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6일 우크라이나 지토미르의 폴리시야 스타디움. 밤하늘을 가르며 조명탄이 터졌고, 관중석에서 환호성이 일었다. 샤흐타르 도네츠크가 디나모 키이우를 승부차기 끝에 꺾고 2025년 우크라이나컵 정상에 오른 순간이었다. 가디언은 19일 “단순한 스포츠 이벤트 이상의 의미를 가진 하루였다”며 “전쟁 이후 처음으로 ‘정상에 가까운 축구’가 열렸고, 5000여 명이 그 순간을 함께했다”고 전했다.
이날 결승전은 2022년 러시아의 침공 이후 처음으로 전국 단위에서 대규모 관중 입장이 허용된 경기다. 우크라이나 축구협회는 경기장 주변 대피소 확보 및 안전 기준을 충족한 지토미르의 폴리시야 스타디움을 대회 개최지로 선정했다. 키이우의 로반롭스키 스타디움은 대피소 수용 기준 미달로 개최가 어려웠다.

이날 관중 다수는 현역 군인이었다. 일부는 참호에서 곧장 이동했고, 일부는 며칠 휴가를 받아 지토미르로 향했다. 경기전 테테리프강을 가로지르는 육교 위로 샤흐타르 서포터스 수십 명이 행진했다. 붉은 연기와 함께 응원 구호가 울려 퍼졌다. 한 샤흐타르 팬은 “여기 있는 사람 중 70%는 현재 군 복무 중”이라고 가디언에 전했다.
디나모 키이우 팬 일부도 군부대에서 9시간을 달려와 현장을 찾았다. 가디언은 “팬들 사이에는 오랜 지역 라이벌전 긴장감보다, 전쟁으로 얽힌 공동체 정서가 더 강하게 감돌았다”고 상황을 전했다. 키이우 팬 한 명은 “전쟁터에서는 싸우지만, 여기선 형제”라며 “경기를 함께 본다는 것만으로도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전반 35분, 디나모의 야르몰렌코가 선제골을 터뜨렸고, 후반 샤흐타르의 브라질 출신 카우아 엘리아스가 동점골로 응수했다. 연장전까지 이어진 승부는 결국 승부차기 끝에 샤흐타르가 5-4로 승리했다. 경기 내내 양 팀 선수들의 몸싸움은 거칠었고, 관중석 일부에서는 인종차별적 구호가 들리기도 했다. 후반에는 철제 구조물 위에 올라간 샤흐타르 팬 두명이 러시아 국기를 불태우는 장면도 포착됐다. 가디언은 “정치적 메시지가 응축된 행위였지만, 동시에 현재 우크라이나가 놓인 현실을 상징하는 순간이었다”고 전했다.
경기 종료 직후, 수비수 발레리 본다르는 울타리를 넘어 관중석으로 들어가 조명탄을 들고 자축했다. 감독 마리노 푸시치는 선수들에게 헹가래를 받았다. 푸시치는 이번 시즌 후 팀을 떠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전해졌다.

경기를 지켜본 15세 소년 스비아토슬라프는 ‘영웅의 아이들’이라는 전쟁 피해 아동 지원 단체를 통해 지토미르에 왔다. 그는 키이우 유소년 팀에서 뛰고 있으며, 전쟁 초기 구호 활동 중 전사한 아버지를 기억하고 있다. 그는 “축구는 우리가 하나라는 증거”라며 “우리가 아직 살아 있고, 함께할 수 있다는 걸 느낀다”고 말했다. 가디언은 “이번 결승전은 단지 한 팀이 우승한 경기로 끝나지 않았다”며 “우크라이나가 아직 싸움 중인 국가라는 사실을 잊지 않으면서도, 시민들이 일상의 일부를 되찾은 상징적 순간”이라고 전했다. 우크라이나 정부와 축구협회는 향후 리그 및 컵대회를 조금씩 정상화하는 한편, 곤중 입장 확대도 검토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