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진 성평등, 상처만 남았다…‘반페미니즘’ 윤석열 정부의 2년 반

2025-03-07

‘여성가족부 폐지’, 윤석열 정부의 출발점은 이 일곱 글자였다. 윤석열 대통령은 국민의힘 대통령 후보였던 2022년 1월7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아무 설명 없이 ‘여성가족부 폐지’라는 두 단어를 올렸다. 불과 몇달 전까지만 해도 윤 대통령은 여가부를 양성평등가족부로 개편하고 업무와 예산을 재조정하겠다고 공약했는데, 이날을 기점으로 ‘폐지’로 견해가 바뀌었다.

보수·반페미니즘 정서가 두드러지는 20대 남성 유권자, 이른바 ‘이대남’들의 열광적인 반응이 뒤따랐다. 윤 대통령은 20대 남성들로부터 58.7%의 지지를 얻으며 집권에 성공했다.

대선으로부터 이어진 ‘백래시’(backlash·반동)는 그대로 윤석열 정부의 기조가 됐다. 그가 편승한 반페미니즘 정서는 2년7개월여의 임기 동안 대통령의 발언과 정책들로 구체화됐다. 성평등 정책과 여성 정책이 후퇴했을 뿐 아니라, 성차별적 구조를 외면하고 축소하는 전략도 돋보였다. 윤 대통령 탄핵을 요구하는 광장에 쏟아져나온 여성들이 성평등을 함께 외치게 된 것도 이 때문이다. 탄핵 이후 새 정치체제를 구성하는 과정에서 이 백래시의 상흔을 회복하고 치유할 방법에 대한 고민 역시 필요하다는 지적이 쏟아진다.

윤 대통령은 2022년 5월10일 취임한 이후 현재까지 여가부를 없애는 데 성공하지 못했다. 국민의힘이 같은 해 여가부를 폐지하는 내용이 담긴 정부조직법 개정안을 발의했지만 지난해 21대 국회 회기 종료로 폐기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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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윤석열 정부는 여가부의 힘을 빼는 데는 무엇보다도 진심이었다. 일단 수장을 없앴다. 윤 대통령 당선 직후 임명했던 김현숙 전 장관은 이번 정부의 처음이자 마지막 여가부 장관이다. 김 전 장관은 2023년 9월 ‘잼버리 사태’에 대한 책임을 지고 사의를 표명해 반년 뒤인 지난해 2월 사표가 수리됐다. 윤 대통령은 끝내 후임자를 임명하지 않으면서 여가부는 1년 넘게 수장이 없는 최장기 장관 공백 사태를 보내고 있다.

예산도 줄였다. 여가부는 2024년도 예산을 짤 때 여성폭력 방지 및 피해자 지원 예산 142억원을 삭감했다. 성매매 피해자 구조 지원과 성폭력 피해자 의료비 지원, 가정폭력 피해자 치료·회복 프로그램·의료비, 가정폭력 피해자 보호시설 운영, 폭력피해 여성 주거 지원, 피해자 지원 상담소 운영예산, 여성폭력 예방교육 및 인식개선·홍보 예산 등이 삭감 대상이 됐다.

예산 삭감은 실제 지원 현장의 어려움으로 이어졌다. 류수민 한국성폭력상담소 협동사무국장은 “미투(나도 고발한다) 운동 이후 양성평등담당관, 지자체별 담당 기관 같은 것들이 생겼는데 예산이 삭감되며 유명무실해진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그는 “우리 상담소를 보더라도 피해자 치료·회복 프로그램 예산이 반토막이 나서 원래 하고 있던 것들도 축소해 진행해야 한다”고 전했다.

윤석열 정부 임기 동안 맞이한 백래시는 여가부 존폐 논란뿐이 아니다. 곳곳에서 여성·성평등 정책이 후퇴했다. 윤 정부가 출범하며 내놓은 120대 국정과제에 성평등 관련 내용을 찾아볼 수 없었던 점에 비춰보면 예견된 사태였다.

교육부는 2022년 말 ‘성소수자’ ‘성평등’ 등의 용어를 삭제한 2022개정교육과정을 확정했다. 두 용어를 삭제하겠다는 시안을 두고 비판과 우려가 나왔음에도 변경 없이 강행한 것이다. 고등학교 보건 과목에서는 ‘성·생식 건강과 권리’가 ‘성 건강 및 권리’로 바뀌고 ‘섹슈얼리티’ 용어는 삭제됐다. 실과 교육과정에서는 ‘전성(全性)적 존재’라는 표현이 삭제되는 등 보수 기독교계의 요구 사항을 반영하는 방향으로 개정이 이뤄졌다.

고용노동부는 지난해부터 고용평등상담실 지원을 중단했다. ‘고용평등상담실 운영’ 예산을 ‘고용평등상담지원’ 예산으로 바꾸고, 민간 고용평등상담실을 지원하는 대신 정부가 직접 사업을 수행하겠다는 취지였다. 고용평등상담실이 성차별, 직장 내 성희롱, 모성보호 및 일·가정 양립 등에 관한 상담을 24년 동안 담당해온 기관이었다는 점에서 ‘여성 노동자 최후의 보루’가 축소됐다는 반발이 나왔다.

정책에서 ‘여성’이란 표현 자체를 지운다는 비판도 나왔다. 2023년 여가부는 제3차 양성평등정책 기본계획(2023∼2027년)을 발표했는데, 이전 회차까지만 하더라도 ‘여성’으로 표기됐던 정책이 ‘성별’ 등 다른 표현으로 대체되거나 삭제됐다. 예를 들어 여성 관리자 비율을 확대하기 위해 도입된 ‘공공부문 성별 대표성 제고’라는 정책명은 제1차(2015∼2017년), 제2차(2018∼2022년) 기본계획 등 기존 정책에선 ‘공공부문 여성 대표성 제고’로 쓰였으나 ‘여성’에서 ‘성별’로 표현이 바뀌었다.

한국여성의전화는 당시 논평에서 “놀랍게도 다양한 가족 지원, 아동·청소년 보호, 폭력 범죄 피해자 보호 확대 등 6대 핵심 과제 중 ‘여성’이라는 단어가 언급된 것은 단 한 번에 불과했다”며 “성평등, 여성 폭력 관련 의제를 외면하기 위해 ‘여성’이란 단어를 의도적으로 삭제한 것이 아닌가 의구심이 들 정도”라고 비판한 바 있다.

중앙정부의 이러한 기조는 지방정부 정책에도 영향을 미쳤다. 서울시는 여성정책담당관과 여성권익담당관을 양성평등담당관으로 통합했으며 부서도 변경했다. 대전시 성인지정책담당관 제도는 폐기되고 대구, 부산 등의 여성정책연구기관은 통폐합됐다.

윤석열 정부가 축소 내지는 무마하려 했던 성평등·여성 정책은 이보다 더 많을 가능성이 있다. 2023년 초 여가부가 비동의 강간죄 도입을 추진한다고 밝힌 뒤 담당 직원들이 대통령실로부터 조사를 받고 인사상 불이익을 받았다는 내용이 최근 경향신문 보도로 밝혀진 바 있다. 형법상 강간죄 구성 요건을 기존 ‘폭행 및 협박’에서 동의 여부로 바꾸라는 것은 그동안 국제기구가 한국 정부에 오래도록 권고해 온 사안이다. 이러한 권고를 반영하려는 움직임조차 찍어눌렀다는 사실은 아직 드러나지 않은 압박이 더 존재할 수 있음을 시사한다.

이러한 정책 퇴보는 윤 대통령의 근거 없는 현실 인식에 기인한다. 윤 대통령은 후보 시절부터 “구조적 성차별은 없다. 차별은 개인적 문제”라는 견해를 공공연히 밝혀왔다. 문제를 문제로 인식해야 개선도 할 수 있는데, 윤 대통령은 마치 성차별적 구조가 없는 것처럼 취급했다.

그 결과 윤석열 정부 임기 동안 각종 평가와 조사에서 한국의 성평등 관련 지표는 개선되지 못했다. 영국 시사주간지 이코노미스트가 산정하는 ‘유리천장 지수’에서 한국은 경제개발협력기구(OECD) 2024년까지 29개국 중 29위로 집계돼 12년 연속 꼴찌를 기록했고, 올해 조사에서야 28위로 간신히 꼴찌를 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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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리천장 지수는 고등교육 수준, 노동 참여율, 성별 임금 격차, 기업 이사회 여성 비율, 의회 내 여성 비율 등 10개 세부 지표를 종합해 평가한다. 지수가 낮을수록 직장 내 여성 차별이 심하다는 것을 뜻한다.

비정규직 여성과 남성의 시간당 임금 격차는 더욱 벌어졌다. 노동부와 여가부가 지난 1월 공개한 ‘2024년 여성경제활동백서’를 보면, 비정규직 남성 대비 비정규직 여성의 시간당 임금 비율은 2013년 74.6%에서 2023년 73.5%로 떨어졌다. 2013년 비정규직 남성과 여성의 임금 격차는 3300원이었는데, 2023년에는 5393원으로 늘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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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공기관 여성 임원은 윤석열 정부 들어 2022년부터 2024년까지 830명에서 741명으로 10.7% 줄었다. 기업분석연구소 리더스인덱스가 분석한 결과 327개 공공기관에서 이러한 후퇴가 일어났다고 확인됐다. 이전 3년간인 2019∼2021년에는 공공기관 여성 임원이 759명에서 829명으로 9.2% 증가한 것과 대조적이다.

지난 3년은 여성혐오, 성폭력, 여성 대상 폭력 등의 측면에서 정부의 정책 대응과 사회적 논의가 필요한 이슈가 빈번했던 기간이기도 했다. 딥페이크 성폭력 문제가 수면 위로 올라왔으며 이른바 ‘집게손가락’을 문제 삼아 사상 검증을 하려 드는 움직임이 무고한 관련자들의 피해로 이어졌다. 여성 대상 물리적 범죄 피의자의 여성혐오적 성향이 과거 행적이나 진술로 확인되는 등 소위 ‘인셀형’ 범죄도 여럿 발생했다.

하지만 적절한 정책 대응은 없었다. 오히려 윤 대통령이 국가의 지도자로서 ‘혐오의 공간’을 열어줬다는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김현미 연세대 문화인류학과 교수는 윤 대통령의 지난 시간이 남성 ‘임파워링’(empowering·북돋아주다)이 아닌 정치적 ‘선동’이었다고 평가했다. 윤 대통령은 정치 지도자로서 기존의 편견과 혐오를 바로잡는 쪽이 아닌 강화하고 이용하는 전략을 택했다는 얘기다.

이는 결과적으로 남성들에게도 해가 됐다. 김현미 교수는 “지금 보수 우파가 가짜뉴스로 조직화를 해내듯이 윤 대통령은 이대남 또는 남성 전반의 ‘여성혐오 전위대’를 구체적으로 만들어냈다”고 말했다. “남성 생계 부양자 모델은 자연스럽게 시대적으로 바뀌어가고 있는데, (윤 대통령은) 젊은 남성들에게 ‘너는 손해를 보고 있다’는 식으로 정치적으로 동원했다”는 것이다. 김 교수는 이어 “혐오 이분법을 강화해 표를 모으고 조직화를 해낸다는 것은 굉장히 나쁜 형태의 정치다. 이를 극복하지 못한다면 다음에 누가 대통령이 되더라도 극단적 양극화가 이어질 것”이라고 덧붙였다.

‘내란 수괴(우두머리)’ 혐의를 받는 윤 대통령의 운명은 곧 헌법재판소에서 결정된다. 윤 대통령의 불법 비상계엄 선포로 광장에 나온 시민들의 주류가 2030 여성들이라는 사실은 그간 이 정부의 여성 정책이 그만큼 반동적이었다는 것을 뜻하기도 한다. 이들은 집회 현장과 이후 개최된 집담회·토론회에서 윤 대통령 탄핵에 그치지 않고 성평등 사회로 나아가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여성들의 요구 사항이 광장에만 머물고 정치에 반영되지 못했던 과거를 되풀이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김현미 교수는 “이후에 다가올 시간에는 성평등이나 다양성 존중이란 의제를 구체적으로 어떻게 새로운 정부의 정책 기조에 들어가게 할지를 고민해야 될 것”이라고 밝혔다. 류수민 국장은 “성평등이 민주주의의 토대라는 인식이 필요하며, 여성 대상 폭력이 개인 대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구조 차원에서 접근해야 하는 문제라는 것을 다시 정책을 통해 촘촘하게 쌓아 올려야 한다”고 밝혔다.

▼ 김서영 기자 westzero@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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