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총성이 멈추지 않는 전쟁터에서도 축구가 국민들을 하나로 묶고 있다. 수십만 명이 목숨을 잃고 1300만 명 이상이 삶의 터전을 잃은 아프리카 수단에서 축구대표팀은 국민에게 희망의 불씨를 지피고 있다.
2026 국제축구연맹(FIFA) 북중미 월드컵 아프리카 지역예선에서 수단은 조 3위에 올라 있다. 콩고민주공화국(5승1무1패·승점 16), 세네갈(4승3무·승점 15)에 이어 3승3무1패(승점 12)다. CNN은 8일 “불과 3년 전 카타르 월드컵 예선에서는 단 한 경기 승리조차 없었던 팀이기에 지금 선전이 더욱 눈길을 끈다”며 내전 중인 수단의 사상 첫 월드컵 본선행 도전 상황을 전했다.
2023년 4월 시작된 내전은 수도 하르툼을 비롯한 주요 도시를 폐허로 만들었다. 병원은 마비됐고 시신조차 수습되지 못한 채 거리에 방치됐다. 국제사회는 “세계 최대 인도주의 재앙”이라 부르며 긴급 경고를 내렸다. 이 와중에 수단 내 프로리그는 전면 중단됐지만, 대표팀의 중심을 이루는 알힐랄과 알메리크 두 구단은 모리타니 리그에 참가하며 경기 감각을 유지했다. 대표팀 소속 선수 10명 중 7명이 이 두 클럽 출신이다. 수단축구협회 마진 아부신 개발국장은 “대표팀은 분열된 사회를 하나로 묶는 유일한 상징”이라며 “정치적 입장과 종파를 초월해 경기만큼은 모두가 함께 응원한다”고 말했다.
치안 문제로 인해 수단 대표팀은 자국에서 단 한 경기도 치르지 못했다. 대신 리비아 벵가지에서 ‘홈경기’를 이어가고 있다. 내전으로 리비아에 정착한 수십만 명의 수단 난민들은 경기마다 경기장을 메우며 뜨거운 응원전을 펼친다. 지난 남수단과의 맞대결에서는 상대 선수들까지 수단 국가를 함께 부르는 장면이 연출돼 전 세계에 깊은 울림을 남겼다. 아프리카 축구 전문기자 알래스터 하워스는 “수단은 단순한 약팀의 기적이 아니다. 세네갈처럼 아프리카를 대표하는 강호들을 상대로 성적을 내고 있다”며 “이들이 월드컵에 간다면 예선 역사상 가장 위대한 성취가 될 것”이라고 평가했다.
대표팀의 급격한 성장에는 런던 출신 이사 형제 등 디아스포라 선수들의 합류도 결정적이었다. 이들과 베테랑 공격수 모하메드 압델라흐만이 팀의 골망을 흔들며 무패 행진을 이끌고 있다. 선수단은 현재 사우디아라비아에서 훈련캠프를 차렸고, 전쟁 속에서는 누리기 어려운 최적의 훈련 환경을 제공받고 있다. 아부신 국장은 “수단 대표팀이 월드컵 본선에 진출한다면, 이는 단순한 스포츠 성취를 넘어 나라를 다시 일으킬 상징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제 수단 앞에는 단 3경기만이 남았다. 최종적으로 1위는 월드컵 본선에 진출하며 2위는 와일드카드로 본선행에 다시 한번 도전할 수 있다. 본선행에 성공한다면 이는 단순한 축구의 성취가 아닌, 전쟁과 기근, 난민 위기 속에서도 포기하지 않은 국민에게 ‘재건의 신호탄’이 될 것이다. 남은 경기는 토고, 모리타니, 콩고민주공화국전이다. 토고와 모리타니는 이미 월드컵 본선행이 무산됐다. CNN은 “수단은 지금까지 전쟁으로 너무 많은 고통을 겪어왔고 월드컵 본선 진출은 그 고통을 지우지는 못하겠지만, 새로운 출발의 길은 열어줄 수 있다”며 “축구는 오늘도 전쟁으로 고통받는 국민에게 내일을 약속하는 희망이 되고 있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