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3 불법계엄 1년…여성·소수자들은 그저 ‘응원군’이었나

2025-12-01

“탄핵 최대 공신 인정하면서도

정치 세력 갖는 건 원하지 않아”

시민의 실패 아닌 ‘정치의 실패’

지난해 12월4일 저녁, 사학과 대학생이던 A씨(24)는 코앞으로 다가온 마지막 기말고사 준비를 뒤로하고 여의도 국회 앞으로 뛰쳐나갔다. 윤석열 전 대통령이 불법계엄을 선포한 다음날이었다. 강의실에서 배웠던 한국 민주주의의 위기가 눈앞에 펼쳐지는 상황에서 가만히 있을 수만은 없었다. 헌법재판소가 탄핵을 인용한 이듬해 4월4일까지 그는 거의 매주 광장에서 자리를 지켰다. 그 겨울 광장에 있었다는 것은 자유발언대를 차지했던 ‘소수자’를 만나는 시간이기도 했다. 레즈비언이고, 여성이고, 장애인이고, 노동자라는 정체성을 밝히고 자기 이야기를 시작한 참가자가 매주 발언대에 올라온 사람의 절반을 넘었다.

그로부터 1년이 지났다. 윤 전 대통령은 탄핵됐고, 내란 우두머리 등의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다. 정권도 교체됐다. 하지만 당시 광장의 요구는 얼마큼이나 이뤄졌을까. 불법계엄을 규탄하고 윤석열 탄핵을 요구한 ‘응원봉 시위’는 이전까지 대규모 정치시위와는 분명한 차이점이 있었다. 2030 여성들이 광장의 주류를 차지했고, 소수자 정체성을 가진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단상에 올라 정체성을 드러내고 발언했다. ‘모든 혐오와 차별을 철폐하라’는 요구도 분명했다. 발언대에서는 탄핵 이외에도 다층적인 이슈가 다뤄졌다. 구조적 성차별 철폐와 노동기본권 쟁취, 차별금지법 제정, 장애인 이동권 보장, 가자 전쟁 반대, 산업재해와 사회적 참사 피해자 애도 등 다양한 의제가 등장했다.

A씨는 “‘윤석열 탄핵은 시작일 뿐이다’라는 발언자의 말을 들었던 것이 기억에 남는다”고 했다. “윤석열 하나를 끌어내린다고 우리 삶이 바뀔 거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고 했어요. 윤석열로 대표되는 혐오와 차별이 없어지기를 바란 것이죠.”

더욱 중요한 사실은 광장에 모인 사람 중 누구도 ‘왜 쓸데없는 말을 하느냐’고 배척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소수자들이 자신을 드러내고, 그 발언이 현장에서 ‘받아들여지는’ 경험은 특별했다.

비동의강간죄·차별금지법…정치는 듣지 않는다, 여전히

하지만 한걸음에 여의도로, 광화문으로 달려갔던 시민들은 당시 광장에 모였던 의제들이 정책으로 살아남지는 못했다고 여긴다. 특히 당시 광장의 주역으로까지 불렸던 여성들의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는 데 대한 분노와 배신감을 토로한 시민이 많았다. 비동의강간죄나 차별금지법 등의 정책이 새 정부의 국정과제로 채택되지 않았고, 이재명 대통령이 ‘남성 역차별’을 들여다봐야 한다고 여러 차례 언급한 것 등을 보면서 실망했다는 것이다.

대학생 김수연씨(19)는 “언론에서는 ‘촛불소녀’가 많이 참여한 집회였다고 주목을 많이 했는데, 정작 대선 과정에서 여성폭력과 관련된 공약을 뒤로 빼거나 이번 정부 들어서도 적극적인 정책이 나오지 않는 것을 보면서 많이 실망했다”며 “이럴 거면 여성들이 집회에 많이 참여한다고 왜 그렇게 칭송한 것인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50대 여성 참가자 B씨는 “당시 추운 광장에 섰던 여성들의 목소리가 묻히지 않기를 바랐는데, 여전히 비동의강간죄나 차별금지법조차 국회에서 논의되지 못하고 있는 것이 아쉽다”고 했다. 30대 여성 C씨는 “지난해에는 응원봉과 ‘빛의 혁명’을 꼬박꼬박 언급했던 정치 세력이 성범죄 대응처럼 중립적으로 접근할 수 있는 (젠더) 이슈조차 너무 눈치를 보는 것 같다”고 말했다.

장애인이동권·산재·사회적 참사…

집회 현장서 다양한 의제 오갔지만

탄핵 이후 정책으로 연결되지 않아

이 대통령 ‘남성 역차별’ 언급 실망

참가자들 “분노·배신감까지 느껴”

해고 노동자들의 고공농성, 장애인 이동권 등 당시 광장에서 주목했던 의제들이 정권 교체 후 외면당하는 모습에 충격을 받았다는 시민도 있었다.

A씨는 최근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활동가들이 지하철 탑승 시위를 벌이다 폭력적으로 저지당하는 모습을 보면서 당시 광장에서 발언하던 ‘전장연 동지’들을 떠올렸다고 했다. A씨는 “윤석열은 탄핵되었지만 여전히 세상은 그들의 목소리를 듣지 않고 있는 것으로 보여서 매우 충격적이었다”고 말했다. 탄핵 이후 사회 갈등과 혐오가 더욱 심해졌다는 우려도 나왔다. 20대 여성 D씨는 “혐중 정서와 음모론이 무분별하게 퍼지고 있는 것이 걱정된다”고 말했다.

당시 참가자들은 광장에서 분출된 여성·소수자 시민들의 요구를 정치권이 진지하게 받아들이기보다는 ‘응원군’ 정도로 인식했다고 비판했다. 30대 여성 E씨는 “자칭 ‘진보세력’이 여성 정치세력화를 인식하는 방식은 과거 광우병 촛불시위 때 청소년 참가자들을 ‘10대 촛불소녀’로 명명하던 시절과 전혀 변하지 않았다”며 “전 정권을 탄핵시킨 최대 공신이 2030 여성이라는 것은 누구나 인정하면서도 이들이 그에 걸맞은 정치 권력을 갖길 기대하기보다는 단순 ‘응원군’으로만 인식하고 있다는 느낌이 강하다”고 말했다. 광주 지역에서 집회에 자주 참여했다는 사월(20·활동명)은 “시위에서 10대와 20대는 같은 시민이 아닌 ‘특별하고 기특한 존재’로 소비된다는 느낌을 받을 때가 많았다”고 말했다.

광장의 목소리가 정치 의제로 연결되지 않은 것은 ‘시민의 실패’라기보다는 ‘정치의 실패’에 가깝다고 참가자들은 말했다. A씨는 “시위에 나갔다가 집에 돌아와 ‘윤석열 탄핵 집회에 몇명이 나왔다’는 소식만 나오는 뉴스를 보면서 실망했다”며 “광장에 나온 소수자들의 요구를 공론장에서 진지하게 들어주지 않았고, 그러다 보니 파면 이후에도 전 국민의 관심사가 되지는 않은 것 같다”고 했다.

권김현영 여성현실연구소장은 “광장에서 나온 집단적 저항의 목소리를 정치가 받아들이지 않은 것은 ‘광장의 세계관’을 대표하는 목소리가 지금 정치에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라며 “윤석열로 인해 우리의 민주주의가 얼마나 취약한지 드러났고, 그 취약한 민주주의를 다시 세우는 것은 다양한 시민들의 목소리가 드러날 수 있는 공간이라는 점을 지난해 광장이 보여줬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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