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란 1년, 쿠팡 사태까지 스며든 ‘혐오의 상흔’

2025-12-01

# 11월 27일 서울 지하철 ○○○역 플랫폼

“중국이 개입해서 부정선거 했잖아. 나라 꼴이 엉망이야 엉망!” 60대로 보이는 남성이 고래고래 고함을 지른다. 혼잣말이 아니다. 플랫폼을 오가는 시민들에게 눈을 부라리며 동의를 압박한다. 시민들은 혹여라도 부딪칠세라 서둘러 발길을 옮긴다. 그의 말을 들어보려고 멈춰섰던 나도 시선이 마주칠까 두려움을 느낀다.

# 11월 30일 주요 인터넷 포털사이트

“쿠팡 고객정보, 중국인 (전) 직원이 유출한 듯”. 비슷한 속보가 줄줄이 뜬다. 쿠팡에서 3370만명 고객정보가 유출된 사실이 대대적으로 보도된 날이다. 참여연대는 “이러한(중국인이 유출했다는) 의혹 제기가 쿠팡 측 책임을 축소하기 위한 시도가 아닐지 의심된다”고 논평했다. 혐중 정서에 기댄 ‘물타기’ 가능성을 지적한 것이다. 유출자가 중국인이든 미국인이든 한국인이든 쿠팡 책임은 줄어들지 않는다. 직원의 일탈도 법인이 책임져야 한다. 더욱이 쿠팡은 외국인 임직원이 1000명을 넘었다고 자랑해온 터다. 박대준 대표는 ‘유출자가 중국인이냐’는 질문에 “수사 영역”이라고만 했다.

12·3 내란 이후 1년이 흘렀다. 시민은 윤석열의 위헌적 쿠데타를 용납하지 않았다. 총부리에 맨몸으로 맞서 비상계엄 해제를 이끌어냈다. 한파 속 여의도에 모여 윤석열을 권좌에서 쫓아냈다. 폭설 속 한남동에서 밤새워 윤석열·김건희 부부를 감옥으로 보냈다. 모든 과정이 평화·질서·연대의 모범이었다.

기적같은 K-민주주의 뒤편에는 내란의 상흔이 드리워져 있다. 가장 깊고 짙은 흉터는 ‘혐오의 확산’이라 본다. 며칠 전 서울 도심의 한 지하철역에서 목격한 장면은 충격적이었다. 지난해 12월 3일 이전, 이런 유의 주장은 ‘태극기 집회’ 혹은 극우 유튜브에서나 접할 수 있었다.

내란 이후 달라졌다. 혐오 선동이 일상으로 파고들었다. 계엄 명분으로 부정선거론을 내세우는 윤석열, 그와 절연하지 못하는 제1야당 국민의힘이 기름을 붓고 불을 붙였다.

특정 국적만 타깃인 것도 아니다. 장애인·여성·성소수자·노인·노동자 등 혐오 표적이 전방위적으로 확대되고 있다. 최근 박민영 국민의힘 미디어대변인은 자당 김예지 의원을 향해 “장애인을 너무 많이 할당해서 문제” “눈 불편한 것 말고는 기득권” 등 혐오 발언을 쏟아냈다. 송언석 원내대표는 그럼에도 “자그마한 일”이라며 감쌌다.

더욱 심각한 것은 혐오·차별에 이의를 제기하며 인권·평등을 말하는 이들이 사이버 불링(온라인 괴롭힘)을 당하고 고립되어 간다는 데 있다. 이렇게 가다가는, 만인의 만인에 대한 혐오가 슬픈 ‘뉴 노멀’이 될 수도 있다. 그런 공동체는 존립 불가능하다.

쿠팡 개인정보 유출 사건에서 ‘중국인’이 키워드로 부상한 것도 놀랄 일이 아닐지 모른다. 쿠팡은 노동자 사망이 잇따르면서 홍보·대관(對官) 분야에 많은 인력·자원을 투입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중국인 관련 의혹 제기가 회사 측의 ‘언론플레이’인지 경찰에서 새어나온 것인지는 차차 드러날 터다.

출처가 어느 쪽이든 쿠팡에 불리할 건 없어 보인다. 소셜미디어에선 쿠팡 옹호 행렬이 이어진다. ‘쿠팡 개인정보 유출, 신경쓰지 말고 그대로 쓰자. 중국 공작에도 테무X 알리X 중국기업 X’ ‘공산당, 민노총이 쿠팡 죽이고 알리, 테무 쓰라고 이 짓 한다던데’ 등의 게시물이 올라오고 있다.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달 11일 국무회의에서 “우리 사회 일부에서 인종, 출신, 국가 등을 두고 시대착오적 차별과 혐오가 횡행하고 있다”며 “더는 묵과해선 안 된다. 혐오 표현에 대한 처벌 장치를 속히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발언 취지에 공감하나, 처벌 장치 마련은 협소한 대응이다.

정부와 국회는 혐오 문제에 정면으로, 대담하게 맞서야 한다. 포괄적 차별금지법 제정을 더 이상 미뤄선 안 된다. 혐오와 차별은 동전의 양면과 같다. 두 가지는 윤석열의 내란 이후 “극우 정치의 연료가 되고 있다”(홍성수 숙명여대 교수). 처벌 강화만으로는 연료를 소진시킬 수 없다.

차별금지법 제정을 통해, 법으로 금지해야 할 혐오와 차별이 무엇인지 명확히 선을 그어야 한다. 법이 생겨난다고 한국 사회의 혐오·차별이 하루아침에 사라지진 않을 것이다. 그러나 한국 사회라는 공동체가 인권·평등이란 헌법적 가치를 향해 새로 출발하는 이정표로는 충분할 것이다.

쿠팡을 쓰지 않는다. 프리미어리그 중계 보려고 쿠팡플레이에 가입한 적은 있다. 이내 해지했다.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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