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3 비상계엄 사태는 추운 겨울을 통과하는 국내 극장가에 찬물을 끼얹었다. 오랜 침체기를 연말 특수로 돌파하려던 기대는 시민이 극장 대신 거리로 나서면서 물거품이 됐다. 업계는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 가결과 <하얼빈> 등 기대작 개봉으로 훈풍을 기대하고 있지만 ‘꽃길’을 걷기에는 녹록지 않은 현실이 기다리고 있다.
16일 영화진흥위원회 영화관입장권통합전산망(KOBIS)을 보면, 12월 1~2주차 주말 박스오피스(금~일)는 지난해 같은 기간과 비교해 큰 폭으로 떨어졌다.
비상계엄 사태 직후로 대규모 탄핵 집회가 시작된 지난 주말(6~8일) 영화관을 찾는 관객수는 총 163만명이었다. 전년 동기(196만명)보다 30만명 넘게 줄어든 규모다. 7일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탄핵무산으로 집회 규모가 크게 불어난 지난 주말(13~15일) 관객수는 153만명이었다. 지난해 같은 기간 관객 수 167만명보다 10% 가량 감소했다. 곽경택 감독의 <소방관>과 할리우드 대작 <위키드>, <모아나 2>가 10만~60만명대 관객을 동원하며 선방했지만 쏟아지는 속보와 충격적인 소식 앞에서 관객을 극장 안으로 불러들이기엔 역부족이었다.
정국의 혼란은 각종 일정의 연이은 취소로도 이어졌다. 박지현 주연의 코미디 영화 <동화지만 청불입니다>(1월8일 개봉)는 당초 12일 진행 예정이었던 제작보고회를 하루 전 취소했다. 주최 측은 “내부 사정으로 인해 부득이하게 취소됐다”고 밝혔다. 아예 개봉을 연기한 사례도 나왔다. 24일 개봉을 앞두고 있었던 <괜찮아 괜찮아 괜찮아!>는 내년으로 공개를 미뤘다. 배급사 바이포엠스튜디오는 지난 9일 “보다 좋은 환경에서 관객들과 만나기 위해 부득이하게 개봉을 연기했다”고 설명했는데 이 역시 비상계엄 사태로 연말 극장가가 타격을 입은 데 따른 결정으로 보인다.
일각에서는 지난 14일 윤 대통령 탄핵소추안이 국회를 통과, 사태가 진정 국면에 들어섬에 따라 분위기가 전환될 것으로 기대한다. 매 주말 여의도와 전국 곳곳의 집회에 참여했던 시민들이 일상으로 돌아가면 극장을 찾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때마침 연말 특수를 노린 대작 두 편도 출격을 기다리고 있다. 안중근 의사의 하얼빈 의거를 다룬 <하얼빈>, 한국 영화 최초로 콜롬비아 로케이션 촬영을 한 <보고타: 마지막 기회의 땅>은 각각 24일과 31일 개봉한다. 현빈, 송중기 등 톱스타의 작품인 만큼 조용한 극장가에 활기를 불어넣을 수 있지 않겠냐는 기대 섞인 예측도 나온다.
하지만 개별 영화의 흥행 성공과는 별개로 한국 영화계 앞에는 난관이 기다리고 있다. 비상계엄 사태로 어수선한 와중에 영화발전기금의 주요 재원이었던 영화관 입장권 부과금이 폐지됐기 때문이다.
정기국회 마지막 날이었던 지난 10일 국회 본회의에서는 영화관 입장권 부과금을 폐지하는 내용을 담은 ‘영화 및 비디오물 진흥에 관한 법률’(영화비디오법) 개정안이 통과됐다. 영화관 입장권 부과금은 영화관 입장권 단가의 3%를 영화발전기금용으로 징수하는 것이다. 멀티플렉스 극장의 주말 성인 요금인 1만5000원 기준으로 1인당 450원이다.
영화관 입장권 부과금 폐지는 지난 3월 문화체육관광부가 영화 티켓값의 ‘숨은 세금’을 없애겠다며 내놓은 민생 정책이다. 영화 티켓값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멀티플렉스 극장의 독과점 구조는 그대로 둔 채, 독립예술영화 지원을 위해 주로 쓰이는 영화발전기금만 건드린다는 비판을 받았다. 시민이 체감하는 감세 효과는 미미한 반면 영화계가 받는 타격은 심대해 반발의 목소리가 크다. 이번 개정안 통과로 내년 1월1일부터 부과금을 징수할 수 없게 되면서 ‘작은 영화’에 대한 지원은 더 줄어들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