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인터넷신문]최근 영화계에서 개봉 시점을 두고 배급사 간 눈치 싸움이 계속되고 있다. 이른바 '수요일 개봉 공식'이 깨진 것은 물론이고 개봉을 얼마 앞두지 않고 날짜를 바꾸기도 한다.
코로나19 이후 극장가가 침체한 데다, 이전보다 시장의 불확실성이 커진 상황에서 조금이라도 더 많은 관객을 확보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모습이다.
1일 영화계에 따르면 지난 설 황금연휴(1월 25∼30일)를 겨냥한 한국 영화 3편 중 수요일에 개봉한 영화는 '히트맨 2'(22일) 한 편뿐이다.
'검은 수녀들'은 연휴 직전이자 금요일인 24일 개봉을 택했다. '말할 수 없는 비밀'의 경우 설 전날인 28일 개봉을 예정했다가 27일이 임시공휴일로 지정되자 월요일인 이날로 개봉일을 옮겼다.
2000년대부터 관행처럼 굳어진 수요일 개봉 공식을 깨고 '전략 개봉'을 택하는 사례는 지난해부터 이어져 왔다.
'파묘'는 삼일절 연휴 한 주 전이자 목요일인 2월 22일에, '베테랑 2'는 추석 연휴 전날이자 금요일인 9월 13일에 각각 개봉했다. 여름 대목을 노리고 나온 '하이재킹'과 '탈출: 프로젝트 사일런스'도 금요일 개봉을 선택했다.
앞서 '하얼빈'은 개봉을 보름가량 남기고 크리스마스인 12월 25일에서 이브인 24일로 개봉일을 앞당기기도 했다.
배급사들이 하루 이틀 차이에도 개봉일을 놓고 고심을 거듭하는 이유는 과거와 비교하면 개봉의 '타이밍'이 영화의 흥행을 판가름하는 매우 중요한 요소가 됐기 때문이다. 코로나19 이후 극장가 파이가 작아진 상황에서 대작과의 맞대결은 최대한 피하되, 관객이 가장 많이 몰리는 시기를 세밀하게 예측해 개봉해야만 실패 가능성을 낮출 수 있다는 것이다.
한 배급사 관계자는 "예년의 박스오피스 상황이나 경쟁작의 추이를 반영해 개봉일을 결정하곤 하지만, 최근에는 배급사들의 눈치 싸움이 크게 작용하는 것 같다"면서 "코로나19 이후 관객 한 명 한 명이 아쉬운 만큼 가장 영화가 잘 될 시기를 엿보는 것"이라고 말했다.
홍보나 관객 입소문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오프닝 스코어(개봉일 관객 수)가 높게 나올 만한 날짜를 고르는 것이라는 의견도 나온다.
또 다른 배급사 관계자는 "오프닝 스코어가 10만명 정도는 돼야 영화 홍보에도 활용하기 좋은데 요즘 수요일 10만명 동원은 쉽지 않은 일"이라며 "예컨대 금요일에 개봉해 오프닝 스코어를 최대한 끌어올리고 그 분위기를 주말로 이어가는 게 유리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실제로 금요일에 개봉한 '검은 수녀들'은 16만명의 오프닝 스코어를 기록한 뒤 토·일요일 이틀간 박스오피스 1위에 올랐다. '하얼빈' 역시 개봉일에 38만명, 이튿날에는 84만명의 관객을 동원하며 날짜를 앞당긴 덕을 톡톡히 봤다.
관객 수가 코로나19 이전 수준으로 완전히 회복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암울한 전망이 나오는 만큼, 개봉일을 놓고 벌이는 배급사들의 수 싸움은 한동안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한 영화계 관계자는 "어떤 영화가 대박이 나고 실패할지 점점 더 예상하기 어려운 때에 할 수 있는 건 가장 안전한 시기에 개봉해 리스크를 줄이는 것"이라면서 "경쟁작 면면이나 공휴일이 며칠인지뿐만 아니라 '오징어 게임' 같은 OTT(온라인 동영상 서비스) 인기작이 나오는지 여부까지 따져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할리우드 영화인 '미키 17'도 여러 차례 개봉일을 바꾸며 저울질하는데, 한국 영화도 그러지 못할 이유가 없다"며 "개봉일을 당겼다가 늦췄다가 하는 일도 점점 더 잦아질 것"이라고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