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주의적 민주주의

2025-03-03

윤석열의 계엄이 웃을 수 없는 희극이었다면, 종교와 정치가 뒤엉킨 3·1절의 대중집회는 비극의 시작 같다. 정치인이 그런 집회에 나간다는 것은 정치의 기능이 무너졌음을 뜻한다. 그건 정치가 아니라 선동이다. 사회가 어떻게 되든, 기회만 얻으면 된다고 보는 무책임한 태도다. 적어도 3·1절의 거리에서 정치는 죽었다. 정치인도 죽었다. 공동체? 그런 건 없었다. 거리엔 분단된 두 나라가 있었다.

종교와 정치가 뒤섞인 대중집회

걱정스러운 정치인의 대중 선동

전체주의에 취약해진 민주주의

파국까지 가서야 멈추게 될까

정치가 위기의식을 강요하며 사람들에게 거리로 나서라 하면 그건 더 이상 정치가 아니다. 합리적으로 문제를 풀어갈 수 없다고 말하는 것은 우리에게 두려움을 강요하는 협박이다. 두려움과 협박은 지배의 방법이지 정치의 방법이 아니다. 오래전 독일의 재상 비스마르크가 말했듯, 정치는 ‘가능성의 예술’이다. 우리를 막다른 골목으로 끌고 가지 않아야 정치다. 상대가 적대와 공격을 멈춘다면, 그와 다시 평화를 이야기하고 해결책을 모색할 수 있어야 정치다. 지금 우리 정치는 말도 섞을 수 없게 되었다.

누군가 다른 목소리를 듣지 않아도 되고, 다른 이의 도움이 없어도 되는 정치가가 있다면 그는 완전하게 정의로운 사람일 것이다. 그에게는 귀 기울여야 할 비판자가 존재하지 않아야 한다. 그가 보통의 인간들보다 정의로울지는 모르겠으나, 확실한 것은 있다. 통치자나 정치가로서 그는 반사회적인 존재다. 이견으로부터 배우지 않아도 되는 이는 왕이다. 법을 부정하고 선의만 믿으라고 하는 자는 독재자다.

우리는 불완전하기에 타자에게 의존하는 삶을 산다. 틀릴 수 있다는 것을 알기에 일당제가 아닌 다당제 민주주의를 한다. 정당들이 적이기만 할 뿐 서로에 대해 의무감이 없다면 정치는 있을 수 없다. 1인 지배체제나 전체주의가 무지의 동원을 극대화하는 까닭은 상대와의 대화와 토론을 억압하기 때문이다. 그 자리에 들어서는 것은 사람들을 적의로 눈멀게 하는 극단과 맹목이다.

전체주의는 민주주의에 상존하는 위험이다. 민주화 이전에는 군부독재나 권위주의는 있어도 전체주의는 없다. 전체주의의 위험은 자유의 대가다. 그런 위험은 대중의 역할을 잘못 이해할 때마다 민주주의 안으로 스며들어 온다. 전체주의자들은 바꿀 수 없는 것들을 너무 쉽게 바꾸려 한다. 그들은 완전히 정의롭고 더없이 이상적인 사회에 대한 열망을 먹고 산다. 자신들과 생각을 달리하는 정당이나 집단을 경멸하고 없애려 한다. 그들의 혐오 목록에는 다양성과 이견, 차이, 갈등이 수위를 차지한다. 오로지 일치된 투쟁, 원팀, 하나됨만이 추앙된다. 다름과 이질성은 증오의 대상이다. 그런데 바로 그 때문에 다원주의 속에서만 숨 쉴 수 있는 정당정치는 파괴된다.

민주주의를 대중 참여로만 이해하는 관점은 전체주의에 무기력하다. 전체주의는 언제나 대중의 대규모 운동을 동반한다. 전체주의가 대중을 동원하고 대중에 의존한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역대 전체주의 국가들 가운데 대중 동원 없이 수립된 사례는 없다. 대중의 분노 없이 유지된 전체주의는 없다. 자발적이든 강제된 것이든 전체주의는 증오할 적을 필요로 한다. 군대만이 아니라 분노하는 대중도 폭력의 주체가 될 수 있음을 전체주의는 보여준 바 있다.

전체주의는 탄압과 통제를 동반한다. 그것도 잔인한 탄압과 통제다. 그런데 그게 가능한 것은 광범한 대중이 참여하고 있기 때문이다. 전체주의자들은 대중의 집단적 의지와 믿음을 창조해 돈을 모으고 권력을 향유하는 방법을 알고 있다. 반대파를 대중의 열의를 통해 탄압하는 방법에도 익숙하다. 『정치를 옹호함』(후마니타스 2021)의 저자 버나드 크릭이 적절히 예로 들었듯, “물지 않고 짖기만 하는 겁먹은 반대자들조차 허용하지 않는 것이 전체주의다. 침묵하거나 잠자는 개조차 가만히 누워 있지 못하게 하는 것도 그들이다. 꼬리를 흔들며 반길 때까지 전체주의적 대중이 그들을 채찍질한다.”

전체주의는 전통적 독재와는 달리 수동적 복종을 원하지 않는다. 온 힘을 다해 지지하고 참여해야 하는 체제가 전체주의다. 지금 우리 사회에서 대규모 집회를 동원하는 사람들은 온 힘을 다해 상대를 적대한다. 모든 것을 걸고 불의와 싸우겠다고 한다. 법으로부터 자신들의 지도자를 수호하겠다고 소리친다. 그들이 반민주주의자는 아닐지 모른다. 다만 자신들만 옳을 수 있는 민주주의, 다른 정당을 없애고 싶은 민주주의, 법의 지배를 부정하는 민주주의라면 결국 전체주의다.

자신만 정의롭다고 말하는 자들은 결국 자신에게 꼬리를 흔드는 시민이 아니면 결코 내버려 두지 않을 것이다. 지금 우리 사회는 그런 마음을 가진 사람들로 그득하다. 조롱과 야유는 그들의 일상이다. 정치는 대화하고 협력할 수 없는 이들이 한다. 그들이 지배하는 세상이니 민주주의에는 다원주의가 없고, 정치에는 다정한 합리성이 깃들 리 없다. 우린 지금 파국으로 달려가고 있다.

박상훈 정치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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