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시적인 대중'과 '130번 압수수색' [오정환 칼럼]

“대중은 원시적이다.따라서 선전은 단순하고 반복적이어야 한다.”나치 선전상 괴벨스의 말이다.천하에 망언이지만.오늘 대한민국에서는 괴벨스의 말이 마치 예언인 것처럼 실행되고 있다.

“김혜경 씨 수사를 저렇게 했다. 7만8천 원 가지고,압수수색을 몇 번 했나. 130번!” 지난달18일 국회 법사위 국정감사장에서 박은정 조국혁신당 의원이 이창수 서울중앙지검장에게 다그친 말이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의 부인 김혜경 씨가 중국집에서 경기도 법인카드로3명에게 불법으로 밥을 산 사건 수사를 추궁한 것이다.

‘7만8천 원 수사에130번 압수수색!’이 얼마나자극적이며, 외우기 쉽고,피를 끓게 만드는 표현인가. 윤석열 정부가 수사권을 남용한다는 주장이 마치 사실인 듯 보인다.

그런데 이상하다.중국집에서 밥 한 끼 먹은 일로130번 압수수색을 할 수 있나.그게 물리적으로 가능할까.형사들이 먹은 밥알 숫자라도 세었다는 말인가.

사실은 전 경기도 공무원 조명현 씨의 폭로로 시작된 이재명 대표 부부의 법인카드 유용 수사 전체를 위한 압수수색이었다. 며칠 전 이 대표를 기소할 때 드러난 음식 1,574만 원,제사용품 등 과일 2,791만 원, 세탁비 270만 원 등의 지급 내역을 확인한 것이다. 이 대표 부부가 워낙 알뜰하게 생활비를 경기도 예산으로 사용한 탓이니, 압수수색 장소가 많아진 책임을 수사당국에 물어서는 안 될 것이다.

그리고 다른 예산 유용은 업무상 배임인데, 김혜경 씨의 중국집 식사만 공소시효가 짧은 선거법 위반이어서 따로 떼 먼저 기소했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박은정 의원은 이를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는 올해 초 총선 출마 직전까지20년 이상 검사로 일했던 사람이다. 정직성은 몰라도, 최소한 그렇게 무지하지는 않다고 보아야 한다.

검사 출신 박은정 의원에게 힘을 얻었는지, 사흘 뒤 송순호 민주당 경남도당 위원장은 최고위원회의에서 같은 말을 했다. “어떤 사람(김혜경 씨)은 법인카드 사용액 7만8천 원 때문에130번의 압수수색을 당했다.”

그리고 각종 언론매체들도 쉴새 없이 국민의 귀에 대고 속삭인다.예를 들어, 9월6일 CBS에서 A 시사평론가는 “본인 것 빼면 한8만 원 정도인데, 이것 가지고도 검찰 조사받고 출석”이라고 말했다. 10월18일 MBC 라디오에서 B 진행자는 “제가 기억하기에 김혜경 씨에 대한 법카 10만 원 정도죠.거기 압수수색을120여 차례”라고 말했다. 10월22일 YTN 라디오에서 조현삼 전 민주당 특위 부위원장은 “김혜경 여사에 대해서는 10만 원짜리 법카 사건으로 인해 120차례가 넘는 압수수색을 당했다라고 하는데”라고 말했다. 11월18일 MBC 라디오에서 C 전 오마이뉴스 기자는 “어떤 사람에 대해서는 10만4천 원에 대해서 압수수색을 백몇번 하고”라고 말했다. 사례가 끝도 없을 것 같다.

이렇게 보도를 쏟아내니 사람들이 안 믿기 힘들 것이다.멀쩡한 수사를 탄압으로 왜곡하는 정치적 목적은 이루어낼 수도 있겠지만,그러려고 언론인이 된 건지 묻지 않을 수 없다.

한국기자협회와 인터넷신문협회의 언론윤리헌장 제1항이‘진실을 추구한다’이다. “진실 추구는 언론의 존재 이유다. 정확성은 신속성에 우선한다.모든 정보를 성실하게 검증하고 명확한 근거를 바탕으로 보도한다”라고 선언했다.

그러나 선언만 하면 뭐하나. 지키지 않는 헌장은 두루마리 화장지만큼의 가치도 없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