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국 정상들, 장례 미사 참석
美·佛·獨·英 등 모두 한자리 모여
휴전 논의 절박 젤렌스키도 참석
우크라전 중재 나설지 이목 집중
대만 총통도 바티칸에 참석 요청
트럼프·EU위원장 회동 여부 주목
성사 땐 관세 문제 논의 가능성 커
프란치스코 교황의 마지막 길을 배웅하기 위해 전 세계 정상들이 바티칸을 찾는다. 수년간 이어진 전쟁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희생되고, 관세 문제로 격한 갈등이 이어지는 가운데 각국 지도자들이 한자리에 모이는 ‘조문 외교’가 펼쳐질 것으로 보여 교황의 마지막 메시지 ‘종전’, ‘평화’가 제대로 논의될지 주목된다.

22일(현지시간) AFP 등에 따르면 26일 오전 10시(한국시간 오후 5시) 바티칸의 성 베드로 대성당에서 엄수되는 프란치스코 교황 장례식에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을 비롯해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 펠리페 2세 스페인 국왕, 안제이 두다 폴란드 대통령, 올라프 숄츠 독일 총리, 키어 스타머 영국 총리 등이 참석의사를 표명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의 ‘조국’이었던 아르헨티나의 하비에르 밀레이 대통령도 장례 미사를 찾을 예정이다.
좀처럼 한자리에 모이기 어려운 각국 정상들이 잇따라 장례식 참석 의사를 밝히면서 2022년 영국 엘리자베스 2세 여왕 서거 이후 3년 만에 조문 외교 무대가 열릴 전망이다. 특히 우크라이나와 중재자인 미국과 유럽 주요국 정상들이 한곳에 모이는 만큼 우크라이나 전쟁과 관련된 논의가 이어질지 관심이 쏠린다. 다만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국제형사재판소(ICC)의 체포영장이 발부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장례식에 참석하지 않는다.
휴전 협정 논의가 절박한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트럼프 대통령과의 만남을 적극적으로 요청했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바티칸에서 트럼프 대통령을 만나고 싶다”며 “우리는 항상 미국 파트너들과의 회담에 준비가 돼 있다”고 밝혔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바티칸에서) 미국과 군사 지원에 대한 합의나 세부 사항을 논의할 기회가 있을 것”이라며 “미국제 패트리엇 방공 시스템을 구매하겠다는 제안에 대한 답도 받지 못한 상태”라고 말했다.

미국 측에선 두 정상의 만남 가능성에 대해 아무런 언급을 하지 않았다. 두 정상은 지난 2월28일 백악관에서 파국으로 치달았던 회담 이후 얼굴을 마주한 적이 없다. 미국이 러시아와 종전을 위한 물밑 작업에 속도를 내는 상황에서 젤렌스키 대통령에게 이번 교황의 장례식은 일종의 ‘돌파구’이자 ‘마지막 기회’인 셈이다. 이날 파이낸셜타임스(FT)는 미국이 러시아의 크름반도 점령을 인정하고, 러시아가 점령한 4개 주 일부 영토 통제권을 인정하는 안에 대한 논의에 착수했다고 보도했다. “크름반도는 논의할 필요조차 없는 우크라이나 영토”라는 젤렌스키 대통령의 강경한 반대에도 미국과 러시아가 ‘현 전선 동결’로 합의하는 모양새다. 휴전을 함께 논의하고 있는 유럽에서도 우크라이나에 은근한 양보를 바라고 있다.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유럽연합(EU) 집행위원장과 트럼프 대통령 간 첫 만남이 로마에서 성사될 수 있다는 전망도 제기된다. 두 정상 간 만남이 성사된다면 현재 양측의 가장 첨예한 이슈인 관세 문제가 단연 대화 주제로 꼽힐 전망이다. 유럽과 미국의 관계가 급격히 악화한 상황에서 폰데어라이엔 위원장은 직접 회담 대신 트럼프 대통령과 친분이 있는 조르자 멜로니 이탈리아 총리를 가교 삼아 관세 정책과 우크라이나 지원 방안 등을 논의한 바 있다.

대만은 라이칭더 총통의 장례식 참석을 준비 중이다. 우즈중 대만 외교부 차관은 “라이 총통이 대만을 대표해 장례식에 참석할 수 있도록 바티칸에 요청을 보냈으며 현재 답변을 기다리고 있다”고 밝혔다. 라이 총통의 참석이 이뤄진다면 대만 총통으로서는 세계 각국 정상을 만날 수 있는 드문 외교적 기회가 될 것이라고 블룸버그통신은 전했다. 바티칸은 유럽 내 마지막으로 남은 대만의 수교국으로, 2005년 바티칸이 대만과 단교하고 중국과 손을 잡으려는 움직임을 보이는 가운데 천수이볜 총통의 요한 바오로 2세 장례식 참석을 계기로 바티칸과 유대관계를 다졌다. 당시 중국은 천 총통에게 비자를 발급해준 이탈리아 당국에 항의하며 조문단을 파견하지 않았다.
권이선 기자 2sun@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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