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같이 흐르는 법과 재판

2025-03-02

법정을 이렇게 자주 보는 건 처음이다. 대통령 탄핵 재판 장면이 방송에서 반복 반영되는 탓이다. 몰랐던 것들이 눈에 띈다. 우선 재판관들의 앉는 위치가 다른 사람들보다 높았다. 이유가 궁금해 찾아보니 법의 권위에 대한 상징과 함께 판사에 대한 물리적 위해를 방지하려는 목적이다. 현재 법대의 높이는 약 45㎝ 정도이다. 옛날에는 좀 더 높았고, 최근 소법정의 경우에는 15㎝ 정도로 낮춘 곳도 있다고 한다. 법대 높이의 하향 추세는 재판받는 당사자와 방청인들과 눈높이를 맞추려는 의도이다. 나라를 호령하는 임금, 까마득한 계단 꼭대기에 자리한 제단, 거대한 피라미드 건조물, 궁극적인 높이인 하늘에 닿으려던 바벨탑처럼 더 높은 높이로 더 높은 권력을 표시하려는 인간의 욕구와 역사를 떠올리며 마땅한 변화라고 느꼈다.

헌재 기존 탄핵재판 늑장 부려

대통령 탄핵재판은 급하게 진행

법, 정치집단 편향에 막혀선 안 돼

대통령 탄핵 재판은 구중궁궐 속의 일로 여겨지던 법정의 세계를 좀 알게 해주는 기회였다. 법과 재판이라는 것이 특별한 전문성이 요구되는 것으로 믿어서 법조인들이 알아서 잘 진행하고 잘 결정할 것이니 그에 잘 따르면 된다고 치부해 왔다. 그런 고정관념에는 ‘법 없이도 살 사람’이라는 말이 지극히 정상적이고 착한 사람이라는 의미의 칭송과 동의어로 여기는 우리 문화의 상식도 작용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번 재판에서는 전문성에서 최고봉인 헌재의 결정에 의아한 경우가 적지 않았다. 대표적으로 야당의 입법 폭주에 의한 29번의 탄핵소추에 따른 13건 탄핵 재판을 왜 신속하게 처리하지 않는가에 대한 의문이다. 정상적인 나라 운영에 지장을 주는 탄핵 안건에 대한 심리가 그렇게 오랜 시일을 끌 사안으로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심리를 서둘렀다면 야당의 무책임한 탄핵의 대량생산에 나라가 혼란스러워지는 사태는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다. 고 노회찬 의원이 말했듯이 강남에서 일하기 위해 많은 아주머니와 아저씨들이 매일 새벽 4시와 4시 5분에 구로구 가로수 공원에서 출발부터 거의 만석이 되는 버스에 오른다. 우리 사회에서 최고 수준으로 대우받는 헌법재판관은 자신들의 임무에 왜 이리 늑장을 부리느냐고 말하면 과한 것인가.

대통령 탄핵 재판은 일정과 절차를 너무 급하게 편파적으로 진행한다는 비판이 컸다. 헌법이 보장한 180일보다 야당의 탄핵 재촉에 동조한다는 의심을 살 정도였다. 이런 비판에 당당하기 위해서는 재판 절차에 대해 그저 평의의 결정에 따른 것이라고 마지못해 한마디 하는 건 너무 권위주의적인 태도다. 대신 그렇게 진행해야 하는 이유를 구체적으로 설명해야 한다. 심리 과정에 소수의 재판관만 질문하고 더 많은 재판관이 질문을 한 번도 하지 않은 것도 이해하기 어려웠다. 높은 전문성이 담긴 질의를 통해 진실을 찾아가는 과정을 일반 국민에게 보여주지 못하는 것이 실망스러웠다. 자유론의 저자 ‘존 스튜어트 밀’이 설파했듯이 ‘진실은 스스로 자신을 드러내지 않으므로’ 치열한 논쟁을 통해 찾아가야 한다. 그래야 재판이 법정의 독점물로 끝나지 않고 국민에게 생각의 자유, 토론의 자유가 진실을 가려내는 힘임을 체험하게 하는 것이다. 그 옛날 그리스 아테네 시대가 ‘숙의적 스피치’, ‘사법적 스피치’, ‘사회적 스피치’(『아리스토텔레스 수사학』, 박문재)를 통해 인류에게 민주주의의 참모습을 보여준 것을 돌이키면 갑갑했다. 특히, 법정에서 온갖 지혜를 충분히 담아내는 논쟁으로 표현의 자유를 풍성하게 한 사법적 스피치가 왜소하고 형식적으로 진행되는 게 안타까웠다.

탄핵을 둘러싼 논란과 찬반 시위는 법에 대해 상념을 일으킨다. 법(法)은 물 수(水) 변에 갈 거(去)가 결합한 것이니 물과 같이 흐르는 것이다. 물은 생명의 원천이다. 세계의 4대 문명이 모두 큰 강을 끼고 발흥했다. 철학의 문을 연 그리스의 탈레스는 세상을 있게 하는 한 가지 기본 요소(아르케)는 물이라고 했다. 노자는 『도덕경』에서 세상에서 최고의 선(善)은 물과 같다고 했다. “가장 훌륭한 것은 물처럼 되는 것이다/ 물은 만물을 이롭게 하면서도 다투지 아니하고/ 뭇사람들이 싫어하는 곳에 자신을 둔다/ 그러므로 물은 도(道)에 가깝다”고 했다. 물은 유약하고 부드럽고 약하지만 이르지 못하는 곳이 없고, 강하고 굳세고 쎈 것도 이겨낸다.

이제 재판은 최종 선고만이 남아 있다. 법은 물처럼 흘러가야 한다. 산업화와 민주화의 성취를 통해 이토록 발전하고 잘살게 된 대한민국에서 가장 낙후한 정치·정당 집단의 편향에 물 같이 흘러야 할 법이 막혀서는 안된다. 헌재는 손에 칼과 저울을 쥐고 옳고 그름을 심판하는 ‘디케’의 법 정신과 무관한 ‘전원 합의’라는 신기루에 구속되지 않는 평의로 ‘최고의 선’과 같은 판결을 내야 한다.

김정기 한양대학교 명예교수·커뮤니케이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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