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택지 많은 사람처럼

2025-02-20

2023년, 기후위기를 지나치게 비관하던 벨기에의 한 30대 연구원이 인공지능 챗봇과 6주간 대화를 나누며 기후 변화에 대한 극단적 신념에 몰두하다 자살에 이른 일이 있었습니다. 윤리적 장치가 되어있지 않은 지극히 감정적인 챗봇과의 논의 끝에 지구를 위해 자기 존재를 없애는 것이 맞다는 생각으로 자살을 결심했고 부인과 두 아이를 남겨둔 채였습니다.

불운한 일들로 자기 자신에 대한 부정적인 생각들이 재난처럼 밀어닥치면 뇌는 생각하는 힘을 잃습니다. 초조감과 압박감으로 합리적이고 논리적인 추론이 어려워집니다. 특히 오랜 정서적 학대와 폭력적인 환경은 내 세계에 대한 선택권이 나에게 있다는 사실을 눈치채지 못하도록 합니다. 그렇게 우리는 무력해지고 답은 이미 (부정적인 쪽으로) 정해져 있는 듯 보입니다.

기후위기 비관 연구원의 자살

선택지 없어 통제 못 할 때 비관

플랜 B 만들고 거리 유지해야

이 과정에서 적지 않은 경우 ‘다른 사람들을 위해’ 자살을 결심하기도 합니다. 그러니까 자살이라는 것은 누군가의 눈에는 자기만 편해지려는 이기적인 결정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실은 자기만의 논리에 갇힌 이타적인 결정일 때도 많습니다. 자신이 만든 세상에서는 아마 그게 진실일 것입니다. 벨기에 연구원의 죽음처럼요.

그러나 한발 떨어져 보면 알게 될 것입니다. 도대체 그 결심은 하나부터 열까지 맞지 않습니다. ‘민폐를 끼치는 경우 그 존재는 이 세상에 없는 것이 낫다’는 생각은 ‘이 수도꼭지에서 물이 새는데요? 아, 그렇다면 이 집을 버리도록 하겠습니다’ 혹은 ‘이 디저트는 생각보다 맛이 없네요. 아, 그렇다면 저희 식당은 폐업하도록 하겠습니다’ 정도의 전개입니다. 감정적이며 지극히 틀린 결심, 비논리적이고 폭력적인 전개입니다. 내 삶에 통제감이 없다고 믿을 때, 사람들은 문제 상황에 압도되고 노력하기를 포기합니다.

후일 ‘지각된 통제감 연구’라 이름 붙여진 1969년 발표된 한 유명한 심리학 연구가 있습니다. 연구자들은 참여자들이 퍼즐을 푸는 동안 혐오감을 줄 정도로 큰 소음을 들려주었습니다. 한 집단에는 언제든 이 소음을 멈출 수 있는 버튼을 쥐여 주었고, 다른 집단은 그런 장치 없이 문제를 풀도록 했습니다. 그 결과 멈춤 버튼을 가진 집단은 퍼즐 풀이를 5배가량 더 시도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수행 점수도 좋았습니다. 반면 선택지가 없던 참여자들은 쉽게 수행을 포기했습니다.

가장 흥미로운 지점은 이것입니다. 정작 멈춤 버튼을 가진 참여자 중 그 누구도 버튼을 누르지 않았습니다. 단지 내게 상황에 대한 선택지가 있다고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그 지각된 통제감만으로도 혐오적이고 불쾌한 상황을 성공적으로 버텨내는 힘이 늘어났습니다. 그래서 저는 학생들과 내담자들에게도 늘 ‘플랜 B’부터 ‘플랜 Z’까지 만들어두라고 합니다. “그거 안되면 다른 거 하면 되죠. 뭐” “하는 데까지 했는데도 안되면 그때 좀 쉬어 가면 되죠” 그렇게요.

마음 약해질까 봐 플랜 B 없이 배수진을 치는 분들도 있겠지만, 그때는 저 실험을 다시 떠올려주세요. 어차피 수많은 멈춤 버튼들이 쥐어진다 해도 우리는 그 버튼들을 가장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누르지 않을 것입니다. 다만 여러 재미난 선택지를 구비해두면 배짱이 생기고 상황을 또렷하게 바라볼 수 있습니다. 내게 도움이 되지 않는 가혹하고 폭력적인 환경에서 ‘알았는데, 내가 알아서 할게. 그리고 나는 너나 이거 아니고도 또 선택지가 있거든’하고 거리 조절을 할 수 있습니다. 내가 실제로 할 수 있는 일에 더 집중하고 몰입하게 됩니다. (물론 정말 진심으로 그 일을, 그 사람을 사랑한다는 것도 알고 있습니다. 그러니 내가 할 수 있는 한 최선은 다하면서, 건강한 거리에서 오래도록 건강하고 애틋한 관계를 유지할 필요가 있는 것이지요.)

물론 상상 속의 선택지들을 곱씹으며 지금 상황을 계속해서 버티기만 하시라는 것은 아닙니다. 때로는 내가 공을 들인 그 대상과 연이 다하여 지금까지와 다른 길로 들어서야 할 때가 옵니다. 그때에는 그동안 머릿속에 축적된 재미난 계획들이 나를 이끌게 두세요. 내 앞에서 문이 닫힌 이유가 있을 것입니다. 내가 그간 쌓아둔 공덕이 있어 그 문이 닫힌 것이라 생각해주세요. 나를 도우려는 힘이 내 어깨를 옆으로 부드럽게 밀어 나를 다른 방향으로 보내려는 중입니다. 그러니 마지 못한다는 듯 구비된 선택지들을 흔들어 보이며 새로운 길로 들어서세요.

혹시 지금 자신에게 어떤 선택지도 없어 보이고 다른 사람을 위해 내가 없어지는 것이 낫다는 생각으로 스스로 막다른 곳으로 몰아붙이고 있다면, 어느새 ‘비윤리적이고 감정적인 챗봇’처럼 생각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거리를 두고 바라보세요. 마음으로는 온갖 선택지를 구비해두고는 짐짓 허세도 부리고 배짱도 좀 부리세요. 그리고, 지지 말아요. 그 어떤 폭력에도.

허지원 고려대 심리학부 교수

Menu

Kollo 를 통해 내 지역 속보, 범죄 뉴스, 비즈니스 뉴스, 스포츠 업데이트 및 한국 헤드라인을 휴대폰으로 직접 확인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