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의 내일을 밝히는 축제, 양림골목비엔날레

2024-11-20

꽃과 단풍, 역사적 사건이나 인물, 그리고 특산품에 이르기까지 각 지역에서 내세울 수 있는 것이 총동원되는 축제의 계절이다. 나들이하기 좋은 이 황금철을 놓칠세라 지역 간은 물론 지역 내에서도 축제 경쟁이 치열하다는 이야기가 들려오는데, 그 나물에 그 밥처럼 느껴질 때가 적지 않다.

올가을은 내심 기대했던 축제가 열린 광주 양림동에서 맞았다. 사실 광주와 축제가 썩 어울리는 조합은 아니다. 1980년 5월이 중력으로 작동하는 듯한 광주는 가뿐히 걸음하기가 쉽지 않은 지역이다. 주저하며 거리를 두던 내가 광주에 다가갈 수 있었던 것은 축제 이전에 양림동 덕분이다. 양림동의 근대는 일제의 영향력 아래 근대도시로 변모하는 과정이 묻어나는 그것과 다른 양상을 보인대서 관심이 갔다.

개항기 선교사 근거지 광주 양림동

근대 건축물에 그 시절 자취 남아

기획자·예술가들 ‘동네 되살리기’

손님을 ‘여행주민’ 부르며 환대도

개항지를 통해 유입된 기독교 선교사 가운데 일부가 유림의 영향이 컸던 전라도 수부 전주와 나주에서 활동이 여의치 않자 광주를 눈여겨보았고, 광주천변 양림산 기슭에 근거지를 마련했다. 광주읍성에서 멀지 않지만 풍장터가 있어 터부시된 자리다. 의료와 교육에 방점을 찍은 선교 활동은 학교와 병원, 교회로 발현됐고, ‘광주 구 수피아여학교 수피아홀’(1911년), ‘오웬기념각’(1914년), ‘우일선 선교사 사택’(1920년대) 등 근대 건축물들이 한 세기가 지난 지금까지 양림동에 남아 계몽적 근대가 움틀 수 있었던 그때를 그려보게 한다.

양림동에서 촉발된 근대성은 광주의 시민성과도 별개일 수 없다. 5·18 시민군으로 활동한 임영희씨는 <양림동 소녀>(오월의봄)에 ‘양림동은 사상의 기반이었고, 유신에 저항하는 해방자의 길’이었다고 썼다.

도시가 확장되고 상권이 재편되며 광주의 문화적 배후지로 기능했던 양림동은 쇠락해 갔고, 재개발 대상지가 됐다. 그러자 주민들 사이에서 먼저 양림동을 되살리려는 움직임이 일었다. 양림동에 향수가 있는 기획자와 예술가들도 다시금 양림동에 모여들어 한희원미술관, 이강하미술관, 이이남스튜디오, 호랑가시나무 아트폴리곤 등 다수의 문화예술공간들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양림동에 문을 열었다. 시대와 세대를 잇는 양림동 고유의 지역성으로 ‘양림다움’에 대한 논의를 더해가는 가운데 민간기업 쥬스컴퍼니가 만든 복합문화공간 ‘10년후그라운드’는 양림동의 앵커 시설로 역할하며 대화와 협업을 북돋웠다.

마을의 기획자와 예술가, 주민과 상인이 어우러진 양림동 네트워크는 코로나19 시기에 빛을 발했다. 각자의 역량으로 마을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무언지 자문했고, 풍부한 문화예술 자원을 재료로 잔치를 열어보자며 나섰다. 그 결과물이 마을 전체가 지붕 없는 미술관이 되는 골목 미술축제 ‘양림골목비엔날레’다.

공공의 예산 지원 없이 마을 사람들이 힘을 모아 미술관과 작업실은 물론 빈집과 빈 점포를 전시장으로 단장해 작품을 걸었다. 아트마켓, 오픈 스튜디오, 도슨트 투어 등의 프로그램은 골목 구석구석으로 사람들을 이끌었다. 자연스레 양림동은 광주에 동시대의 예술을 펼쳐놓지만 광주의 지역성을 체화하느냐의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한 광주비엔날레의 빈틈을 메우고, 지역 예술가들이 데뷔하는 장이 됐다. 이를 포착한 2024년 광주비엔날레 니콜라 부리오 감독이 올해 양림동을 광주비엔날레의 야외 전시 무대로 삼았다.

게스트하우스로 꾸민 양림동 옛 선교사 사택에 머물며 제대로 시너지를 낸 두 비엔날레를 즐겼다. 인상적인 쪽은 확실히 양림골목비엔날레였다. 왜일까? 골목에서 만난 양림동 사람들의 목소리에서 답을 얻는다.

“우리도 뭐가 뭔지 모른 채 하고 있기도 해요. 사람 사는 동네에서 벌이는 일이니 말도 많고 탈도 많죠. 그러나 하나의 과정이라고 생각합니다. 양림동에 있는 여러 유산을 토대로 이 시대 유산을 함께 만들어 나가는 거예요. 그 자체로 지금 살아 있음을, 또 이 마을에서 산다는 데 자부심을 느낍니다.”

마을에 활력을 불어넣는 양림동 사람들은 한술 더 떠 축제 방문객을 ‘여행주민’이라 칭하며 환대했으니, 이 글은 양림동 여행주민으로 정체성을 부여받은 이의 역할 분담이다. 축제에서 나아가 지역을 활성화하는 방법은 여럿일 테지만 양림동의 접근 방식을 유의미하게 보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지역의 내일을 밝히는 데 필요한 것은 요란한 겉치레가 아니라 연대와 환대의 서사이고, 이는 결국 사람의 몫임을 확인케 된다.

<서진영 <로컬 씨, 어디에 사세요?>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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