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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찬 회의론자
자밀 자키 지음, 정지호 옮김
푸른숲
불신의 시대다. 갤럽조사에 따르면 1970년대와 2022년 사이 미국인의 대통령제에 대한 신뢰는 52%에서 23%로, 의회는 42%에서 7%로, 신문은 39%에서 18%로, 공립학교는 58%에서 28%로 각각 떨어졌다. 남의 일만은 아닐 것이다. 미국뿐 아니라 2022년 ‘에델만 신용척도조사’에 따르면 조사대상 28개국 중 24개국 국민의 대부분이 타인을 불신하는 성향을 보였다.
미국 스탠퍼드대 심리학 교수인 저자는 타인과 소통한다는 소셜미디어에서 외려 격분ㆍ거짓말ㆍ자기 자랑이 판친다고 개탄한다. 사회적으로 분열ㆍ불평등ㆍ우울감이 만연하면서 사람들 사이에서 선(善)을 찾기가 더욱 힘들어지고 있다.
세상이 왜 이러는 걸까. 이 도도한 흐름을 막을 방법은 무엇일까. 저자는 다양한 연구결과를 바탕으로 불신을 만드는 냉소주의에서 원인을 찾는다. 냉소주의는 인간관계와 공동체, 사회와 경제와 사회까지 갉아먹는 '어두운 정신의 덫'이라고 경고한다. 타인과 제도의 신뢰가 떨어지면 집단적 냉소주의가 기승을 부리는 수준을 넘어 숫제 사회를 주도하려 든다. 냉소주의는 이제 하나의 문화현상이나 시대정신이라는 ‘할루시네이션(환각)’을 줄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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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해는 공동체 구성원인 국민이 고스란히 떠안게 마련이다. 냉소론자는 심지어 일반인에 비해 우울증과 음주의 빈도와 정도가 더 높고 소득수준이 떨어지는 건 물론 일찍 죽는다. 저자는 냉소주의가 남을 비꼬고 경멸하는 일부 인류 혐오주의자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수많은 사람 사이에서 다양한 형태로 존재한다고 설명한다. 인간에 대한 믿음을 상실하거나 문제를 해결하고 희망을 이루려고 적극적으로 행동하지 않는 모든 방관적 태도가 냉소주의의 범주에 들어간다는 지적이다.
미국인은 당파적 적개심으로 정치적 라이벌과 상대 진영을 혐오하면서도 ‘정치적으로 지나치게 분열된 사회를 우려한다’는 비율이 80%에 이른다. 사람들이 상대를 신뢰하지 않는다고 걱정하는 사람의 비율도 79%다. 저자는 바로 이 현실정치와 대중의 모순의 틈새에서 오히려 희망의 실마리를 찾는다. 냉소주의에 대항해 희망을 실천에 옮기는 구체적인 방법론은 ‘회의주의’에 있다고 본다. 냉소주의는 신뢰 결핍을 바탕으로 인간이 끔찍하다고 상상한다. 하지만 회의주의는 이러한 추정을 회의적인 눈으로 바라보면서 이를 반박할 신뢰 사례와 정보를 수집하고 축적한다.
이러한 고찰을 바탕으로 냉소주의의 물길을 막고 희망의 둑을 세우는 원칙을 제시한다. 바로 인간의 탐욕ㆍ증오ㆍ부정에 지나치게 몰두하는 대신 타인이 얼마나 관대하고 믿을 만하며 마음이 열려있는지를 자각하는 집중하자는 제안이다. 긍정적 태도와 선의 실천으로 사회적 선을 구축할 수 있다는 ‘밝은 눈’의 믿음이다. 그래야만 냉소주의에서 빠져나올 수 있다는 거다. 저자는 이를 실천하면서 희망을 만드는 전 세계의 수많은 기업과 기관, 개인을 소개한다. 희망은 낙관적 기대가 아니라 실용적인 대응이라고 역설한다. 원제 ‘Hope for Cynics’
채인택 서평 저널리스트 tzschaeit@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