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자를 품어 빛이 되는 기적

2025-09-03

맹그로브 숲으로 반딧불이를 보러 간 적이 있다. 어둠이 내릴 때 작은 배를 타고 은밀히 움직였다. 서식지에 이르러 배 시동을 끄고 기다리던 적막한 시간. 고요 속에서 하나둘 시작된 반짝임들이 어느덧 박자를 맞추어 점멸하던 빛의 향연. 그저 신비롭다 아름답다 숨죽이고 바라볼 뿐이었지만, 그 발광의 리듬 속에는 시각적 아름다움을 넘어선 진화의 놀라움이 숨어 있다.

발광의 첫 번째 목적은 짝짓기. 암컷은 특정 주기로 점멸하는 수컷을 좋아하는 경향이 있으므로, 암컷의 눈을 사로잡는 주기를 찾되 포식자에게 잡아먹힐 위험은 피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같은 주기라도 중구난방으로 여기저기서 깜빡이는 것보다는 집단으로 박자를 맞추면 그 빛은 훨씬 더 강렬해져 눈에 띌 터. 더불어 한 마리 한 마리 구별이 어려워져 포식자로부터의 공격을 피할 수도 있으니. 서로 경쟁하는 것보다는 함께 리듬을 맞춰 짝도 찾고 위험도 피하는 일거양득의 전략이다.

혼자 빛 못 내는 밥테일 오징어

박테리아 몸에 채워 집단 발광

협업해 공존하는 진화의 기적

인간이 배워야 할 공생의 언어

반딧불이가 빛을 낼 수 있는 것은 체내에 있는 루시페린이라는 물질 덕분이다. 이 물질이 산소와 만나 산화되면서 만들어진 에너지가 빛의 형태로 방출되는 화학적 반응. 반딧불이 말고도 버섯이나 해파리 갯지렁이 심해어들이 이와 같은 방식으로 빛을 낸다. 그런데 발광은 하고 싶지만 몸 안에 발광물질이 없다면? 다른 종을 몸 안으로 끌어들여 빛을 낼 수 있다면? 그 종이 좋아하는 물질을 만들어 유인해 볼 수 있지 않을까?

하와이안 밥테일 오징어는 두족류 중에서도 몸이 아주 작은 축에 속한다. 그야말로 수많은 해양생물들의 한 입 거리, 만만한 먹잇감이라는 얘기다. 그래서 낮에는 포식자를 피해 모래무지 속에 숨어서 지내다 해가 진 후에야 움직이는 방법을 택했다. 밥테일 오징어는 숨기의 명수. 모래무지를 파고든 다음 주변의 모래알갱이를 끌어와 몸을 감추는데 단 몇 초면 충분하다. 점액질을 이용해 모래알갱이를 몸에 붙이거나 피부색을 바꿔 주변과 똑같이 만드는 위장술도 뛰어나다.

그들은 밤이 되어서야 은신처에서 나와 수면 가까이로 올라가 사냥을 한다. 밤이라고 해서 포식자들이 사라지는 건 아니므로, 포식자에게 발각되지 않게 몸을 감추는 방법을 찾아야 했는데, 숨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빛을 내는 방식을 선택했다. 달빛에 만들어지는 자신의 그림자를 빛을 발해서 지우기. 여럿이 모여 빛을 발해 수면에 일렁이는 별빛이나 달빛으로 착각하게 만들기. 달의 기울기나 날씨에 따라 빛의 밝기를 조절할 수 있을 정도로 아주 정교한 방식이다.

밥테일 오징어가 빛을 내기 위해서는 비브리오 피셔리라는 박테리아의 도움이 필요하다. 이들의 협업은 조금 복잡한 과정을 따르는데, 매일 밤 열리는 나이트클럽 발광 파티를 상상해 보면 좋다. 선택받은 종만 출입할 수 있는 철저한 회원제 클럽. 입구에는 회원과 비회원을 걸러내는 화학감지기가 있다. 입구에서 클럽 안쪽까지는 회원들 취향에 맞는 유도등도 켜져 있다. 무대에 도착했다고 바로 파티에 참가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정족수가 채워질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딱 알맞은 수의 회원이 들어왔을 때에야 비로소 스위치가 켜지고 파티가 시작된다. 발광의 춤은 머리 위 조명색에 맞춰야 한다. 반짝반짝 일렁일렁. 그렇게 한밤의 발광 파티가 끝나고 아침이 오면, 회원들은 하나도 빠지지 않고 모두 클럽을 빠져나간다. 여운이 남았다고 클럽에 남아 있는 것은 허용되지 않는다. 클럽은 매일 새로운 회원을 끌어들여 춤추게 하고 내쫓는다. 매일 그 일을 반복한다.

채우고 발광하고 비워서 새로 채워 발광하고. 자전하는 지구의 리듬에 맞춰 하루 주기로 여는 발광파티. 이 정교한 협업을 위해서는 밥테일 오징어와 박테리아의 끊임없는 대화가 필요하다. 서로를 인식하고 경험하고 반응하며 하룻밤의 여정을 함께 한다. 그들의 상호작용으로 만들어 낸 빛이 수면 위에 일렁이는 달빛과 같다 하니 얼마나 아름다운가. 수많은 박테리아를 품어 하나의 빛을 내는 밥테일 오징어. 하나하나의 빛이 함께 모여 반짝이고 일렁이면서 만들어 낸 밤하늘의 달빛 별빛.

빛을 내는 것들의 아름다움을 생각한다. 스스로 빛나는 태양과 태양 빛을 반사해 빛이 나는 밤하늘의 행성들. 태양빛을 먹고 사는 지구상의 생물들과, 빛을 먹고 살 수 없어 빛을 만들어낸 생물들을. 혼자가 아니라 함께의 리듬을 터득한 반딧불이의 발광을. 박테리아를 품어서 빛을 내는 밥테일 오징어의 발광을. 저마다 먹고 살아남기 위한 행동과 진화의 결과였겠지만, 상호 교신하고 협동하는 네트워크를 떠올리게 하는 빛남과 아름다움이다.

며칠 후 개기월식과 붉은 달을 볼 수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날씨와 월식 시간을 확인하다가 문득 밥테일 오징어를 떠올렸다. 월식을 알아차릴 수 있으려나. 달빛의 변화에 맞춰 몸의 색을 바꿀 수 있으려나. 그러려면 박테리아와는 무슨 대화를 나누려나. 공생의 언어를 생각하게 되는 요즈음이다.

천운영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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