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와중에 하는 삼성 이야기

2025-01-15

‘반도체 특별법 통과’ 주장 나오지만

주 52시간제 예외, 해법 될 수 없어

방사능 누출 사고는 축소에 급급

리더 잘못을 노동자에 전가 안 돼

이 와중에 하는 이야기다.

현직 대통령의 체포를 목도하는 시대에 우리는 돌고 돌아 ‘산업역군’을 만들어낸 그 시절처럼 ‘삼성전자’ 지원 법안을 눈앞에 두고 있다. 가정이지만 12·3 비상계엄이 아니었다면 미국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취임을 앞두고 이 법안이 벌써 국회를 통과했을지 모른다. 한국 반도체 수출을 흔들 미국의 관세정책 파고가 임박했기 때문이다. 지금의 정치일정이 숨고르기에 들어가고 나면 곧 국회에선 ‘반도체 특별법’을 통과시켜야 한다는 목소리가 쏟아질 테다. 모든 현안에서 삐거덕대는 여·야·정은 ‘반도체 특별법’ 앞에서 하나가 되기 직전이다. ‘주 52시간제 적용 예외’ 쟁점 하나만 빼고는.

삼성이 한국 경제에서 차지하는 위치는 익히 안다. 삼성전자 반도체의 수출 증감은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을 흔든다. 삼성전자가 만든 갤럭시 휴대전화 판매도 소비지표를 출렁인다. 삼성의 성과급 지급 여부는 근로소득 통계마저 흔든다. 반도체 산업 자체가 국가적 지원으로 성장하는 산업인 것도 맞다. 미국, 일본도 그랬다. 지금 잘나가는 TSMC도 대만 정부가 전폭 지원해 성장했다. 지금은 과거보다 무역 장벽이 높아지는 국가 간 경쟁 시대가 됐다. 반도체 산업에 국가 지원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부정하긴 힘들다. 그럼에도 물음표를 지울 수 없다. 삼성을 지원한다고 해서 삼성이 살아날까. 주 52시간제를 풀면 삼성이 살아날까.

MZ세대(1980~2010년생)의 중간쯤인 올해 31세 1994년생으로 이야기를 풀어가보자. 1994년은 한국이 1인당 국민소득(명목·2020년 기준년 개편 적용) 1만달러를 처음으로 넘은 해다. 1994년생이 11세가 된 2005년 한국은 1인당 국민소득 2만달러를 넘었고, 20세가 된 2014년 3만달러를 처음 넘었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태어난 1968년 한국의 1인당 국민소득은 179.71달러였다. 반도체 부문을 이끄는 전영현 부회장이 태어난 1960년엔 100달러도 채 되지 않은, 80.46달러였다.

1994년생은 ‘선진국’에 올라선 한국에서 컸고, 주 5일제가 안정적으로 정착된 시기에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저녁이 있는 삶’이라는 구호가 퍼지고 대체로 ‘주 52시간제’가 시작되고서 입사했다. 그들에게 주 5일과 주 52시간제는 ‘기본값’이다. 회사에서 먹고 자며 밤새 일하는 것이 삼성을 위하는 길이요, 그것이 곧 애국하는 길이라고 가르침을 받아온 세대와는 애초에 물적 환경이 다르다. 삼성의 기술 개발을 이끌 젊은 세대에게 “라떼는~”이라며 장시간 노동을 말하면 받아들일 수 있을까. 이건 수당의 문제가 아니다. 문화의 문제다.

반어법으로 생각하면 또렷해진다. 고대역폭메모리(HBM) 개발에서 철수하고,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에서 경쟁력이 낮은 것은 긴 노동시간으로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HBM에서 철수하고, 파운드리를 분사하지 않은 건 모두 리더의 결정이다. 개발자들이 ‘주 52시간’을 지켜가며 일해서 벌어진 일이 아니다. ‘주 52시간제’ 타령은 리더의 잘못된 결정을 노동자에게 전가하는 행위일 뿐이다. 논의 방향을 바꿔야 한다.

그사이 삼성은 오히려 신뢰감을 떨어뜨리는 행동을 하고 있다. 지난해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인 기흥사업장에서 발생한 방사능 누출 사고에 삼성은 중대재해처벌법 적용을 피하고자 대형 로펌에 자문해 ‘부상’이 아닌 ‘질병’이라고 의견서를 냈다. 방사능 기준치의 100배 넘게 피폭당해 다친 직원을 두고 ‘질병’이라고 하는 회사를 젊은 직원들이 혼신의 힘을 불태울 곳으로 믿고 일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요새 20대들은 SK하이닉스 주식을 사지, 삼성전자는 안 삽니다.” 최근 20대 후배가 한 말이다. ‘5만전자’가 되어도 안 산단다. ‘물타기’를 하더라도 SK하이닉스로 한단다. 이들에게 성장 가능성이 더 높아 보이는 건 SK하이닉스이고, 삼성은 그저 ‘관리의 삼성’으로 정체되어 있는 공룡기업일 뿐이라는 소리다. 뼈아프지 않은가.

많은 전문가가 “삼성이 예전 같지 않다”고 걱정한다. 기술력을 우려하는 목소리겠지만 나는 다른 관점에서 삼성이 예전 같지 않길 바란다. 노동시간을 쥐어짜며 노동자를 극한으로 몰아가 성과를 내는 삼성이 아니길 바란다. 다음달 3일 이재용 회장의 ‘삼성 불법 경영권 승계 항소심’ 선고가 나온다. 달라진 삼성의 출발점이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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