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칼럼] 그건 교양이 아니에요

2025-02-20

예전 어른들이 종종 “그 사람은 교양머리가 없어!”라는 말을 하던 게 떠오른다. 염치가 없고 무례한 행동을 일삼는 사람을 힐난하는 말이었다. 그건 행동거지가 제멋대로인 막돼먹은 사람, 인품이 조악하고 몹쓸 사람이라는 낙인이다. 그런 이들과는 인연을 끊는 게 마땅하다는 선언이자 공동체의 일원으로 받아들일 수 없는 자격 미달의 인간이라는 암묵적 합의일 테다. 그러니까 ‘교양머리가 없다’는 말은 사람의 품성과 인격에 대한 무섭고 신랄한 평가였던 셈이다. 언제부터인가 사람 됨됨이를 자는 척도로서의 교양이란 말을 더는 쓰지 않게 되었다. 왜 이런 사태가 벌어졌을까? 그건 교양이 현실에서 더는 유용하지 못한 상태로 죽어버린 탓이다.

교양은 원시 채집시대 인류가 아니라 현대를 사는 인간들이 창안해낸 산물이다. 교양은 말과 태도의 우아함이고, 태도의 실행 속에서 드러나는 기품이자 기억과 지식의 축적 속에서 일어난 놀라운 혁신의 결과물이다. 그건 질서와 내면 도덕의 발현이며 고차원의 사회생활의 기술이자 인간을 더 인간답게 만드는 덕목이다. 교양이란 고등 생명체로 진화에 성공한 인간 무리가 합의한 우아한 행동양식이다. 항상 현재 안에서 작동하는 우아함이란 점에서 교양은 정태(靜態)가 아니라 현재진행형이다.

교양의 반대는 무교양이다. 따라서 교양머리가 없다는 것은 인격의 막돼먹음이고 파렴치한 행실을 일삼는 것을 뜻한다. 무교양 사회는 미개하고 탈법과 무법이 판을 치는 후진 사회이다. 혼돈과 무질서가 지배하는 사회, 더 나아질 가망이 없는 사회, 도덕과 상식이 퇴행하는 사회가 무교양 사회다. 교양은 지식의 유무나 학력의 많고 적음에 좌우되지 않는다. 사실을 말하자면 그것은 공정과 상식이 통하는 사회이고, 예의와 교양을 실행하는 사람들이 어울려 사는 사회다.

다시 한 번 강조하자면 교양이란 우리가 알아야 할 모든 지식이고 배우고 몸에 익힌 태도이다. 또한 도덕적 일탈을 막는 내면 기율이고, 제 행동을 통제하는 권력이다. 교양은 처세의 기술도 아니요, 도덕적 의무도 아니지만 그것은 언어능력이고 다양성을 포용하는 수단이다. 교양이 양심에 잇댄 의식, 도덕과 품성, 타인을 포용하는 능력, 기분 좋은 매너를 아우를 때 비록 그것이 현실에서 써먹을 데가 마땅치는 않더라도 우리 사회를 더 좋은 방향으로 이끌어나갈 동력이라고 할 수 있을 테다.

교양사회에서는 국가의 통제 권력이 마비된 무정부 상태도, 군중이 폭도로 변해 난동을 일으키는 사태도 없을 테다. 교양은 무례하지 않고, 사회 규범을 존중하며, 성실한 이들의 가치관을 존중한다. 교양은 한쪽 이념으로 치우치거나 확증 편향에 빠지지 않으며 폭력을 수단으로 무언가를 도모하지 않는다. 교양은 사회의 혼돈과 무질서에 부화뇌동하지 않으며 타인의 생명과 재산을 파괴하는 불법 사태를 용납하거나 동조하지 않기 때문이다. 미숙한 인격을 가진 사람들이 큰소리치며 활개를 치는 사회는 좋은 사회가 아니다. 무법과 혼돈이 뒤섞인 사회, 탈법적 폭력으로 무언가를 도모하는 사회가 교양사회일 수는 없다.

막말, 난동, 폭력, 탈법, 갑질, 거짓, 허언… 그런 것들은 교양과는 아무 상관이 없는 막장 현실의 징후들이고 막돼먹은 사회가 최후에 드러내는 아노미 현상이다. 그 반대가 예의바른 태도, 겸손, 타자에 대한 관용, 갈등을 풀어가는 방식의 의젓함을 갖춘 이들이 협업하며 만드는 교양사회다. 교양이 문화, 웰빙, 덕성을 집약한 것이라면 그것은 삶을 경이로 바꾸는 기품이고 기쁨일 테다. 그것은 궁극적인 의미에서, 그리고 가장 좋은 것으로서의 삶 그 자체다.

교양을 가진 어른들과 함께 살던 시절이 그립다. 어른들은 점잖고 웃음과 유머가 있었으며 태도에는 기품이 있었다. 존경을 받을 만한 어른들 앞에 서면 절로 고개가 숙여졌던 것이다. 우리 사회 구성원들이 품격 있는 말과 행동으로 움직이며, 더 나아가 우리 사회가 이성과 상식이 통하는 교양사회로 나아가기를 기대하고 갈망한다. 장석주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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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양

기고 gigo@jja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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