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빙 세계서 순수 신화를 꿈꾸다⋯이광소 시인, 신간 시집 '빙하역에서' 펴내

2025-06-18

뻔하고 통념적인 현재, 작별함으로써 존재의 강밀도 변화시키는 시편 수록

“역병으로 쓰러진 사람들을 위해 천막을치는 손들은 분주하고/ 아침저녁 매연 속을 출퇴근하는 길/ 빙하역을 그리워하는 사람들 눈빛이나 표정이/ 하늘로 뿜어 대는 분수나 바람의 기척으로 일어서는 한/ 빙하는 계속 살아 있을 것이다/ 기다리고 있을 거예요/ 언젠가는 빙하역에 도착하리라는 신념으로/보일 듯 사라지지 않는 신기루처럼/ 새로운 얼굴을 피뤄올리는 사람들이 있는 한/ 빙하역도/ 북극곰도/ 그들을 오래도록 기억할 거예요”(시‘빙하역에서’ 중)

전주 출신 이광소 시인이 신간 시집 <빙하역에서>(상상인)를 펴냈다. 시인은 이번 시집을 통해 세속적 삶에 대한 피로와 사회적 자아에 대한 거부,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순수’라는 신화적 공간으로의 회귀를 노래한다.

표제작 ‘빙하역에서’는 “역병으로 쓰러진 사람들을 위해 천막을 치는 손들”, “매연 속 출퇴근길”, “빙하역을 그리워하는 사람들”의 눈빛 등을 통해 삶의 고단한 현실을 포착하면서도, 그 속에서 ‘빙하’라는 이상향을 꿈꾸는 시적 열망을 드러낸다. 작품에서 ‘빙하’는 단순한 자연물이 아니라, 세속적 욕망과 폭력, 오염으로부터 격리된 순수의 상징으로 제시된다.

시인은 “결빙 상태로 살아가는” 세계를 그리워하며, “불에 녹지 않는 나라”, “세상에서 가장 순수한 생명체만 사는 곳”을 갈망한다. 이는 현실로부터의 도피가 아니라, 오히려 오염되지 않은 본래적 존재를 회복하려는 언어적 실천이자 존재론적 선언이다.

이번 시집에서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얼굴’의 이미지는 시적 자아의 해체와 변신을 암시한다. 사회적 상징으로서의 ‘얼굴’을 벗어던지고, 고정된 자아로부터 탈주하려는 시인의 태도는 “얼굴을 지우되, 응시를 포기하지 말라”는 선언으로 응축된다.

시집 해설을 맡은 오민석 문학평론가는 “이광소 시인의 시를 지배하는 철학적 정조는 ‘결별’”이라며 “그는 지루한 시간과 결별하고, 반복되는 현상과 규정된 얼굴들과 헤어진다. 시인은 하나의 궤도에 머무는 것을 거부하며, 변신과 해체의 고원에서 무위의 잠재력을 펼친다”고 평했다.

이광소 시인은 1965년 문공부 신인예술상 시 부문에 당선되며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대표 시집으로는 <약속의 땅, 서울>, <모래시계>, <개와 늑대의 시간>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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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현아 hahaha6635@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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