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영국인은 스스로를 ‘동물애호가’로 즐겨 정의한다. 그런 그들이 2차 세계대전 당시 수십만 마리의 개와 고양이를 안락사했다. 그것도 자발적으로. 영국인들은 왜 그런 끔찍한 일을 저질렀을까? 대체 무슨 일이 있었기에?
‘전쟁과 개 고양이 대학살’은 2차 대전 당시 영국에서 벌어진 ‘동물 대학살’을 추적한다. 영국 역사학자 힐다 킨은 당시의 기록과 증언을 통해 전쟁이 인간과 동물에게 어떤 영향을 미쳤고, 이들의 관계에 어떤 변화를 가져왔는지 꼼꼼히 되짚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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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과 개 고양이 대학살
: 인간의 전쟁에서 지워진 동물 학살의 역사, 재구성하다
힐다 킨 지음 오윤성 옮김, 책공장더불어
332쪽, 2만 원
2차 대전은 영국의 국가적 기억과 국민 문화에 큰 비중을 차지한다. 2차 대전 발발 과정, 34만 병력을 철수시킨 됭케르크 작전, 윈스턴 처칠의 역할 등은 다큐멘터리의 단골 주제다. 그 배경에는 2차 대전이 대체로 ‘훌륭한’ 전쟁이었다는 관념이 자리한다. 영국인이 하나로 뭉쳐 독일 나치에 단호하게 맞섰으며, 강한 회복력으로 공습을 견뎌냈다는 것. 그러나 이 ‘인간들의 전쟁’ 뒤에는 동물 학살이라는 부끄러운 역사가 숨겨져 있다.
독일이 폴란드를 침공한 지 이틀 뒤, 1939년 9월 3일 영국은 독일에 선전포고하고 참전한다. 그로부터 단 4일 만에 최소 40만 마리, 일주일 만에 75만 마리의 개와 고양이가 안락사됐다. 이는 당시 런던에 살던 개 고양이의 26퍼센트에 해당한다.
동물복지단체와 보호소에는 자기 애완동물을 죽여달라고 온 사람들의 줄이 길게 늘어섰다. 도살된 동물의 숫자는 평소 런던의 동물보호단체들이 한 해에 안락사하던 애완동물 수의 세 배가 넘었다. 당시에 이미 ‘애완동물 홀로코스트’로 불렸을 정도다. 더구나 그들을 죽인 것은 ‘적’ 독일이 아니라 그들의 주인이었다.
전쟁을 앞두고 영국인들이 공포와 공황에 빠져 저지른 비정상적 행동일까. 그러나 이런 추정은 그들이 굳건한 정신으로 2차 대전을 이겨냈다는 기존의 ‘신화’와 정면으로 부딪힌다. 특히 역사학계에서는 당시 전쟁 중 영국에서 신경증이나 정신병이 조금이라도 눈에 띄게 증가했다는 증거가 전혀 없었다는 것이 정설이다.
아이러니하게도 대학살이 벌어진 전쟁 첫 주는 물론이고 그 후 1940년 3월까지 런던 및 영국 전역에는 폭탄이 단 한 개도 떨어지지 않았다. 결국 ‘인간’의 위기로 규정되는 시기에 반려동물이 얼마나 손쉽게 처분당할 수 있었는지를 보여주는 사례라고 할 수 있다.
물론 대다수의 반려인들은 자기 동물을 아꼈다. 이들은 물자가 부족해 음식을 배급받으면서도 자기 음식을 동물에게 양보했다.
작가 진 루시 프랫이 기록하기를 “우리는 성인 한 사람당 하루 280밀리리터의 우유를 배급받았다. 나 한 사람이야 이걸로 충분하지만 나와 고양이 세 마리가 함께 마시려면 우유에 물을 섞어야 하고, 밀크 푸딩도 만들 수 없다.” 그래서 우유를 마시지 않게 된 것은 고양이들이 아니라 프랫이었다. -본문 158쪽
폭탄이 떨어지고 사람들이 피난한 지역에서는 남은 사람들이 남은 동물들을 먹이고 돌봤다. 어떤 노인은 떠돌이 고양이들을 집에 들여서 먹였고, 가난한 사람들도 자기가 먹을 것을 고양이나 개에게 양보했다.
방공호로 대피할 때는 동물도 함께 데려갔다. 어떤 여성은 공습이 시작됐으나 방공호에서 강아지를 들여보내주지 않자 “우리 개가 죽으면 나도 같이 죽을 거야!”라고 소리 질렀다. 결국 여성은 강아지와 함께 방공호에 들어갔다. 실제로 당시 방공호를 관리하던 많은 소방서장과 공습 감독이 동물을 데려오는 것을 눈감아주었다.
감각이 예민한 개 고양이들은 공습의 징후를 미리 알아채고 사람들을 방공호로 이끌기도 했다. 한 런던 시민은 이렇게 회상했다. “개가 귀를 쫑긋 세우거나 어디론가 달려가곤 했는데 그 뒤를 따라가면 그곳에 대피소가 있었다.” 생사를 넘나드는 전쟁 속에서 인간과 동물은 ‘전우’이자 진정한 ‘동반자’가 되었다.
식량 대책을 논의하던 정부 관료들조차 “개 문제를 건드려서는 안 된다”며 애완동물에게 인간 음식 먹이는 것을 엄격히 제한하지 않았다. 동물들이 전시에 인간의 사기를 유지해주며, 둘의 관계가 더 긴밀해지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영국 정부가 이런 결정을 한 데에는 정치적인 이유도 있었다. 독일인과 달리 영국인은 동물을 사랑하는 민족이라는 개념을 선전하려던 것이다. 계급 사회였던 전시 영국에서 동물에 대한 애정만큼은 모든 계급을 초월했다. 영국 정부는 나치가 승리하면 동물들이 위험해지고, 그때는 인간과 동물 모두가 굶어죽을 것이라며 반려인들에게 국가의 전쟁 활동에 계속 협조할 것을 당부했다.
동물 애호가를 자처한다는 사실에서 알 수 있듯 영국은 동물 문화와 인식이 상당히 앞선 나라다. 이미 1930년대에 개를 집 안에서 키우자는 캠페인이 벌어졌고, 동물 등록이 시행되었다. 동물단체가 여럿 활동하며, 전쟁을 대비해 ‘전국공습대비동물위원회’가 창설됐을 정도다. 그런 나라에서 동물 대학살이 벌어졌으니 아무리 전시라 해도 영국인 스스로 자존심에 상처를 입힌 사건임에 틀림없다.
‘전쟁과 개 고양이 대학살’은 전쟁의 역사를 동물의 서사로 풀어간다. 무겁고 진지한 주제이지만, 생생한 증언과 기록 덕분에 흥미진진하게 읽을 수 있다. 역사, 특히 2차 세계대전과 영국 대공습 시기에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새로운 눈으로 역사를 보게 될 것이다.
한국의 반려인에게는 이 책이 더더욱 의미 있다. 휴전국인 한국에서 전쟁이나 대형 재난이 일어난다면 내 반려동물을 어떻게 구해야 할지 깊이 고민하게 해준다. 무엇보다 동물이 살기 어려운 곳에서는 인간 역시 살 수 없다는 진실을 다시 한번 되새기게 된다.
김남희 기자
namhee@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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