을 생각하면 좀 더 관객을 모아야 할 판이다. 결론적으로 12월을 맞아 연말 흥행용으로 내세운 세 편의 한국영화가 기로에 서 있는 셈이다. 이 모든 것이 기이한 지도자가 벌인 난장판 쿠테타 때문이다.

한국은 아카데미를 비롯해 칸과 베니스, 베를린 영화제 모두에서 감독상과 작품상, 주연상 등을 탄 나라다. 박찬욱과 봉준호가 있는 나라이다. 노벨 문학상을 탄 작가 한강을 소유한 나라이기도 하다. 발매하자마자 그래미 음원 순위 톱5 안에 진입한 ‘아파트’의 로제의 국적은 대한민국이다. 그런 나라에서 쿠테타를 일으켜 로제가 세계무대에서 공연할 때도 창피하게 만들었다. 한강으로 하여금 노벨상을 수상할 때도 검은 옷을 입고 우울하게 만든 나라이다. 정치가 문화와 대중예술을 망쳐도 이렇게 망칠 수가 있는가.

게다가 정치 일정을 보면 내년 5월이나 6월까지(탄핵 소추안이 인용되고 두 달 안에 대통령 선거를 치른다는 전제 하에) 한국의 대중들은 TV뉴스 앞에 꽉 붙잡혀 있을 가능성이 높다. 그것도 모든 일이 그나마 잘 풀린다는 것을 예상해서이다. 대중예술인들 모두 코로나19에 이어 또 다시 목을 조르는 느낌이 들 것이다. 내수 진작을 위해서라도 영화 연극 공연 등에는 양적 완화를 통한 지원자금을 풀 필요가 있어 보인다.

25일에 개봉할 ‘하얼빈’이 극장이 처한 상황의 국면 전환과 더 나아가 사회 분위기를 바꾸는 데에 모종의 역할을 할 수 있을까 기대하는 것이 그나마 최선인 상황이다. ‘하얼빈’은 안중근 의사의 의거를 그린 얘기이다. 지금의 정부가 홍범도 장군 흉상을 철거한다고 했을 때 항일 의식을 담은 공포영화 ‘파묘’에 1200만의 관객이 몰려 정치적 의사 표시를 한 적이 있다. 대중들은 애국적 민족주의를 종종 드러내곤 한다. ‘하얼빈’이 진짜 애국을 생각하게 만들지 모른다. 걱정이 구만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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